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편집자와 에디터, 원고를 선정하는 사람들 - 편집자의 세계

낭만 시대 속 편집인들의 매력적인 이야기
글 입력 2021.08.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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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어느 산업 분야이건 에디터가 있는 시대다. 그만큼 에디터의 정의가 넓어졌고, 사람들이 에디터를 필요로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짧은 식견으로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정보가 흘러 넘치는 시대여서 아닐까. 사람들의 기호는 다양해졌고 그만큼 수많은 관련 콘텐츠들이 범람한다. 취사선택 하기엔 감당안될 정도로 많은 콘텐츠들이.


맘 놓고 휴식이나 취할 요량으로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 서비스를 구독하다가도 영화나 드라마들이 너무 많아서 고르다가 시간이 가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만든 작품 리스트를 찾아본다. 경험 상 그게 더 경제적이고 내 취향에 맞는 영화를 찾을 확률이 높았다. 예를 들자면 '영화광 되기 단기코스' 같은 플레이리스트들 말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도 에디팅(editing)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용자 경험에 기반한 데이터 분석도 일종의 에디팅이라고 생각한다. 내 취향에 맞는 노래나 영화, 음악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나 지겹게 뜨는 쇼핑몰 AD 같은 것들. 세상 참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스스로 무언가를 찾거나 탐색하는 과정이 단축 됨에 따라 새로운 취향을 향유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만의 취향'이란 느낌이 많이 사라진듯 하다. 거기서 거기인듯한 느낌.


<편집자의 세계>는 고전적인 에디팅에 대해 말한다. 책이나 잡지 같은 출판물을 만드는 행위의 총체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문장과 혹은 작가, 경영과 씨름했던 전설적인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것은 전공 서적인가?



책을 읽다 보면 저자 고정기 선생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게 느껴진다. 유명한 출판인들의 야사, 그들의 어린 시절, 출판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에 대해 상세히 적혀있다. 머리말에 고정기 선생은 이 책이 쓰인 당시엔 참고할 만한 사료가 많지 않아 꽤 고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붓을 들고 보니 자료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리고 이 방면의 자료들은 특수한 분야여서 국내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마침 사위인 신광영 군과 딸 고승희 내외가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수학 중이어서 그들의 협조 아래 대학 도서관에서 많은 자료를 얻어볼 수 있었다.

 

- <편집자의 세계>, 7p

 

 

'전공 서적'이라는 말이 어떻게 와닿을는 모르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 책은 전공 서적 같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편집자의 태도와 마음가짐, 직업의식에 대해 상세히 밝힌다. 물론 진짜 전공서 적처럼 딱딱한 말들이 아니라 재밌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통해서 말이다. 다만 나처럼 에디터를 지망하는 이들에겐 배울만한 내용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광고는 첫 번째 독자를 위한 광고여야 한다 (...) "모든 광고는 먼저 독자를 위한 광고여야 하며, 이익은 2차적인 문제다. 항상 우리의 첫 번째 의무는 우리들의 독자에 대한 것이며 두 번째 의무는 우리들의 현재와 과거의 광고주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해롤드 로스, <편집자의 세계>, 161p

 

 

출판계에 일하시길 희망하시는 분이라면 <편집자의 세계>를 읽을 때 소제목을 한 번 보고, 위대한 편집자의 이야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를 권한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편집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에 임할까, 라는 순수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공부하듯 천천히 읽었다. 그래서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긴 했다. 그래도 출판계에, 편집자들 사이에 어떤 직업의식이 통용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낙천주의, 낭만, 그리고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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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놀드 킹리치, 드윗 웰레스, 프랭크 크라우닌셸드... 희망하는 직종인 매거진 쪽이다 보니 잡지 에디터들의 이야기들을 더 흥미롭게 읽었다. 그들은 나를 포함한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편집장의 이미지와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사업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크라우닌셸드처럼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반영한 편집자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유명한 편집자들은 시대가 원하는 출판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동시에 대중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내용(언론인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만)을 수록하려고 고민했다. 그리고 잡지를 팔기 위해 과감히 도전도 하는 사업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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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활동하던 미국은 세계대전 이후 낙천주의가 팽배해 있던 때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출판물들이 고위층의 특권처럼 여겨져 출판시장이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다. 낙천주의와 출판시장의 호황이 맞물려 다양한 잡지가 출판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그들만의 사정과 고민이 있었겠지만은 나로선 참 부러운 시대다. 책 속에 소개된 편집인들은 아직 세상이 발견하지 못한 작가의 글을 발굴해 잡지에 수록하거나 자신의 고집을 한껏 풀어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책에 나온 당대의 출판 시장은 지금과 달리 소위 '돈벌이'가 되는 시장인 것 같다. 출판인들의 낭만이 존재했던, 다시는 오지 않을 잡지의 마지막 호황기가 아니었을까.

