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빛멍'으로 힐링하고 싶다면 -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展

글 입력 2021.08.1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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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멍’, ‘물멍’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불과 물을 멍-하게보고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인데, 굳이 이런 상태에 줄임말까지 만들어가며 명명한 이유는 현대인들의 생활 방식이 지나치게 바쁘고 정신없기 때문일 것이다. 눈이며 정신이며 쉴 틈 없는 세상 속에서 잠시 생각 스위치를 끄게 해주는 풍경은 현대인들에게 말 그대로 ‘힐링’이다.

 

그리고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관객들을 '빛멍'을 하게 만들어 힐링의 순간을 캔버스 가득 선사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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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마이아트뮤지엄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뉴욕 주 이타카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미국 화가로,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세밀한 유화 작업을 이어왔다. 현재 삼성역 근처의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展은 그녀의 작가 인생 최초로 열리는 회고전으로, 50연간의 작품 활동을 총망라하는 작품 8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크게 4부로 나뉜다. 1부 빛과 그림자, 2부 집으로의 초대, 3부 여름 바람, 4부 이탈리아의 정취로, 작가가 극사실주의 화풍을 확립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마이아트뮤지엄의 커미션 작을 완성한 2021년 현재까지, 시기와 화풍 별로 분류하여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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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마이아트뮤지엄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展은 시각 뿐 아니라 청각까지도 자극한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지니와 제휴하여 큐알 코드를 인증하면 추천하는 음악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어폰을 집에 두고 왔기에 듣지 못했지만, 전시장을 돌아보며 음악이 있었더라면 분명 몇 배는 좋았을 전시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방문 예정이 있는 관람객들에게, 반드시 이어폰을 소지하기를 권장한다.


사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들은 ‘인스타그래머블’해보인다. 빛, 그림자, 식물, 윤슬과 같이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진으로만 봐도 충분히 예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천만의 말씀. 작품 촬영을 하면서(*<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展은 정해진 몇 점의 작품 제외하고 촬영이 불가능합니다. PRESS 자격으로 전시장 내부 촬영이 가능했음을 고지합니다.)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말, 작품의 실물이 조금도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세하게 표현된 빛과 빛이 부딪히고 반사되어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감과 그림자는 반드시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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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마이아트뮤지엄나무 
그림자와 계단, Tree Shadow with Stairs, 1977, Oil on canvas, 167.6 X 127 cm, Collection of the Artist 
두 건물로 만들어진 모퉁이, Co-Op Corner, 1978, Oil on canvas, 76.2 x 121.9 cm, Collection of the Artist

 

 

첫 번째 섹션인 ‘빛과 그림자’는 작가가 풍경에서 빛과 그림자를 포착하고 화면을 만들어내며 본격적인 전업화가로서 나아가는 시기에 그려내는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1부에 전시된 작품들에서는 특히 그림자의 역할이 돋보인다.

 

단순히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묘사된 것이 아닌, 시간에 따른 햇빛의 방향-흐름과, 직접적으로 화면 내에 묘사되지 않은 물체의 외형까지도 추측할 수 있게 하며 화면 바깥까지 상상력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은 후기의 작품들보다 다소 소박한 면이 있지만, 그녀가 빛과 그림자로 뒤덮인 세상을 바라보는 고뇌와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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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마이아트뮤지엄

 

 

두 번째 섹션, ‘집으로의 초대’는 제목과 같이 집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앨리스는 뉴욕 근교의 ‘웨스트필드 저택’을 시작으로 주택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을 그렸다. 그녀는 특정 주택에 매료되어 한 주택을 배경으로 다양한 구도와 빛을 시험하여 습작과 많은 작품을 남기기도 하고, 다른 곳의 풍경, 즉 자연적 소재와 주택의 인공적 소재를 합성하여 작품을 그려내는 등 많은 연구를 녹여내었다.

 

특히 웨스트필드 시리즈는 작가의 예술적 커리어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는데, 저택을 발견한 이후로 빛을 향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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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의 작품은 외부 공간에서 집의 겉면을 바라본다. 집의 기둥, 건축 양식, 계단, 지붕 등을 살피며, 그 위로 드리워지는 나무과 잎사귀, 꽃의 화려한 그림자를 섬세히 묘사한다. 첫 번째 섹션에서 빛과 그림자가 공간을 갈라 거기서 생겨난 또 다른 공간에 집중하였다면, 여기서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그림’에 주목하는 듯하다.

