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체인지 데이즈', 바뀌어야 하는 것은 [드라마/예능]

‘나는 과연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을까?’
글 입력 2021.08.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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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 자극적이기만 하고 매일 누가 죽거나 소리 지르잖아. 난 이렇게 시끌벅적한 드라마, 별로야!”

 

엄마에게 이렇게 선언한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것만큼이나 극적인 예능 하나를 발견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 대한민국 콘텐츠 순위 1위? 얼마나 재미있기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제치고 1위를 할까? 첫 화를 재생하기 시작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1화, 2화, 3화, 그리고 어느새 10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자극적인 거는 별로’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아, 이제 인정해야 한다. 가끔은 마라탕처럼 자극적인 게 최고라고.


 

 

내 연인이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른 사람의 연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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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TV

 

 

각자의 이유로 이별을 고민 중인 세 커플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두근거림을 되찾기 위해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일주일 뒤 여행이 끝나면 이들은 처음 원했던 두근거림을 되찾아 돌아올 수 있을까? 만약 되찾았다면 그때 그 옆에 함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체인지 데이즈>는 고질적 문제로 이별의 위기에 처한 실제 연인 세 쌍이, 7일 간 제주도의 한 숙소에 머물면서 서로의 애인들과 ‘체인지 데이트’를 해보고 앞으로의 만남을 결정해나가는 프로젝트로 서사를 이어나간다. ‘체인지 데이트’라는 소재는 겉으로 보기에 매우 아찔하고 위험한 듯하다. 다른 사람이 나의 애인과 데이트를 하다니, 내가 다른 사람의 연인과 데이트를 하다니, 그것도 합의 하에! 이는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가 아무리 한 번이래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발칙한 경험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인 셈이다.


사실은 본인의 애인을 두고 서로의 연인 중 한 명을 선택해 데이트를 해본다는 것부터가 아찔한데, 자신의 애인도 그러하리라는 사실 앞에서 출연자들은 공존한다고 인정하기 싫을 것만 같은 두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솔직하게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프로그램에서 제시하는 각 출연자들의 결말 선택지는 3개. 일주일의 제주도 여행이 끝날 때쯤 출연자들은 현재의 연인과 계속 함께할 것인지, 새로운 인연을 시작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혼자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 프로그램은 얼핏 보면 세 쌍의 실제 연인들을 대상으로 화끈하고 자극적인 실험을 진행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을 전부로 하고 있지는 않다. 기획의도와 프로그램 작명 속에 숨은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 말은, 시청자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다른 궁극적 목표와 가치가 또 있다는 것. ‘기본 만남 기간 1년 반, 최대 10년 이상의 커플들이 고질적으로 품고 있다는 문제는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을 전제로 세 쌍의 연인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시청하며 나의 상황과 출연자들을 대조해볼 수 있는 실용성, 출연자의 상황에 이입하여 대리 성찰 등을 해보게 되는 흡입력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 연인이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는 것, 내가 다른 사람의 연인과 데이트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서로의 모습이나 변화를 발견하는 것. 과연 출연자들의 여행에서 이 세 가지 포인트는 그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리프레쉬, 자기객관화, 그리고 가장 먼저 변화해야할 것에 대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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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TV

 

 

첫째는 리프레쉬. 연인과 오래 교제해온 사람들이 낯선 사람과 데이트를 하면 간만의 새로운 에너지와 긴장감, 그리고 생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덤으로 장소는 제주도 여행 코스. 게다가 어색하고 아직 완전히 친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그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정중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히려 기존의 연인과 데이트할 때보다 낯선 사람과 함께할 때 더 긴장하고 노력하며 젠틀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출연자들은 문득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연인과의 일상에서 벗어나자, 자신이 꽤 오래간만의 긴장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하지만 이때 이들은 겨우 낯선 사람과의 ‘첫 번째’ 데이트를 ‘막’ 시작했을 뿐이다.


