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는 모두 다른 모양의 조각이다

당신은 문화다양성을 존중합니까?
글 입력 2021.07.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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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문화다양성을 존중합니까?”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을 못 들어본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다양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근 문화재단 기획단으로 활동하며 문화다양성에 대해 알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는데, 기획하는 주체가 되니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문화다양성이 담고 있는 내용이 생각보다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화다양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존중해야 하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문화다양성이라는 용어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서울연구원에서 발간한 ‘서울시 문화다양성 시민인식지표 개발과 시범조사’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 서울시민 ~명 중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84.9%, ‘없다’고 대답한 사람이 15.1%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문화다양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문화다양성과 연관이 있는 11개의 항목 중 문화다양성과 연관이 있는 항목을 모두 고르라고 한 결과, 인종/국적이 89.8%로 가장 많았고 종교/정치적 견해가 56%, 세대가 42.6%로 뒤를 이었다. 출신 지역은 36.8%, 성별은 35%, 장애는 26.5%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으며 소득은 9.8%에 그쳤다. 문화다양성이라는 것의 인지도는 높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존중해야 할 영역에 속하는지는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화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례는 일상 속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당장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 창에만 들어가도 볼 수 있는 온갖 혐오 표현이 문화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혐오 표현은 주로 나와 다른 집단, 또는 개인을 비하할 때 쓰이며 해당 집단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내용이 많다. 노인이나 아이, 여성, 외국인 등을 비하하는 표현이 모두 혐오 표현에 속한다.

 

혐오 표현은 특정 집단(또는 개인)을 배제하는 차별 행위로 이어지곤 한다. 당연히 이 또한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시아인 역할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노키즈존,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편의시설 등이 모두 문화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은 사례다. 꼭 ‘혐오’와 ‘차별’이 두드러지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특정 집단을 비가시화하는 것도 명백한 차별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가 피곤하다고 말하는 것, 성소수자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도 전부 차별이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다.

 

이쯤 되면 ‘너무 피곤한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다양성에 속하는 영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 문화다양성은 우리의 삶 전반에서 지켜야 할 가치다. 한 집단에서는 혐오의 주체였던 사람이 다른 집단에서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혐오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혐오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각자의 성별, 국적, 종교, 연령, 소득, 식성 등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이거다. 나도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나도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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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ron Kim, 제유법 Synecdoche, 1991-present, oil and wax on panel, each: 10 x 8" (275 panels), Courtesy the artist and Max Protetch Gallery, New York, moma

 

 

글을 쓰며 문득 떠오른 두 작품이 있는데, 바이런 킴의 <제유법 Synecdoche>과 영화 <초미의 관심사>다. 두 작품 모두 ‘다양성을 존중해!’라고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다양성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제유법>은 크기가 같은 단색 회화 여러 점이 모여서 한 무리를 이루는 작품인데, 언뜻 보면 그냥 깔끔한 모자이크처럼 보이지만 의미를 알고 보면 새롭다. 각각의 작은 캔버스가 담고 있는 색은 작가가 주변인들의 피부색을 표현한 것이다. 흰색에 가까운 밝은색부터 아주 짙은 갈색까지, 다양한 색이 한데 모여 이루는 조화는 아름답다. 하나하나의 캔버스처럼, 우리도 모두 다른 색, 다른 모양의 조각일 뿐이다.

 

이 작품을 보고 ‘뭐 이런 게 다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캔버스에 칠해진 색은 그냥 색일 뿐이다. 그 태도 그대로 타인을 대하면 된다. 피부색은 그냥 한 사람을 이루는 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성적 지향이나 외모, 주거 형태도 마찬가지다. <초미의 관심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다. 겉모습은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배달원 정복(테리스 브라운), 성소수자인 타투샵 사장(김지훈), 싱글맘인 타투샵 아르바이트생(안리나), 드랙퀸으로 활동하는 마이클(이수광), 유리의 여자친구인 선우(오우리). 각각 빨간 레인코트와 파란 수트를 입고 이태원 골목을 활보하는 순덕(김은영과) 초미(조민수)에게 이들은 그저 이웃 중 한 명일 뿐이다. ‘너 왜 그래?’라든지, ‘언제부터 그랬는데?’처럼 나와 타인의 경계를 짓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타인에게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나도 소수자인데, 굳이 다른 소수자까지 존중해야 하나?’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당장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욕적인 말을 듣고 실질적인 차별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말은 쉽지만, 실질적인 차별을 철폐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어렵다. 개인의 인식이 바뀌기도 어렵지만 사회가 바뀌기는 더 어렵다. 그렇기에 개인의 노력이 더더욱 중요하다. ‘나’의 인식을, 태도를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해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나와 타인의 다름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알아야 나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며,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어떨까.

 

 

참고 자료

서울연구원, 「서울시 문화다양성 시민인식지표 개발과 시범조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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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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