 

꽃분홍색의 벽과 파란 물이 들어찬 수영장, 녹색의 자연은 빛에 새로운 색을 부여하는데, 앨리스는 이를 놓치지 않고 빛이 맺히는 곳과 빛이 반사되는 지점, 그림자가 드리운 곳을 각각 다른 색으로 채색한다. 또한 물에 반사되는 그림자와 빛을 통해 캔버스 내에서 두 개의 공간을 만듦으로써 작품은 더욱 화려하게 그 규모를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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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섹션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여름 바람 시리즈를 선보인다.

 

세 번째 섹션 공간에 들어가기에 앞서 관객은 양 옆으로 흰색 커튼이 달린 짧은 복도를 지나며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이 시기에 작가의 시선은 밖에서 안으로 이동한다.

 

집의 안 쪽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며, 창가에 휘날리는 커튼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 그리고 커튼 천으로 어렴풋하게 보이는 바깥 풍경에 주목하여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앨리스는 직접 커튼을 구매하여 방문하는 집에 커튼을 걸어 새로운 풍경을 만들기에 이른다.


세 번째 섹션은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전시되었던 작품들도 몹시 아름다웠지만, 이 섹션에서 앨리스의 작품은 물에 비추어 나타나는 윤슬과 커튼 사이로 스미는 빛, 눈앞에 펼쳐진 듯 생생한 호숫가의 풍경까지 담아내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반투명 커튼은 햇살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해 그림자에도 빛이 스미게 만든다. 부풀어 오른 커튼은 우리에게 끈끈하고 습한 바람이 아닌, 그저 청명하고 상쾌한 여름 바람만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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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트뮤지엄의 커미션으로 완성된 <정적인 순간>, <설렘>, <차오르는 빛>은 전시장 내에서 유일하게 일반인 관객의 촬영이 가능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맑고 푸른빛으로 가득 차있다.

 

전시장 내부의 벽은 이 섹션 전까지 계속 짙고 채도가 낮은 색으로 칠해져 작품을 빛나게 해주었다면, 여름 바람 시리즈의 벽면은 흰색으로, 작품을 더욱 해사하고 밝게 보여준다. 또한 물소리를 전시장 가득 울려 퍼지게 틀어놓아 관객들은 배치된 의자에 앉아 잠시 호숫가에 머무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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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마이아트뮤지엄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2, Capitoline Museums, Rome, #2, 2015, Pastel on sennelier sanded cardboard, 29.2 X 39.4 cm, Collection of the Artist 
나무와 두 개의 창문 (AAR) #16, Tree with Two Windows, Rome #16, 2016, Oil on canvas, 50.8 x 71.1 cm, Collection of the Artist

 

 

마지막 섹션인 이탈리아의 정취는 전체 전시 중 어떻게 보면 가장 독특한 섹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94년 앨리스는 호지킨병 치료를 마치고 남편과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위치한 루카라는 마을에 거주하는 친구의 별장에 방문하여 영감을 얻었고, 이후 2015년 이탈리아의 로마 아메리칸 아카데미 레지던시 작가로 머무르면서 건물의 외벽과 창문의 빛을 포착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2015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시리즈는 전작과는 달리 대부분 파스텔로 제작되었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시기의 작품은 앞서 전시된 작품들보다 다소 짙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전시를 보며 ‘이 작가는 빛이 없는 풍경을 그릴 때는 어떨까?’라는 질문을 혼자 해보았는데, 이 섹션에서 그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그녀가 그린 빛이 없는 풍경은 사실 빛이 없다기보다는, 자연의 빛이 아닌 건물 내부에서 퍼져 나오는 빛에 주목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곧 사람의 흔적이기에 온기가 느껴진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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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작품은 삭막한 회색 도시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 자체로 하나의 쉼터가 되어주는 듯하다. 누군가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는 하이퍼 리얼리즘 회화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이 전시를 소개해주고 싶다.

 

리얼리즘 회화는 보는 사람을 그 장소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전시장 내부에서 팔짱을 끼고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작품 속으로 들어가 호숫가에서 눈이 아프도록 아름답게 부수어지는 햇살과 맑은 여름 바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전시의 또 다른 묘미는, 전시를 다 관람한 뒤의 아트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시를 보는 내내 요즘 유행하는 쉬폰 포스터나 패브릭 포스터로 제작되면 참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판매되고 있었고, 인기가 많은 작품들은 이미 품절된 상태였다.

 

그밖에도 안경 케이스, 포스터, 그립톡, 에어팟 케이스 등 정말 다양한 품목으로 제작된 굿즈들 앞에서 나도 한참을 고민했으나 절제 후 부채 하나만을 구입해 나왔다. 어쩐지 이 부채로 바람을 부치면 끈적한 여름 바람도 경쾌해질 듯하다. 전시는 10월 24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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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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