 

 


편집자는 원고를 선정합니다



베스트셀러 출판사로 유명한 사이먼 앤 슈스터를 창립한 링컨 슈스터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편집자와 출판인의 차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죠. 편집자는 원고를 선정합니다. 출판인은 편집자를 선정합니다."

 

- 윌리엄 타그, <편집자의 세계>, 342p

 

 

편집자는 원고를 선정한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잠재적 독자가 재밌게 읽을, 가치가 있는, 상품성이 있는 원고를 보는 심미안을 바탕으로 적절한 것을 고르는 것. 그것이 편집자의 일인 것이다. 현대의 에디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적재적소성이 좀 더 짙게 나타날 뿐.


워크룸 프레스라는 출판사가 있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룸에서 운영하는 출판사다. 강렬하거나 심플하거나. 책의 내용과 절묘한 표지 디자인으로 유명한 출판사다. 모회사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여타 다른 출판사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워크룸 프레스 얘기를 꺼내는 건 표지 디자인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낸 책이 유별나기 때문이다.


워크룸 프레스가 출판하는 책들은 비범한 면모가 있다. 워크룸 실용 총서 시리즈는 '과거에는 실용이었으나 오늘날 실용만으로 기능하지 않는, 과거에는 실용이 아니었으나 오늘날 실용으로 기능하는 자료를 발굴'한 것들이다. 심오하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다음과 같다. '실용총서이지만 실용적이지 않을 수도, 실용적일 수도 있습니다.' 실용 총서 시리즈에는 '실전 격투'라는 책도 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고도의 블랙 코미디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외국 책들을 소개하는 '제안들', 한국 문학 총서 '입장들' 시리즈도 있다.


여러모로 가시밭길을 걷는 출판사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 되는 것들에서 빗겨나가 있으니까. 하지만 워크룸 프레스가 없었다면, 국내에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을 것이다. 여는 글에서 말했듯 세상엔 수많은 정보들이 범람한다. 그리고 아직 발견되지 못한 콘텐츠들도 분명 존재한다. 편집자는 그런 콘텐츠를 발굴하고 선정하여 시장에 내놓는 중개인이다. 큰 확률로 성공할 콘텐츠(대부분 사람들이 취향입니다! 라고 할만한 대중적인 것)를 내놓는 편집자가 있다면, 워크룸 프레스처럼 날카로운 한 방을 노리는 편집자도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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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의 편집자



<편집자의 세계>는 편집의 낭만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조금은 교과서적으로 다가올 만큼, 편집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본 책은 1986년 처음 출간되었다고 한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넘어, 편집인들이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시점에, 편집자들의 직업정신은 유효할까.


아직 출판계에 발을 들이지 못했지만, 본질은 똑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선정'의 기준과 주체가 모호해졌을 뿐이다. 독립서적과 잡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독립'이 꼭 아마추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책이나 잡지를 만들 수 있다. 자신의 취향을 맘껏 드러낼 수 있고 시장성이 없어도 출간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여는 글에서 말했듯,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취향'이라는 말 한 디로 콘텐츠의 질적 여부와 상관없이 수용되기도 한다. 무엇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판가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디터들이 필요하다. 양질의 콘텐츠,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 여러 매체가 '뉴스 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양질의, 정제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축약적으로 전달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마트에서 받던 카탈로그랑 다를게 없다. 근데 그게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


카탈로그는 인터넷으로 뚝딱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연스레 잊혀진 구식 마케팅이다. 근데 뉴스 레터로 부활했다. 왜? 간단하다. 뭔가를 찾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그리고 '찾는 능력을 기르는 것'보다 '구독'하는 게 경제적이니까. 그래서 뉴스 레터가 부활했다. 잡지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잡지가 과거 상류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것처럼 특정 계층을 위한 프리미엄 뉴스 레터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편집인의 정의는 <편집자의 세계>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성 있는 편집인이 양질의 콘텐츠를 찾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편집인의 일이다. 여기에 나만의 사족을 달고자 한다. '편집자입니다. 마음에 들지 몰라서 일단 이것저것 준비해봤습니다. 신뢰하셔도 됩니다. 꽤 시간을 들여 다듬은 것들이니까요.'

 

 

[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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