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역사의 비극을 건너온 사람에게 [공연]

새들이 다시 날아갈 수 있도록
글 입력 2021.06.26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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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즉각반응의 연극 <새들의 무덤>이 6월 5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공연은 한때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폐허가 된지 오래인 마을을 찾은 주인공 오루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곳에 홀로 서서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하던 '오루'는 새 한 마리를 만난다. 새를 따라가던 그는 기억을 더듬으며 과거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작품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한 무대 위에 그려낸다. 현재에서 시작해, 1968년으로 돌아갔다가 여러 시간을 관통하고 다시 지금, 여기에 도달한다. 그 여정은 '오루'라는 인물의 순탄치 않았던 삶을 따라 진행되는데, 우리는 그 인생의 파편을 보며 거대한 역사의 조각 속 숨어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오루를 따라 과거의 일을 현존하는 사람의 기억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연극은 계속해서 오루의 기억 속 틈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관객들이 틈을 스스로 채울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극의 공간은 물론 이야기를 이루는 시간마저 분절되어 있다. 무대 또한 말 그대로 텅 비었다. 아무런 배경이나 무대 장치도 없고, 최소한의 소품만 놓여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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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만이 우리와 오루의 기억을 잇는 유일한 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들은 손에 없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다. 우리는 그들의 빈손에 들려있었을 많은 것들을 상상하며 오루의 기억을 구성하는 데 끼어들게 된다.

 

우리는 역사 속 잊힌 개인들의 삶을 상상하고 그 빈 부분을 채워나가며 오루 개인의 기억 속에서, 현재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것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배우들은 연기를 통해 분절되어 덩어리진 시공간을 소개하며 관객들이 그 틈을 메울 수 있도록 한다. 그들은 생명력 있는 연기를 통해 우리가 그 사이를 메울 수 있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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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명력은 그들의 몸을 통해 주로 드러난다. 학생운동으로 섬에 도망 온 성규와 연인 정숙이 바다에 빠져 보여주는 허우적대는 움직임, 마을에서 진행되는 씻김굿, 장면과 장면 사이 인물들이 등퇴장하며 추는 춤 등은 연극만의 고유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공연은 기억 속의 비극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제의적 요소를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각인시킨다. 그리하여, 죽은 이들을 기리며 달래는 전통적 애도와 경쾌한 리듬을 통한 기억 복구 작업을 동시에 시도한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죽거나 사라진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있지 않고 무대 구석에서 계속 날갯짓을 시도하는 것 또한, 갓 태어난 새의 생명력과 같이 그 힘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의 일부로 다가오기도 한다.

 

<새들의 무덤>은 역사 사이의 여백 속 사람들의 삶을 그것만의 에너지로 전환한다.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 사이에 뜬 공백과 과거와 현재 사이 어디인지 모르게 끼어 있는 존재의 어색함 등을 관객들이 채울 수 있도록 그 몫을 남겨 둔다.

 

우리는 그 사이에 변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잊힌 얼굴들과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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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극 속 오루 개인의 기억이 객석에 앉아있는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흡수되고, 우리의 기억은 큰 역사의 조각 사이 공간을 메워 간다. 그렇게 오루의 여행을 이끌어 임무를 완수한 새들은 날갯짓을 시작하고, 오루의 이야기는 더 이상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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