[Opinion] 한국여성으로서 '나'에 대해 외친 윤석남 [미술]

나의 예술은 나의 일상이다.
글 입력 2021.09.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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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Suk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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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은 한국 초상화가 윤석남으로서 ‘나’에 대해 고찰하는 작가이다. 그는 여성주의 담론을 작업에 과감히 드러내며 한국 여성으로서 우리 사회에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본 글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윤석남의 아티스트 토크 관련 자료와 작가 홈페이지 자료, 다양한 기사를 토대로 작성했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윤석남이라는 작가에 대해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그는 1939년 만주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와 결혼하고 40살에 이르러 작업 활동을 시작한 작가이다. 1983-84년 프랫 인스티 튜트 그래픽 센터와 아트 스튜던티 리그에서 공부했다. 이후 한국에서 금호미술관, 학고재, OCI 미술관, 서울 시립미술관 등 다양한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펼쳤다. 또한 1985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시월 모임전’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뉴욕, 일본, 영국, 독일 등 국제 비엔날레와 미술관, 갤러리 등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한 작가이다.

 

 

 

유년기, 나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의 유년기는 당시 가부장적 사회의 일반적인 가정과 비슷했다고 회상했다. 윤석남은 영화를 만드시는 아버지와 책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사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필자가 그의 유년기 시절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년신문>에 기재한 '나의 희망'이란 글에 관한 이야기이다.

 

윤석남은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난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난 무엇 때문에 살게 되었지? 라는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존재론적인 생각을 했다는 점을 짐작하게 했다. 이러한 '존재'의 의미를 경험하게 실질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시기는 의식주가 해결되고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작업 활동을 하며 미술사 책에 관한 공부를 병행했다.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나'라는 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그 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작업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를 통해 그는 '나'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를 어릴 적부터 했으며 성인이 되고 작품으로 그것을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여성'


 

윤석남에 작품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성'이다. 필자는 그 시작을 <시월 모임>에서부터 언급하고 싶다. 한국의 여성주의는 1980년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한다.

 

간략히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에 대해 정리하자면, 이는 사회적 운동을 기반으로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은 서구 사회에 기인한 페미니즘 미술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자생적 성격을 가진다.

 

한국 미술계에서 여성 주체적 자각을 내세우며 집단 활동으로서 여성주의 미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여성 해방운동이 행해지고 미술계에도 각성이 일어났던 이후 1980년대부터로 보고 있다.

 

여성주의 미술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유엔 여성 미술가들이 모여 단체 활동을 바탕으로 여성주의적인 입장을 공유하면서부터이다. 해방이후 남성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1948년 이화여대 동문 모임인 ‘녹미회’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모임의 형태는 이후 1970년대 ‘한국여류화가회’, ‘한국여류조각가회’등과 같은 여류라는 단어가 붙여 이름 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남성이 주류이고 여성은 비주류라는 인식이 내포되어있었다.

 

이후 1980년대 여성주의 미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1980년대는 현실 비판적 성격을 미술의 토대로 삼았으며 민주화로 인해 미술계 또한 혼란의 시기였다. 민중미술의 영향 속에 불평등한 성의 계급 구조를 문제 삼아 여성해방은 곧 인간해방으로 이어졌고 여성주의 미술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른다.

 

1985년에 결성된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으로 구성된 ‘시월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은 ‘민족미술 협의회’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다가 1986년 12월 ‘민족미술협의회’의 산하에 여성의 현실에 주목하며 여성분과의 결집을 이뤘다. 김인순을 중심으로 시월모임의 회원들, 이화여대 동문 그룹 ‘터’, 소수의 여성미술가 10명이 모여 ‘여성 미술연구회’를 조직했다.

 

이후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발족으로 여성문제를 다루는 전문적 노선을 강화했고 1987년 제1회전을 기점으로 1994년 조직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제8회에 걸쳐 ‘여성과 현실’이라는 표제로 지속적인 여성주의적 관심을 두고 작품 활동을 했다.

 

당시 한국의 사회와 미술의 특수한 맥락 안에서 여성주의 미술은 형성되었다.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와 정치적 억압,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여성의 입장 대변을 하는 1980년대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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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 속에서 윤석남 역시 <시월 모임>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여성주의에 대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이 모임에서 기획한 <반에서 하나로>(1986)전시는 한국 미술사에서 여성주의 관련 전시로 굉장히 의의가 있는 전시이다. 작가는 <손이 열 개라도>(1986) 라는 작품을 통해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한 서민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알려진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평생을 고생하신 친정어머니의 삶을 코믹하게 표현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작품 속 여성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헌신해야 했던 그의 친정어머니 삶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후 작가는 <또 하나의 문화>을 만나며 여성이란 무엇일까? 여성 문화란 무엇일까? 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되며 여성 의식을 깨우치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 만남이 자신이 여성주의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두고 작업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획하게 했다.

 

 

 

평면에서 해방한 윤석남


 

그는 허난 설현의 생가에 가서 우연히 본 나뭇가지에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항상 평면 작업에 보수적이고 답답함을 느낀 윤석남은 나뭇가지에서 허난 설현을 보게 되었다. 이후 그는 나뭇가지라는 소재를 작업에 활용하며 평면에서 해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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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의 작품 중 <999-빛의 파종>(1997)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작품은 작가가 여성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만든 작품이다. 999라는 숫자는 무엇을 상징할까? 이 숫자는 999개의 작품이다. 그럼 1은 어디로 갔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는 자신의 세대에 어떠한 간격을 넘을 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1000이라는 완벽한 숫자가 될 수 없음을 999라는 숫자로 표현했다.

 

1만 더하면 완벽한 숫자 1000이 되지만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렇게 999개의 작은 나뭇가지 조각을 한 방에 설치하고 나머지 1개는 분리된 방에 설치했다.

 

작품 사진을 자세히 보면 윤석남은 손가락 크기의 작은 나뭇가지에 여성들을 그렸다. 필자는 이 작은 나뭇가지가 세상 밖에 나온 작은 존재인 '여성'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여성 초상화가 윤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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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필자는 윤석남을 한마디로 한국의 여성 초상화가로 표현하고 싶다. 그의 에피소드 중 초상화 책을 샀는데 그 책에 여성화가는 한 명도 없어서 은근히 화가 났던 일화를 언급했다.

 

난 이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페미니즘의 처음 대두되기 시작한 것도 린다 노클린이 말한 왜? 훌륭한 여성작가는 없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난 이 에피소드가 윤석남의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여성 초상화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현재 자신의 친구들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은 어려은 것이 아니며, 내 삶은 내 것이기 때문에 하고 싶다면 종이와 연필만 있으며 된다. 나의 예술이 나의 일상이다."

 

이 언급을 통해 그가 지금까지 작업한 모든 작품들이 그 자신이었으며, 한국의 여성이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탐구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자료

방초아, 「1980 -1990년대 한국 여성주의 미술에 나타난 모성모티프 연구」

(석사학위논문, 이화자대학교, 2015), pp. 14-26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MMCA 작가와의 대화 (윤석남 작가편 20분 영상)

 

 

[박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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