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도서]

글 입력 2021.07.1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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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 프롤로그 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일과 같이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골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척척 찾아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에게 푹 빠져있는 대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아마 신이 나서 일장 연설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지켜볼 때면 열정이 묻어나는 태도에서 대단함이, 한 가지에 몰두하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이 책에서도 저자를 비롯한 주변인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프롤로그에 실린 저자의 글에서도 역시 이 “무해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매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스 자이언트'는 친한 사이에 부르는 별명 같은 인상을 주는데, '기체거대행성'이라고 하면 그런 친근감이 사라진다. '자이언트'를 '거인'으로 직역하자니 그건 또 행성 같지가 않다.

 

- p121

 


가장 쉽게 눈에 띄는 점은 순수함이다. 여기에서 순수함이란 무無의 개념이 아니라 학문에 대한 고도의 열정과 온전한 몰두로부터 비롯된 의미라고 할 수 있으며, 제삼자로 하여금 감탄과 더불어 때로는 귀여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순수함은 내가 에세이를 읽으며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한데, 바로 자신이 푹 빠져있는 그 세계에 대해 자신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때이다. '가스 자이언트'와 같은 생소한 전문용어 번역의 어감에 대해 학자의 농담 섞인 진담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세계는 말로 변신하기 위해 나를 이용하는 셈이었다. ” (『말』, 사르트르, p233)

 

“탈륨은 가장 특이한 원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화학 성질이 제멋대로이고 앞뒤가 맞지 않아, 초기 화학자들은 그것을 주기율표의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때로 ‘원소계의 오리너구리’라고 불렸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올리버 색스, p309)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미루어 볼 때, 이런 문장들은 주로 철학자의 자서전이라든지 과학자의 에세이라든지 그런 책들에서 자주 찾아볼 수가 있다.

 

특히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사르트르의 자서전에서는 마치 그의 머릿속을 잠시 탐험하고 온 듯 생생한 표현의 문장들이 마음을 사로잡으며, 뇌신경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에세이에서는 신경학계에서 한때 떠돌았던 밈까지도 알게 될 수가 있다.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더 멀리, 통신도 닿지 않고 누구의 지령도 받지 않는 곳으로, 보이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진할 것이다. 지구에서부터 가지고 간 연료는 바닥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차 가벼워지고, 그 빛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 p156

 


서로 다른 분야 사이를 아우르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신선함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최근 문학의 분야에서 예를 든다면, 포항공과대학교 출신 김초엽 작가가 있을 것이다. 탄탄한 과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발간을 통해 국내 문학계에 SF 장르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으로, 문학과 과학을 가로지르며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충격을 선사한 바 있다.


이처럼 인문학적 관점으로 과학을 바라보는 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리는 것과 같다. 그 자체로도 신비로운 과학이지만, 다른 분야의 시각을 빌려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탐사선 보이저를 인간의 감성에 빗대어 바라본 이 인용 구절은 인상이 깊게 남았다.


탐사 활동을 끝낸 보이저가 출발했던 지구로부터 끝없이 멀어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탐사선 그 자체에 대해 어렴풋한 안타까움을 느끼거나, 인간의 삶을 투영하여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와는 별개로, 우리는 문학을 통해 9년 전 태양계를 떠난 보이저 1호를 새롭게 기억하고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굳이 화성이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을 했다. "화성에 우주인을 보내는 데 부품 하나라도 기여하고 싶어서요."

 

- p175

 


지금, 이 순간에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만큼이나 천문학에는 광범위한 연구 분야가 존재한다. 많고 많은 천문학 연구 분야 중에서도 국내에선 당시 연구 인력이 희귀했던 행성학, 그중에서도 화성 연구를 꿈꾸는 후배에게 저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부품 하나라도 기여하고 싶어서"라는 표현에서, 그 누구도 책임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꿈을 향한 자신만의 직업적 소명 의식을 눈치챌 수 있다. 이 숭고한 사명감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누군가의 삶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의미이기 마련이다.


나의 직업관도 그렇다. 공연 기획에 대한 나의 꿈은 음악 공연에 대한 동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왜 예술 자체가 꿈이 되지 않았고, 기획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순수 예술에 남다른 재능이 없다고 느껴서, 그러나 공연이라는 종합 예술을 이루어내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 정도로 답할 수 있다.


동경하는 대상 혹은 이상향에 설령 닿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은 마음, 아마도 그 후배 연구원이 가지고 있었을 직업관은 나의 직업 가치관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고, 화성 연구를 꿈꾸던 그의 마음을 짐작해 보기도 했다.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어느 별 볼 일 없는 천문학자에게는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 에필로그 中

 


사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천체 관측 동아리를 시작으로 처음 별자리와 밤하늘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천문학이라는 분야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원래 들어가고 싶었던 댄스 동아리는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담임 선생님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 차선으로써 사뭇 낭만적으로 보였던 천체 관측 동아리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특별한 계기라고 할 것이 없었던 시작과는 다르게, 학교 옥상에서 관찰하는 밤하늘의 별들, 교실에서 직접 만들어본 플라네타리움, 동아리원들과 함께 떠난 천문대 여행과 같은 경험들은, 나에게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

 

서울의 밤은 너무 밝아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인공위성인 줄로만 알았다는 친구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별자리를 만들어주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세계에 새로운 무언가가 들이닥친다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다. 그게 평생의 꿈이 되거나, 혹은 하나의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더라도, 그렇게 자리 잡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그의 세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해진다고 믿는다.


자신의 세계 한 켠에 천문학을 내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학문적인 기초나 개념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지만, 천문학과 천문학자에 대한 매력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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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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