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전히, 새로운, 회화 [미술/전시]

배헤윰, 박아람의 작품이 보여주는 회화의 가능성
글 입력 2021.07.23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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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술을 활용한 예술 매체의 종류와 수가 점점 많아진다. 재료, 형태에 따라 작가의 표현 방식이 한없이 넓어지는 것을 요즘 부쩍 체감한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그 조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경우의 수처럼, 활용할 수 있는 재료와 매체가 늘어남에 따라 세상의 온갖 것들로 만들어진 예술이 끊임없이 탄생한다.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업이 넘쳐나지만, 근래에 전시를 다니면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는 작품은 젊은 작가들의 회화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모색 2021⟫ (~9월 22일) 중에서도 흥미로운 회화 작업이 있는데, 배헤윰, 박아람 작가의 작품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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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로비, ⟪젊은 모색 2021⟫ 전시 전경.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1⟫은 ⟪젊은 모색⟫ 20회차 전시로, 1981년에 ⟪청년작가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젊은 작가들인 만큼 작품이 실험적이고 예술에 있어서 현재 가장 중심이 되는 질문, 고민, 생각들을 던진다.

 

이 전시에서 관심 있게 본 배헤윰, 박아람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라는 주제에 맞게 조각, 설치, 미디어 등 매체의 종류가 많음에도 이 두 작가의 작품은 다른 매체에 전혀 압도되지 않는다. 이들의 신선하고 강렬한 회화 작업들은 새로운 기술이 계속해서 개발되는 시대 속 전통적인 매체인 회화가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또한 지금의 회화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확인하고, 앞으로의 회화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게 한다.

 

 

 

배헤윰 작가



배헤윰, 아쿠마 aquma, 2019, 145.5x112.2x3cm.jpg

배헤윰, <아쿠마 (Aquma)>,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45.5x112.2cm.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배헤윰, 토이가 (Toega),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27.3x162.2cm.jpg

배헤윰, <토이가 (Toega)>,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27.3x162.2cm.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1⟫ 전시장 한 쪽 벽면은 배헤윰 작가의 큰 캔버스들이 줄지어 채우고 있다. 그 크기와 색감, 형태로 인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그의 그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무엇을 그렸는지 알기 어렵다. <아쿠마>, <토이가> 등의 제목도 작품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에, 다시 한번 캔버스를 바라보고 눈에 들어오는 대로 무엇을 그렸을까 상상해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강렬한 색과 대담한 형태의 도형들. 구체적이지 않지만 무언가를 연상시키고,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예를 들어 필자는 <아쿠마> 속에서 하늘, 바다, 산, 초원, 구름, 창문 등을 찾아냈다. <토이가>에서는 더 자유로운 붓질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파란색은 파도, 보라색은 바람결처럼 알 수 없는 형체들이 연상시키는 대상은 그림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고도의 재현이 가능한 미디어로 인해 인간의 특정 지각 능력은 퇴화하거나 인지적 호기심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에 작가는 자유로운 이미지의 조합으로 가득한 회화를 통해 함축된 서사를 독해하려는 관객의 의지를 자극하고 이들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길 기대한다.

 

- 전시 브로슈어 中

 

 

이쯤 되면 "함축된 서사를 독해하려는 관객의 의지"는 확실히 자극된 것 같다. 계속해서 무엇이 보이는지, 어떤 이야기가 들리는지 눈과 귀를 열게 되니 말이다. 예컨대 하얀 캔버스 위에 점 하나 찍힌 그림 앞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이 작품 앞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을 표현했는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혹은 어떤 감정도 느끼기 어려운 그림 앞에서 생기는 거리감이 여기는 없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어떤 대상을 찾고 독해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무뎌진 감각"또한 자극된다. 왠지 여름과 어울리는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 머릿속이 비워지는 듯한 감각. 캔버스 뒤 미지의 공간이 펼쳐지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강렬한 색채의 형태들 간의 변주와 유기적인 구성이 주는 운동감을 통해서 관객에게 보다 자유롭고 원초적인 시각적 인지의 즐거움을 경험하기를 제안한다.

 

- 전시 브로슈어 中

 

 

추상 회화는 감상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우리는 그림을 볼 때 그것이 내보이는 물체, 인물, 상황, 이야기를 읽으려고 시도하지만, 추상화는 그것을 단번에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설명처럼 그의 작품을 보고 즐거움, 활기, 따뜻함 등 어떤 에너지를 얻거나 어떤 기분을 느끼는 등 작품을 통해 즐거움을 경험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배헤윰 작가의 그림을 보면 회화라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시각적 자극을 체감할 수 있다. 2차원 평면 위에서 벌어지는 색과 도형의 향연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을까? 대담한 색채와 단순한 형태의 조합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회화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박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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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람, <플레이어>, 2021, 캔버스에 페인트, 스텐실, 174 x 194 x 5.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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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람, <오토 (Auto)>, 2021

 

 

검은색 벽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방에 들어서면 파랑, 빨강, 초록의 페인트가 공간을 밝힌다. 박아람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회화는 도시의 밤 속 불빛, 신호등, 자동차 라이트 등을 연상시킨다. 작품의 신비스러운 그러데이션은 독특한 작업 방식을 통해 탄생했는데, 엑셀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먼저 구성을 하고, 캔버스 위에 스텐실 붓을 사용해 제작한 것이다.

 

19세기 카메라 발명 이전까지 회화의 주된 목적은 '재현'이었다. 어떤 것이 진정한 재현인지 그 기준은 달랐지만 회화는 주로 정확한 재현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회화는 단순 재현의 수단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과감한 표현의 매체가 되었다. 극사실주의 그림처럼 겉보기에 재현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은 작품들도 깊이 생각해 보면 단순히 재현을 위한 재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을 넘어 작가 본인의 생각과 철학을 재료 삼아 표현해 낸다는 것이다. 박아람 작가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재현 그 이상임은 물론, 그림과는 멀게만 느껴지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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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람, <플레이어> 전시 전경. (출처: Art & tok)

 

 

또한 <플레이어>에서 작가는 전시실 벽을 작품으로 활용했다. 벽에 칠해진 파란색 사각형은 마치 캔버스의 연장처럼 보이고, 캔버스 왼쪽 구석에는 검은 사각형을 그려 넣어 페인트가 칠해지지 않은 벽처럼 보이도록 했다. 우리가 쉽게 2차원의 평면이라고 생각하는 캔버스가 현실에서 사실은 부피를 가지고 있는 3차원의 물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갑자기 벽 앞에서 입체감을 드러내는 캔버스는 또 한 번 실제 3차원인 벽을 평면처럼 보이게 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박아람 작가의 작품에서는 디지털 툴로 밑그림을 그리고 붓으로 완성하며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캔버스를 설치물처럼, 벽을 캔버스처럼 사용하며 2차원 평면 매체의 한계를 넘어선다.

 

*

 

지금의 젊은 작가들이 이끌어갈 미술계가 기대되는 만큼 이들이 선보일 회화가 기대된다. 미래의 회화는 어떻게 달라질까? 어떻게 새롭게 우리의 감각을 자극할까? 어떤 새로운 기술과 접목되어 그 틀이 확장될까? 새로운 매체가 계속해서 생겨난다 해도 캔버스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여전히 궁금할 것 같다. 평범한듯 독특한 회화의 세계는 끝이 없다.

 

 

 

[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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