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흥행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② [영화]

흥행과 성패의 문제
글 입력 2021.08.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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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흥행 영화의 통상적 의미와 표현을 다루었다. 간단히 말해 치환의 문제였다. 흥행은 분명 수익이 얼마나 발생하였는가를 따지는 매출의 문제다. 하지만, 그를 표현하기 위한 단위는 보통 관객 수이다. '300만 명'과 같은 식으로 제시되는 손익분기점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치환은 문제를 낳았다.

 

우선 관객의 수가 곧 수익을 증명하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흥행은 수익을 따지기 때문이다. 소위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을지라도 돈을 벌지 못했다면 흥행 영화로 인정받을 수 없다. 전 국민이 모두 본 영화일지라도 그러하다. 제작비를 메우지 못한 채 영리적 이익을 창출하지 못했다면 결과는 동일하다.

 

냉정히 말해 흥행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작품이 전해졌는지, 그로 인한 영향이 어떠했는지와 무관하다. 전달보다 매출을 중점으로 삼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보았는가, 이 영화가 사회에 얼마나 많이 전파되었는가를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관객 수는 되려 본디 뜻을 상실한다. 흥행에 가리어 이 자체에 대한 논의나 가치가 부풀려지거나 축소되는 탓이다. 30만 명이 관람해 제목조차 생소한 영화가 흥행작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 관객 수가 300만을 훌쩍 넘기며 사회적, 역사적 관심을 끌어낸 수작이 흥행 실패작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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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치환'은 또 다른 문제를 지닌다. 어떻게 보자면 더욱 치명적인 문제일 것이다. 흥행을 논하는 순간 따라붙는 두 개의 단어에 대함이다. 바로 성공과 실패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손익분기점을 기준 삼는 흥행에 대함이다.

 

물론 흥행의 성공과 실패는 손익분기점을 가진 영화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결과지이다. 상업 영화로 출발해 극장에 개봉을 알린 순간 영화는 이곳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도달하지 못한 채 멈추어설 수도 있고, 빠르게 지나쳐 그보다 더욱 나아갈 수도 있지만 어떤 작품이더라도 성패의 결과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 결과지는 분명 흥행에 대한 결과이다. 너무나 쉽게, 그리고 간결하게 따라붙는 두 가지 결론, 성공과 실패는 상업적 영역을 논할 뿐이다. 흥행의 성패가 작품의 성패를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작품의 성패를 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 혹은, 한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 큰돈을 벌었기에 작품이 훌륭하다고 단언하는 일도, 돈을 벌지 못했다고 작품의 가치가 없다고 확언하는 일도 적절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가 어찌 됐든 결과를 논했기에 우리에게 성급한 판단을 강요하곤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외의 성패가 고려되지 않음이다. 작품이 어떠한 가치를 인정받았는지, 감독이나 배우가 재평가되진 않았는지, 혹은 주제나 형식이 시대를 앞서가 평가가 뒤집히진 않을 것인지. 흥행의 성공과 실패로 모든 것을 논할 수 없는 고민과 사유의 영역들이 모습을 감춰버린다.


