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열려있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 환승연애 [예능]

글 입력 2021.08.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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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시대와 연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인기 있는 예능 소재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환승연애'가 있다. 헤어진 연인들이 한 공간에 모여 생활하며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관찰형 예능 프로그램으로, 옛 연인과 다시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도, 새로운 인연이 맺어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모두 열고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자극적인 프로그램 컨셉과 타이틀로 편성 초기에 대중들로부터 비난의 목소리가 컸으나, 방영 회차를 거듭할수록 화제가 되며 많은 이들을 과몰입하게 만들었다. 이런 '환승연애'를 둘러싼 논란과 공감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환승이별'과 '환승연애'


 

환승이별은 연인과 헤어지자마자 다른 연인을 만나는 행위로,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는 '환승하다'에서 파생된 신조어이다. 대중교통을 갈아타듯이, 헤어진 후 시간을 오래 갖지 않고 다른 연인을 만나는 것을 표현한다. (인용 출처 : 네이버 오픈사전)

 

환승이별이 사전적 의미로써 바람을 피우는 것과 같이 부정한 일은 아니지만, '환승'이라는 단어 자체가 목적지로 가기 위한 '수단' 내지는 '과정'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만큼,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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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의 컨셉과 구성은 한 공간 속에 헤어진 4쌍의 연인들을 모아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지 스튜디오의 패널들과 함께 지켜보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위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을 조성하여 이를 관찰하는 실험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옛 연인을 앞에 두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조장하는 프로그램의 구조 상 질투와 시기, 배신 따위의 감정을 유도하는 듯한 프로그램의 목적성에 대해 선정성 논란이 거셌다.


그러나 초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 환승연애는 매주 방영되는 회차마다 화제가 되며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환승연애만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미숙했던 연애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극적인 프로그램 타이틀과 컨셉으로 인한 선정성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출연진들의 감정선과 각 연인들의 사연을 짜임새 있게 풀어내며 많은 이들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내고 있다.

 

최근 방영된 9화에서 환승연애만의 차별점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었다. 11년 전 이별한 '코코'와 '민재'의 식사 장면이었다. 이들 역시 이별의 순간 이후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각자 정리하고, 못다 한 말은 묻어둔 채로 그렇게 프로그램을 통해 재회하게 되었다.

 

흐른 시간만큼이나 더 단단하게 성장했고, 이젠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과거 이별의 순간에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진솔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는 대리 치유와 위로까지도 건네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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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finally able to close the last page of the book.

항상 뭔가 찝찝하게 열려있던 책이 드디어 다 읽고 끝낸 느낌?"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성했을 때, 발생하게 된 가장 이상적인 이별의 마무리 장면이 아닐까. 초기 논란을 불러일으킨 자극적인 환경 조성이 아이러니하게도 극적이고 울림을 주는 대화를 이끌어냈다.

 

연애에 있어서 헤어짐 이후의 순간들은 혼자 감내해야 하는 몫이다. 가까운 친구들의 위로도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 진정으로 이별을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헤어짐 이후의 시점에는 함께 사랑했던 상대방이 이미 곁을 떠나고 없기 때문에.

 

정말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혼자서 이별을 견뎌내고 극복해낸다. 그중 어떤 사람들, 혹은 어떤 연애의 경험은 아물지 못하고 그대로 시간 속에 묻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계획했던 바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별을 인정하고 함께 나누었던 연애의 시간을 존중하는 대화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에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하이라이트를 지켜볼 수 있었다.

 

*

 

짜여진 각본과 배우들이 아닌, 솔직한 마음과 일반인이다. 대중들이 던지는 돌을 맞는 건 연출된 배역이 아니라 실존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을 넘는 과도한 몰입에서 벗어나 일반인 출연자들을 향한 섣부른 비난보다는 각자의 마음과 선택을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로 시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기도 한다. 이날의 연애가 누군가에게는 미숙하고 어린 날의 경험일지 모르니, 우리의 몫은 그저 응원해 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 전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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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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