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직은 이런 감성이 좋다 [음악]

글 입력 2021.07.03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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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꾸준히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새로운 아티스트, 노래, 앨범을 찾아 듣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노래보다는 예전에 듣던 노래를 찾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어느 기사에서 읽은 후였다.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듣던 노래만 듣게 되더라도 선택지가 넓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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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크리스탈 티'는 내 재생목록에 자리를 잡았다.

 

음악 어플이 나에게 그의 앨범을 추천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크리스탈 티’라는 이름보다는 옛날 영화 포스터를 닮은 앨범 커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밑에 작게 적힌 앨범 장르는 ‘인디, 록/메탈’. 양 갈래 머리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인디 가수가 부르는 록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 닿아줘



 

 

그렇게 알게 된 노래가 바로 ‘그곳에 닿아줘’이다. 가장 처음 듣게 된 노래이자, 여전히 그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평소에 귀를 때리는 듯한 기타 소리를 좋아하는데, 이 노래는 시작하자마자 쨍한 기타와 함께 매력적인 베이스 라인이 등장한다. 첫 10초가 채 지나기 전에, 나는 이 앨범의 전곡을 내 재생목록에 추가했다.

 

제목만 놓고 보면 어딘지 모르게 은밀한 느낌이 든다. ‘닿는다’는 것은 보통 무엇이 어디에 가 닿았다는 문장으로 쓰인다. 닿아 ‘달라’고 굳이 부탁하는 것은 뭘까? 닿아 달라고 하는 ‘그곳’은 또 어디인가? 가사를 보면 조금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기다려 왔지만 참을 수가 없어 / 외로움의 근원 그것은 사람이기에 / 너 하나로 채워진다면 멋진 인생일 거야 / 나를 태어나게 해줘
 


말하자면 불완전한 나를 채워줄 사람, 그리고 그를 만나 느끼는 설렘과 사랑에 대한 노래이다.

 

하지만 노래 자체가 마냥 신나기만 하지는 않다. 빠른 템포와 신나게 달리는 기타 위로 입혀진 멜로디는 어딘가 애달픈 느낌마저 든다. 어쩌면 이 대책 없는 사랑의 끝을 예상해서 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사람과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곡은 앨범을 통틀어 가장 사랑이 넘치는 순간을 담은 곡입니다. 아마 이전 트랙의 엔딩에 나온 시트 어딘 가에 숨겨진 사랑을 제대로 찾아낸 걸지도 몰라요. 언제나 공허하고 결핍되어 있다고 여겨온 자신이 채워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에서 특별한 사건이 되지요. 사랑스러운 상대에게 너로 인해 채워지고 싶다고 귀여운 투정인 듯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넘치는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 '[핑크 무비] 셀프 라이너 노트'에서 발췌

 


보통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들과는 분명히 어딘가 다른 부분이 있다. 사랑해서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노래는 많다.

 

하지만 크리스탈 티의 노래가 매력적인 이유는 선명한 메시지 대신 삶의 단면에서 포착해낸 깊고 뾰족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가사의 의미, 사운드의 구성을 곱씹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해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음악을 듣는 과정을 한층 더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예명인 '크리스탈 티(Crystal Tea)'는 본명인 ‘차수정’을 바꿔 쓴 것이다. 이름부터 키치한 느낌이 가득한데, 앨범 역시 그에 걸맞게 반짝거린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밴드부 활동을 하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졸업 후 '아이덴키티'라는 밴드를 만들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솔로로 전향했고, 2013년 부산문화재단의 신인 아티스트 지원 프로젝트 ‘뉴 브리즈 인디’에 선정되며 데뷔한다. 초창기의 곡들은 최근 발매된 앨범에 비해 좀 더 잔잔하고,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특히 '보이즈 캐러밴'과 '나쁜아이'는 직설적이고 통통 튀는 가사가 매력적이다.


이후 발매된 여러 장의 싱글 앨범과 두 장의 미니 앨범은 카랑카랑한 기타 사운드와 90년대 감성을 담은 노래들로 가득하다. 가슴이 벅찬 노래, 꼭 애니메이션 엔딩 곡이나 주제가로 쓰여야 할 것 같은 노래들을 좋아한다면, 아마 크리스탈 티의 노래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중 내가 추천하는 곡은 ‘특급 보이프렌드’, 그리고 ‘낭만파 A.I.’다.

 

 

 

특급 보이프렌드


 


 

 

"서툰 키스가 주는 열등감 속에서 무엇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어"

 

'특급 보이프렌드'는 몽글몽글한 코드 진행이 매력적이다. 청량한 기타 톤과 신디사이저 소리도 참 잘 어울린다. 노래와 제목과 잘 어울리는 귀여운 가사 또한 상큼하게 느껴진다.

 

 

 

낭만파 A.I.


 

 

 

"아아 인스턴트로도 충분히 위로받고 있었는데 다시 또 잊고 말았나 봐 우린 아무것도 공유할 수 없는 거울 속 유령 같은 허상이었을 뿐인데"


낭만파 A.I.는 크리스탈 티 특유의 레트로한 정서가 잘 드러나는 곡이다. 신디사이저와 노래 곳곳에 숨은 효과음, 그리고 키보드 소리가 뒤섞여 노래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데,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점이 좋다. 크리스탈 티의 맑고 깔끔한 음색의 매력이 잘 드러난다.

 

*

 

더위와 습한 날씨에 지친 날이면 일이나 공부는 커녕 누워있는 것만도 힘들다. 그럴 때, 이렇게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딱 이 노래만 끝나면 일어나야지'하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스피커로 신나는 음악들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는 것도 좋다.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크리스탈 티의 청량한 노래와 함께 잠시나마 더위를 잊어보는 건 어떨까?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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