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익명성에 자신을 숨긴 사람들 [문화 전반]

무책임한 자유는 악이다
글 입력 2021.06.30 13: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오늘날 우리 세상은 두 가지로 나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 세계와 온라인 세계.

 

2000년부터 급속히 성장한 온라인 세계는 2021년 현재 거의 일상이 되어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매일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통해 영상을 보고 메신저를 주고 받으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멀리 사는 사람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으며 터치 한번으로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고 과거였다면 쉽게 접하지 못했을 명강의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우리가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것들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만큼 우리는 온라인에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법을 위반하는 것만 아니라면 온라인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VR, AR 기술이 좀 더 발전하고 상용화되는 시점이 온다면, 현실과 가상의 구분은 거의 없어질지도 모른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가상 세계가 펼쳐져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짜릿한 경험들을 우리에게 선사해 줄 테다.

 

[크기변환]4721495.jpg

 

위와 같은 온라인 세계는 기본적으로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다. 닉네임이나 가명을 사용함으로써 실제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닉네임을 짓는 것에는 제약이 없다. 남들에게 불편하게 보일만한 닉네임만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것이든 닉네임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라인 세계에서 자신의 실제 이름을 닉네임으로 정하지는 않는다. 많고 많은 닉네임 중에 사용자의 진짜 이름을 적용한 닉네임은 거의 보기 힘들다. 왜 사람들은 실제 이름을 온라인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간단하게만 따지면 '굳이 이름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로 답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더 깊게 파헤쳐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문제인 악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름이 가지는 의미


 

자, 우선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가 이름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곧 나를 설명하는 가장 쉽고 빠른 이상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름을 쓰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나를 설명해야 한다면 그건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식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나는 키가 177cm이고 얼굴은 조금 둥근 편이고 눈매는 날카로워. 머리는 반곱슬이고 웃을 때 보조개가 보이는 편이야."(필자의 모습은 아니다)

 

어떤가? 만나는 사람마다 나 자신을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면 시간이 매우 많이 소요될 것이다. 더불어 위와 같은 방식은 직관적이지 않다. 얼굴이 둥글고 둥글지 않은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볼 수 있다. 눈매가 날카롭고 날카롭지 않은 것 또한 개개인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만약 A라는 사람이 나를 모르는 B라는 사람에게 위와 같은 방식으로 날 소개한다면 B는 결코 나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B가 보기에 나는 보조개가 많이 있는 편이 아닐 수도 있고, 키가 177cm에 근접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취미나 하는 운동, 즐겨 듣는 음악의 장르, 현재 하고 있는 일 등으로도 날 설명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점들은 신체적인 조건보다는 어느 정도 보편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을 딱딱 구분할 수 있기에)좀 더 명확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말이 길어진다는 점에서 나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꾸미기][크기변환]4374402.jpg

 

 

하지만 몇 글자 되지 않는, 보통은 3글자인 이름으로 날 설명한다면, 누구나 쉽게 수긍하고(애초에 반박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빠르게 이해한다. 나의 모든 면들을 이름이라는 단 세 글자로 압축해서 표현한다. 힘들여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름 세 글자만 남들에게 알려준다면 그것으로 나를 대신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름은 각 개인 고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름이 있기에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구분되어 명확히 인식될 수 있다. G라는 그룹에 10명이 있다고 해보자. 이 10명 중에 동명 이인이 없다는 가정하에, 10명 모두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듣고 나서부터는 상대방을 구분하기 쉬워진다. 이때 이름은, '다른 9명으로부터 한 명을 손쉽게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마치 우리가 사과와 복숭아를 '이름'으로 손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과와 복숭아는 색깔로 구분할 수 있고, 향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맛으로도 구분할 수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름으로도 구분할 수 있지 않은가. 사과와 복숭아를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에게는 둘의 차이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향을 맡을 수 없는 사람, 맛을 느낄 수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둘의 차이를 얘기할 것인가? 어렵게 고민할 필요없이 이름 몇 글자만 알려주면 충분하다. "이건 '사과'라 불리는 과일이고 이건 '복숭아'라 불리는 과일입니다."라고 하면 된다. 한마디로 이름 그 자체가 '차이점'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름은 곧 '타인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고유의 정체성'이다. 다른 사람의 얼굴이 어떻고 눈매가 어떻고에 상관없이 딱딱 알아차리고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최적화된 방법이다.

 

그렇기에 이름은 곧 '나'라는 인식을 우리는 평생동안 하고 살아간다. '나=이름'이라는 공식을 기본적으로 깔고 가기에, 우리는 이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이름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이름을 욕보이기 싫어한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과연 이름이 필요할까?



하지만 온라인 세계에서 '한 개인을 규정하는 방식'에는 현실과 같은 제약 사항이 거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이름의 특성을 대입시켜보자.

