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 실격 - 연민의 대상과 죄의식 [도서]

글 입력 2021.07.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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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응이 나뉘고, 감상을 저마다 달리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개인을 이루고 있는 성격과 사고방식이 다를 것이고, 경험해온 삶이 다를 것이며, 경험으로부터 느낀 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경우에도 감상평을 살펴보자면 누군가에게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는 후기, 혹은 주인공인 요조의 사고와 선택, 소설을 이루는 그의 삶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는 후기 등 판이하게 나뉘는 감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옳고 그름이라는 판별을 나눌 자격은 나에게 없다고 생각하며 수많은 감상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나 또한 그저 한 명의 독자로서 하나의 감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에곤실레자화상.jpg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나'라는 화자가 요조의 사진을 묘사하며 서문을 열고 주인공인 '요조'가 기록한 세 편의 수기가 이어진다. 수기를 읽어본 '나'가 그에 대한 행방 등에 대한 짧은 후문을 덧붙이는 후기로 마무리된다.

 

서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요조는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표정의 유년 시절에서부터 영혼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청년 시절을 거쳐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않는 마지막 모습까지를 상상하게 한다. 사진을 통해 요조라는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가 인간으로서의 실격을 선언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제삼자의 시선에서 관찰하게 한다.

 

그는 유년 시절의 시점에서부터 가족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삶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마치 자신을 인간 세상의 돌연변이와 같은 존재로 규정짓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자신이 부여한 비극적 운명 속에서 요조는 '익살'을 타인과의 소통의 방식으로 삼아, 그가 말하는 다른 '평범한' 인간들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게 된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존재는 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익살꾼'이라는 가면을 쓴 요조는 누군가 그것이 가면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는 않을까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첫 번째 수기에서 요조는, 자신을 세상의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다른 존재로 태어나 고통을 받는다는 비극적인 서사를 직접 부여하며 자신을 안쓰러운 운명으로 여기는 자기 연민이 드러나 보인다고 느껴졌다. 뒤를 이을 파멸에 대한 암시라도 하는 듯 자기 변명의 밑그림을 그려두며 말이다.

 

*

 

내가 요조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 한 가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은 후에는 더욱 혼란스러웠고 심지어는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온당한 것인지에 대한 검열까지 고민하게 했다.

 

감정을 느끼는 것에 온당함이 어디 있겠느냐만, 요조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인지 자꾸만 생각이 들었다. 최후에는 인간으로서의 실격을 선언한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점에 옅은 죄의식까지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요조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가.

 

 

장난꾸러기.

저는 소위 장난꾸러기로 보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존경받는 걸 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p25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 p62

 

 

세 편의 수기는 주인공인 요조의 시선으로 전개되며 내밀한 생각을 전부 드러내고 있다. 깊숙한 내면의 솔직한 마음을 엿볼 수 있으며, 때로는 그의 아주 추한 면까지도 알게 된다. 섬세하게 표현되는 사고의 흐름은 일면 내가 세상과 타인에 느끼는 감정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껴졌다.

 

타인의 기대와 실망에 지레 겁을 먹으며 찾아올 큰 슬픔이 두려워 큰 기쁨을 외면하고 마는 모습은 너무나도 극단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가 느낀 타인에 대한 공포, 실망에 대한 불안과 같은 것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도 같은 것이라서,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은연중에 가지고 있거나 영향을 받고 있을 만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의 감정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타락해가는 주인공에게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유일하게 믿었던 장점에조차 의혹을 품게 된 저는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알코올에 손을 뻗칠 뿐이었습니다.

 

- p119

 

 

두 번째 수기를 지나며 요조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걷는다. 그간의 요조는 인간의 삶에 반하는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정답 없는 정의내리기 따위를 하거나, 미련이라 할 것도 없이 텅 빈 껍데기처럼 살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면, 쓰네코와의 동반 자살이 실패로 돌아가고 혼자만 살아남게 된 이후로 쓰여진 세 번째 수기부터는 내면의 혼란이 본격적으로 심화된다.

 

타인, 실망, 슬픔과 같이 대상이나 감정적 반응에 두려움을 느끼던 이전과는 달리, 요조 자신이 믿고 있던 가치들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이 크게 흔들리게 되면서 그의 삶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우고 있는 하나의 명제가 있을 것이다. 파도가 거세게 칠 때면 등대에 의지해 나아가듯이, 삶에 위기가 닥치는 순간에 나를 버티게 해 주는 확신과도 같은 것이 바로 신념인 것이다.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들이 흔들리는 순간 가장 큰 혼란과 절망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음에도 끝없는 물음만을 반복하며 파멸해가는 요조에게서, 무너지는 신념 속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이 투영되어 보이는 과정에서 공감과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 열 개를 한꺼번에 주사하고 강에 뛰어들자. 혼자 각오를 한 날 오후, 넙치가 악마의 육감으로 낌새라도 챈 것처럼 호리키를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너, 각혈했다면서?"

호리키는 내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자마자 그렇게 말하더니 그때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다정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다정한 미소가 고맙고 기뻐서 저도 모르게 얼굴을 돌리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 다정한 미소 하나에 저는 완전한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매장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 p129

 

 

요조는 왜 관계에 우정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행복의 문턱에서 두려움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으며, 폐쇄적인 자기파멸의 길을 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그의 이기적인 행동과 파멸의 결과에 대해 이유를 들어 대변하거나 옹호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타자에 대해 그가 느꼈던 공포와 불안, 인간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순의 지점에서ㅡ나와 같이ㅡ부분적으로나마 공감과 연민 따위를 느끼는 분들도 있으시리라 생각한다. 가장 어둡고 추한 내면의 민낯이 드러나보이는 요조의 수기에서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에 대해 어떻게 완벽히 이해하고 또 규정지을 수 있겠는가. 요조의 사고와 행동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정의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일 것이다. 타자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고 강박적으로 이를 신뢰하고 진실이라 믿는 것이야말로, 요조를 관계의 불신으로 몰고 갔던 하나의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는 하나의 가능성의 길이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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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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