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인터뷰집 -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고백과 자각

글 입력 2021.07.02 05: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직업으로서의예술가-고백과자각_평면표지.jpg

 

 

인터뷰는 생각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다.

 

업무 특성상 주기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대체로 잘 정리된 생각을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무의식을 파헤치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질문지를 미리 전달하더라도 이에 대해 온전한 내용이 도출될 확률은 굉장히 낮다. 보이지 않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형태를 부여해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다지 익숙한게 아니어서일지도. 그래서 인터뷰는 본인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 사고의 물꼬를 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생각보다 거친 작업인 셈이다.

 

'편안하게 대화하듯 인터뷰했다'는 얘기 아래에는 수면 밑 오리의 발처럼 쉴새없이 머리를 움직이는 인터뷰어의 노력이 있다. 마냥 '편안한 대화'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인터뷰란 허심탄회하게 마음 터 놓고 얘기할 친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특정한 목적과 방향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버려도, 특정한 대답을 얻어내려는 날선 긴장감에 빠져버려도 문제다.

 

10여 년 가까이 신문과 잡지를 종횡무진하며 인터뷰 전문 기자로 거듭난 박희아 기자의 신간을 살펴보자. 박희아 기자는 웹진 에서 취재팀장을 맡았으며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다. 아이돌 전문 기자에서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자신의 역할과 가능성을 넓혀왔다. 그리고 그녀는 기존 일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복한 이 팬데믹 시기에 책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고백과 자각>을 출간하며 국내 예술계가 마주한 새로운 국면과 이러한 상황을 견뎌내는 다양한 예술가의 속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책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 고백과 자각>은 팬데믹 이후 국내 예술가들이 어떤 변화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는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생존 방식을 터득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고 사유한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코로나19가 아직도 사회를 휘청이게 하는 지금 공연장과 영화관은 비었으며 연극 배우는 일자리를 잃어가고 음악가와 아이돌은 온라인 콘서트에 익숙해져야 하는 애달픈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 것인지,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책에서는 다양한 방면의 이야기를 토대로 시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15.jpg

 

18.jpg


 

그렇기에 이 책은 인터뷰집 시리즈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의 첫 번째 책인 동시에 2021년 오늘날 국내 예술가를 고찰한 의미 깊은 책이다.

 

음악가 겸 배우 B1A4 산들, 음악가 유빈, 음악가 핫펠트, 음악가 10cm 권청열, 배우 김경수, 배우 겸 음악가 안희연(EXID 하니)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예술가들의 솔직한 인터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야기다. 작품 활동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온 이들이기에 오히려 예술가로서의 고백과 자각에 대한 속 이야기를 깊이 들을 일이 드물었던 것이다.


 

Q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내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

 

A 맞아요. 저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서 그래요. 하지만 이런 예민함을 지니고 있는 게 옳은 거라고 해도 남을 찌르면 안 되는 거예요. 가시로 어떤 정의를 보호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몸을 흔들면서) 이러고 다니면 온갖 사람을 다 찌르고 다니는 거니까. 아마 제가 말한 선배들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고, 제 연기도 좋아지겠죠. 제 나이보다 더 성숙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나이에 맞게 잘 익어갔으면 좋겠어요.

 

- 76p, <예술가의 고백 - 05 : 배우•정욱진 "내가 가진 가시로 남을 찌르면 안 돼요."> 중에서

 

 

Q 좀 더 아프고 고통스런 과정을 뜻하는 건가요.


A 예술을 하는 사람들 자체가 기본적으로 고통과 손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요. 고통과 손해에 무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예민하고 민감하면서도 그것을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게 익숙한 사람들인 거죠. 예술가들은 자기 작업이 얼마만큼의 가치로 보상을 받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혹은 내가 되게 노력하고 공을 들인 것에 대해 낮은 가치가 매겨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자기를 소모하고 희생하면서 그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그 익숙함에 악용당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는 거죠. 소위 '열정페이' 같은 것부터 해서, 음원 수익 분배 구조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분명 말이 안 되는 구조인데 그 와중에도 많은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을 기꺼이 음원 플랫폼에 공급하죠.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요. 그러니까 시스템은 고쳐질 이유가 없는 거고요. 저를 포함해서 자발적으로 이 불합리한 시스템에 스스로 공급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으니까.

 

- 132-133p, <예술가의 고백 – 10 : 음악가•이이언 "표현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어서, 그래서 예술을 해요."> 중에서

 

 

Q 지금 한국의 여성 음악가들이 살아남기에, 이 사회는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일까요.

 

A 중년의 여성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라는 거요. 여성 음악가들, 아이돌들을 포함해서 잠깐 쓰는 액세서리처럼 우리를 소비하고 젊은 여성의 에너지를 캐치프레이즈로 꾸준히 이용하죠.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다른 여성 음악가들을 선택해서 같은 과정을 반복해요. 싱어송라이터인 여성 음악가들은 3, 4집쯤 되면 그걸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이 감정을 이야기하기가 참 어려운 게, 질투로 보일까 봐. 그리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어, 나 김윤아 좋아하는데! 이소라 좋아하는데!" 에이, 딱 두 명 있는 거라고요. (웃음) 김윤아 씨와 이소라 씨가 수많은 여성 음악가들의 표준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대단한 실력과 인지도를 가진 분들만 살아남으라는 법은 없죠. 다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 264-265p, <예술가의 자각 – 20 : 음악가 겸 작가•오지은 "중년 여성으로 창작을 한다는 것은 은근히 힘든 일이에요."> 중에서

 

 

예술은 무척 특별해 보이지만 그 예술 세계를 이루는 것은 결국 한 개인의 평범한 일상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고백'과 '자각'을 듣고 있다 보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또 다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겹쳐보게 된다. 이들에게 예술이란 호흡과 같은 것이라면 이들을 끊임없이 고뇌하게 만드는 건 결국 삶 그 자체라는 이야기이므로. 인터뷰집을 마주한 독자들 역시 각자의 '고백'과 '자각'의 과정을 거치며 생각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