곧이어 출연자들의 마음속에 시동이 걸리는 것은 자기 객관화다. 그들은 낯선 사람 앞에서도 이렇게 친절하고 부드러운 자신이, 왜 가장 가까워야할 연인과 갈등하고 불편해하다 이별까지 생각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반대로는 이렇게 친절하고 재미있는, 좋아 보이는 데이트 상대가 왜 제 연인과 갈등하고 있는지도 궁금해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상대에게 아이스브레이킹을 시도하며 꼭 주고받는 질문 중 하나는, “연인분이랑 이 여행까지 오게 된 이유가 뭐예요?”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솔직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그걸 안다면 여행도 오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이 질문. 하지만 이들의 대답은 생각보다 시원하고, 차분하고, 어렵지 않다.


“저는 연인이랑 대화다운 대화를 안 해온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막 대해요.”

“저희는 엄청 심하게 싸우고 상처 주면서 헤어진 적도 있어요.” 

“나를 조금 더 아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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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TV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문제를 알고 있다면 그들은 왜 해결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정돈된 분위기와 마음으로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불만사항은 물건을 다루듯, A/S를 맡기고 말고 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꺼내고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한 명이 말을 잘못하거나 잘못 알아듣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면 망가지기 십상인 문제이기에, 아무 때나 꺼낼 수도 아무렇게나 다룰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어려운 과제 앞에서 많은 가까운 관계들이 문제를 적금보다 열심히 쌓아나간다. 그 문제들은 적금보다 이자율도 훨씬 높다. 게다가 이야기할 수 없으니, 아무리 깊이 생각한들 어디서부터 문제가 쌓였는지 되짚어보기에는, 서로가 가진 문제의 본질까지 파고들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체인지 데이트를 하며 자연스럽게 연인과의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생각해보고, 되짚어보게 된 출연자들에게는 연인과 직접 대화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깊이 있는 자기 객관화와 성찰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와 연인은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는지, 시작점이 된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짚어보면서 말이다. 때문에 그들이 체인지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낯선 이와 데이트한 연인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불어, 유난히 복잡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출연자들은 결국 다시 한 번 리프레쉬 포인트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번에는 스스로와 낯선 상대가 아닌 내 연인에 대한 것. 다른 사람과 웃으며 들어오는, 이미 돌아와 숙소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연인을 보며 없을 것만 같았던 질투심에 미묘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 또한 낯선 이와 데이트를 하고 왔기에 더 묘하고 불편한 마음. 내 연인의 처음은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만큼 남에게도 매력적이리라는 사실과, 지금 자신과 연인은 낯선 상대보다도 서로에게 멋진 사람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탈락감이 강하게 출연자들의 이성을 흔든다. 과연 평정심을 잃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이들은 남은 여행을 마치고 어떤 선택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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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TV


 

여행을 마무리할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다른 사람과는 한결 편해지고, 연인과는 더욱 불편해져가는 출연자들. 두 번의 체인지 데이트 이후 기존 연인과의 웃을 수 없는 데이트까지 모두 마치고, 그들은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한편 시청자들은 이 타이밍쯤에서 가장 강하게 출연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또, 각자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고 있는 연인 남녀가 같은 관계적 상황 앞에서도 다른 생각과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을 상기하며 ‘입장 차이’라는 것을 직관하게 된다.


이는 직접 어렵고 힘든 대화를 해보지 않고서는 느끼기 어려운, 스스로와 상대 간에서 은밀하게 쌓여가는 거리감의 원인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촬영 당시의 출연자도 온전히 알지 못하는 모든 상황을 카메라를 통해 확인하고, 그들보다 그들 관계에서의 객관성을 먼저 파악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 또는 자신이 겪어본 적 있는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시청자들에게도 주어지게 된다. 어쩌면 출연자들보다 더 크게 와 닿는 관계 솔루션을 획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셋째, 가장 먼저 ‘체인지’되어야 할 것은 스스로일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체인지 데이즈>는 아직 완결나지 않았다. 누가 혼자가 될지, 다른 누군가와 손을 잡게 될지, 관계를 회복하고 돌아가게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을 담을 뿐인 카메라는 그들이 이후에 어떤 결론을 내렸던 간에, 당시 각자의 연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했었는지를, 반대로 새로운 이성에게는 어떠했는지를 그들과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내줄 것이다. 악마의 편집으로도 그들의 눈빛과 행동거지에서 흘러내리는 마음의 분위기는 감출 수 없으니 말이다.