 

현실 세계에서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 이름이 필수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눈매와 나와 같은 얼굴형을 지닌 사람들로부터 '나'를 구분해내기 위해 이용한 방법은 '이름'을 통해 나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세계에서는 그것이 필수적이지 않다. 아니, 그렇게 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가 온라인 세계에 얼굴을 비추는가? 우리가 온라인 세계에서 다른 사람을 직접 만나는가? 더불어 다른 사람들도 실제 얼굴을 알리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내 고유의 정체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내가 누군지, 내 모습이 어떻고 내 취미는 무엇이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를 알릴 필요가 없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해서 얻는 이익도 그리 크지 않다. 그렇기에 이름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그럼 온라인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구분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실 세계였다면 이 질문에서 막혀 이름을 사용해야 했지만, 온라인 세계에서는 이런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우리는 온라인 세계에서 여러 모습을 가지지 않는가? 게임으로 치면 '부캐'가 그럴 것이고, SNS로 치자면 '부계정'이 그럴 것이다. 내가 어떤 커뮤니티에서 '방귀대장 뿡뿡이'와 '짜장면 먹는 짜잔형'이라는 닉네임으로 동시에 활동한다고 할 때, 사람들 입장에서는 두 존재가 전혀 달라 보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두 존재가 같다.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두 존재가 같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그렇기에 온라인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여기서 더 무서운 얘기를 하자면 온라인 세상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인 척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나인 척 할 수도 있다.

 

 

[크기변환]캡처.JPG

[크기변환]1.JPG

[크기변환]2.JPG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온라인 세상에서 위장은 일도 아니다. 아무 계정이나 생성하고, 그 사람의 평소 언행을 그대로 따라하며 상황에 맞는 사진만 올리면 당사자가 직접 파악하지 않는 이상,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극단적인 상황을 언급하긴 했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잃는 손해보다, 얻는 이익이 더 많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이유로 온라인 세상에서는 이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되려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손해보는 행위로 여겨진다.

 

 

 

이름이 사라진 세계, 익명사회


 

[꾸미기][크기변환]379817-PCBJ5N-46.jpg

 

 

이쯤에서 다시 한번 이름의 특수성에 대해 언급하고 가야겠다. 위에서 '나=이름'이라고 여기는 경향 때문에 이름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내 이름을 걸고-"라는 말을 접한다면 그것은 곧 '내가 이 정도까지 한다'라는 의미이다. 책임이 크다는 말이며 벼랑 끝에 내 몰린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다.


왜? 자신의 모든 것인 '이름'을 거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는 마음으로 나의 의지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만큼 한 개인에게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그런 무게가 있는 이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곧 책임감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말과 행동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더이상 사람들은 온라인 세계에서 "내 이름을 걸고-"같은 책임감을 표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책임감을 내려놓고 얻은 자유로 현실세계에서는 할 수 없었던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평소 아니꼬왔던 사람들을 마음껏 비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필터링 없이 막말하며, 남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거침없이 깎아내린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모멸을 느낄만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는 동시에 우월의식에 빠져 끝도 없이 비교질을 해댄다.


이름이 사라진 온라인 세계는 방종으로 인한 악플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악플은 왜 위험한가?


 

[크기변환]4056374.jpg

 

 

책임 없는 자유와 끝 없이 퍼지는 악플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악플을 경계해야 하는가?


악플이 위험한 이유는 그런 악플에 중독되면 자신이 하는 행동들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팬데믹 사태 이후로 중국에 대한 혐오 표현이 온라인 상에서는 급증했는데, 그러한 표현 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많다. 가장 최악의 혐오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존중 자체가 없는 말들이 자주 보인다. 사람들은 그런 표현들을 그저 '유머'라며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낄낄거린다. 그리고 그러한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 왜 우리 행동을 가로막냐며 역으로 공격한다.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간성을 무시하는 악이 만연하게 퍼졌다.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다수가 그렇게 행동하니, 그걸 따라하는 자신의 행동도 정당한 줄 안다. 그 중에 자신의 행동이 정의라 믿는 사람도 있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악에게 한번 잠식 당하면, 그땐 저항할 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혐오 표현에 점차 익숙해지다보면 어느새 생각 속에 그런 혐오표현이 깊게 자리잡아 나도 모르는 순간 그런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써버리게 된다. 온전했던 사람도 오랜기간 악에 노출되면 자신이 겪은 악이 정말 악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실천 방안 : 악플에 동조하지 않기


[꾸미기][크기변환]4_NoGirl-1-ok.jpg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악의 활동에 단호히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혐오가 판치는 현대 사회에서 악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행동의 우선 순위로 나는 '악플에 동조하지 않기'를 주장하는 바이다. 중국인을 향한 혐오 표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수없이 많은 혐오 표현이 존재한다. 지역 갈등, 성별 갈등, 계층 갈등, 노사 갈등, 세대 갈등 등에 기반한 많은 혐오 표현과 악플이 존재한다.


만약, 나부터 그런 악플에 아무런 호응도, 공감도 해주지 않고 무시한다면, 악플과 혐오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악플은 조금씩 힘을 잃고 제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악이 퍼지는 근본적인 원인인 '일상화'가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 한다. 혐오 표현과 악플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이것은 정책적이고 규범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다. 악플을 제재하기 위해 댓글창 자체를 막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또한 특정 말에 대해 필터링을 하게 된다 해도 사람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돌려말해 악플을 다시금 표현해낸다. 제도적 차원에 대해서는 악플을 막는 것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부터 정화해나간다면 그것은 제도, 법률, 정책적 차원의 대응방안보다 훨씬 큰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조금씩 실천해 나간다면, 나부터 실천하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면 언젠가는 우리 세상에 악플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큰 것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폭풍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로부터 세상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에디터.jpg

 

 

[김재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