몇 영화를 예시로 들고자 한다. 우선 <고지전, 2011>이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다. 장훈 감독은 <의형제, 2010>로 주가를 높인 이후 신하균, 고수를 주연으로 삼아 <고지전, 2011>을 촬영하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하고 만다. 294만 명이 극장을 찾았지만, 손익분기점은 500만 명에 달했다. 그렇다, 해당 작품은 흥행 실패작이다. 그러나 <고지전, 2011>은 당시 대종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에 올랐고,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부일 영화상에서도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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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상 수상작인 <파수꾼, 2010>을 통해 한층 주목받기 시작한 이제훈에게 신인남우상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2011년, 이제훈이 신인상을 휩쓸게 만든 두 작품이 바로 이 두 작품이니만큼, 현재 주연 배우로 당당히 선 이제훈의 출세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흥행이 어떠하든 그가 <고지전, 2011> 직후 <건축학개론, 2012>에 출현해 대성공을 거두었음을 볼 때, 이 영화가 배우에게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방금 언급한 <건축학개론, 2012> 역시 논의에 적절한 예시가 되어줄 것 같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해, 해당 영화의 감독인 이용주 감독에 대해서이다. 우선 해당 작품은 흥행 영화다. 손익분기점은 150만 명으로 추정되었으나, 최종 관객은 410만 명을 넘겼다. 이는 국내 멜로 영화 역대 1위 기록이기도 하다. 더해 급부상한 이제훈의 자리를 공고히 해주었고, 수지를 국민 첫사랑으로 만들어주었다. 조정석 역시 확실한 캐릭터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23억 원에 불과한 제작비로 이룩한 멜로 장르의 흥행, 신인 발굴과 첫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사회에 강렬하게 전달한 점까지, 여러모로 많은 역할을 한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이용주 감독은 전작이자 자신의 장편 데뷔작, <불신지옥, 2009>에서 흥행 참패를 겪었다. 제작비가 충격적일 정도로 적었기에 더욱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12억을 들여 약 25만 관객을 동원했다. 물론 전통적으로 제작비가 적고 마이너한 공포 영화였지만, 집계된 수익률이 -64%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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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단과 마니아들의 평은 훌륭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한국 공포영화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으며, 김봉석 평론가의 경우 "제대로 만든 한국 공포 영화!"라고 평했다. 또한 이용주 감독은 해당 작품을 통해 과거 청룡영화상에서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의 흥행 성적이 썩 좋지 않았지만, 이용주 감독은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차기작 <건축학개론, 2012>을 촬영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흥행의 성패가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해 수익을 올리지 못했더라도 작품에 대한 평가가 훌륭할 수도 있고, 배우나 감독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매출 합산이나 관객 수를 세는 일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갈 때, 그저 매출의 성패만을 보고 너무나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된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 2016>를 단적인 예시로 볼 수 있다. 개봉 당시 상당한 호불호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단마저 그 의견이 나뉘었지만 차후 점점 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흥행 성패만을 따지는 일은 '흥행'의 의미를 고민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현재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이라고 알려진 이 흥행이라는 단어가, 과연 현재 상황에서 적절한 기준을 가지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과거부터 줄곧 사용되던 이 지표가 과연 현재에도 동일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영화 시장은 분명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우선 부가판권시장의 확대와 다각화가 가장 주요할 것 같다. 과거의 경우 개봉 이후 추가적인 수입을 거두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 국내 영화의 부가판권시장은 전과 달리 넓어졌다. DVD와 블루레이, IPTV의 서비스는 물론 급부상한 OTT까지 영화 시장에 발을 걸치고 있다. 시장의 환경이 전과 크게 달라진 이상 현재 극장 관객을 기준으로 한 흥행 판단의 가치는 과거와 동일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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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만 해도, 국내 부가판권시장의 위기는 심각했다. 불법 다운로드 문제가 주요했다. 2004년의 경우 국내 DVD 시장의 규모는 1,000억 원 상당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피해 추정액은 2,500억 원에 달했다. 상품을 내놓는 일인 DVD 출시가 오히려 손해라는 평가마저 존재했다고 한다.

 

상황은 2010년 대로 들어서며 바뀌었다. IPTV 보급이 활성화되었고 이용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를 때, 2010~2012년 사이 IPTV를 통한 상위 10개 영화의 VOD 매출만 185억 원을 넘긴다. 2019년 기준 IPTV 가입자는 1,700만 명을 넘겼고, 해당 서비스를 통한 VOD 매출은 6,412억 원이었다.

 

영화 <살아있다, 2020>의 경우 도리어 VOD로 위기를 넘겼다. 해당 작품은 애초 관객 220만 명을 손익분기점이라고 하였지만, 추후 개봉을 미루며 이를 190만 명으로 하향 조정했다. 영화는 SPVOD(극장 개봉과 VOD 출시를 동시 진행) 형태로 배급되었는데, VOD 예상 매출을 반영하였다는 게 배급사와 제작사 측의 주장이었다. 사실 아직 있지도 않은 매출을 주장한 셈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흥행에 성공하긴 했다. 2020년 국내 박스오피스 통계를 볼 때 영화의 최종 관객 수는 1,903,392명이었다.

 

사실 이런 주장 자체가 이미 변화하는 흥행의 기준, 손익분기점의 엄밀함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일 것이다. 북미 시장의 흥행을 측정하는 '박스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의 경우 물가 변화를 반영한 순위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볼 때, 최고의 흥행작은 무려 1939년에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이다. 심지어 이 경우 10위 안에 21세기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수익 창출이라는 간략한 말로 정의되는 흥행을 판별하는 일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영진위는 작년부터 극장 매출액을 박스오피스 순위 측정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이 역시 그리 길지 않은 시점에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흥행' 그 자체가 아닐 것이다. 이 하나의 단어 뒤 숨은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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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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