혹시 <체인지 데이즈>를 보며 내 연인이나 배우자, 친구에게 전에 했던 어떤 말과 행동이 걸리지는 않는가? 그들과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랑을 하고 있는가? 나는 출연자들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단편적인 방송에서의 모습만을 봤기에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카메라로 그려진 그들 ‘모두’의 모습이 본인과 연인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어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이 사실을 인지했다면 상대의 변화를, 또는 옆에 둘 사람 자체의 변화를 원하기 전에, 자신의 변화를 먼저 꾀하고자 하는 것이 지혜로운 순서일 테다. 적어도 앞으로 더 좋은 사람과 관계를 추구하며 살아갈 것이라면.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신가요?



성호에게 항상 살벌한 어투와 표정으로 공격적인 말을 쏟아내던 상미는 진록과 우석에게 편하고 솔직한 누나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칭찬도 서슴없으며, 웃기도 참 예쁘게 웃는다. 상미에게 툭툭 뱉는 말과 시큰둥한 표정을 자주 선사하던 성호는 홍주와 민선 앞에서 참 적극적이고 친절하다.


민선에게 자꾸만 말을 아끼던 진록은 상미와 홍주에게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할 줄 알며, 진록에게 자주 말을 걸지도 의사를 표현하지도 않던 민선은 성호 앞에서 매우 적극적이고 통통 튀며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서로가 영양가 없는 대화만 주고받던 홍주와 우석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더 편하고 생글생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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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TV

 

 

하지만 성호와 상미는, 민선과 진록은, 홍주와 우석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던 사랑을 시작한 걸까? 낯선 상대와 데이트하는 그들의 유연함과 적응력, 배려 등을 미루어보았을 때 그럴 리는 없다. 그럼 프로그램을 찍을 때쯤 서로를 사랑하지 않게 된 걸까? 질투심을 느끼고 서운함을 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아마 이들도 처음에는 정말 예쁜 사랑을 했을 테다. 비밀 연애를 해도 행복함을 느꼈을 것이고, 함께 일하는 즐거움도 누려봤을 것이며, 많은 주변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그들이 서로에게 보여줬던 초반의 배려 있고 멋진 행동들은 느슨해졌을 것이다. 안정 속에 있으면 관계는 게을러지고 살이 붙어서 자꾸만 신경써주고 움직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즉,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잘 사랑하고 있지 못한 셈. 끝내 그들의 관계가 건강을 잃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도, 언제든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이런 식으로 앓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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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TV


 

이에 <체인지 데이즈>는 하고많은 바꿀 수 있는 것들 중에서도 굳이 상대를 바꾸어 시간을 보내게 하는 이벤트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상대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도출하도록 해준다. 단연 아름답게 시작했을 기존 연인과도 건강한 관계를 가꾸지 못한다면, 아무리 또 다른 낯선 상대와 다시 설렘을 나누고 좋은 시작을 한들 큰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은 가까운 관계일수록 자꾸만 들여다봐야 하는 사랑에서의 세 부위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를 종종 시간이 지났다거나 편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잊어버리곤 한다고 말해준다. 대화와 상호존중, 고마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체인지 데이즈>에 출연한 세 연인들에게서 결여되어 있었던 것들이다. 나는 그들의 관계를 보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과연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좋은 질문이었다. 사랑이야 하고 있지만, 제대로 할 줄도 모르고 제멋대로 잘 사랑하고 있노라 확신에 차있지는 않을까? 그래놓고 우리 가족에게, 내 연인에게 다짜고짜 알아달라고만 하지는 않았을까? 행복 중에는 좋은 사랑을 하고 있노라는 진짜 ‘사실’ 속에 머무를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들도 존재한다는 걸 안다. 단순한 설렘과 기대가 아닌, 안정과 믿음에서 오는 행복. 아무래도 이 행복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앞으로도 어지간히 부지런해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글을 만난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언제까지나 잘 사랑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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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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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ㅇㅅㅇ
    • 개인적으로 체인지데이즈보다는 환승연애가 더 재미있는 듯 !!!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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