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 '일기시대' [도서]

'일기시대'와 함께하는 나의 일기 이야기
글 입력 2021.06.1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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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랜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나 많은 고민을 한 적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약 3개월가량의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씩은 꼬박꼬박 글을 기고해왔다. 꾸준히 글을 쓰는 행위는 내게 든든한 자족감과 충만한 기쁨을 안겨주었지만, 그것에 부합 하는 생활 리듬과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함께 느끼게 했다.

 

나는 어느 때에 꾸준하게 글을 썼었나, 어떤 순간에 가장 쓰고 싶다고 느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니 나의 경우는 일기를 쓸 때였다. 매일 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양키캔들에 불을 붙인 후, 머리맡에 놓인 일기장을 펼치고 잠 못 이룬 상념들을 펼쳐내는 시간이 나는 눈물 나게 좋았다. 일명 '다꾸'. 예쁘게 다이어리를 꾸미는 친구들처럼 스티커를 붙이거나 오목조목 다음 날의 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글로만 빽빽하게 채워진 일기들은 하루에 세 장을 훌쩍 넘길 때가 많았다. 마음에 드는 책 속 구절들을 필사할 때도 있었고, 음악을 들으며 떠오르는 느낌을 담아 시 비슷한 것들을 끄적이기도 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와서도 다음날 일어나보면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뭐라도 끄적인 흔적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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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이야기를 눌러 담은 펜 촉에는 기쁨과 슬픔들이 묻어났다. 무엇이든 문장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나도 날 알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기에 내게는 이 시간이 꼭 필요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오늘은 반드시 마음에 드는 글을 완성해내고 말 거야!’라는 다짐의 순간에 글이 써졌다기보다는, ‘생각이 짧은 나란 아이는 조금 돌아볼 필요가 있어.’라며 일기장을 대뜸 펼쳐 무엇이라도 써 내려간 날에 글은 완성되었던 것 같다. 제출을 위한 글을 완성시켰다는 흡족함이 아니더라도, 일기일 뿐인 일기라도 보람찼다. 하나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간에 그날 하루를 나쁘지 않게 마무리 짓게 했다.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하면서 일기 쓰는 일을 잠시 중단했다. 문화 초대를 받아 써야 하는 리뷰들도 많았고, 오피니언 또한 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시간을 그렇게나 사랑했으면서, 일기라는 것은 다른 글들에 비하면 무용한 것이라고 여긴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만의 리듬으로 연주하고 싶은 마음에 속는 셈 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른 글들도 일기처럼, 대단치 않은 문장이라 할지라도 매일 꾸준히 쓰기 시작했다. ‘매일 한 자 이상만 써도 성공한 거다.’라는 마음은 두 장, 세 장을 쓰게 했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어깨 위에 가득한 짐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애정도 다시금 샘솟았다.

 

 

일기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사실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

 

문보영, <일기시대> 중에서,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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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일기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까지 글을 기고하며 글감이 떠오르지 않은 날이 없던 것도,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도, 어떤 방식으로든 쓰는 일은 꾸준히 하고 싶다고 다짐한 것도 모두 일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일기장에 쓴 글을 토대로 쓰인 글들이 많긴 하지만, 나 또한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 자체를 사랑한다. 일기에 대한 애정을 일기장에 표현하는 것은 왠지 낯간지럽기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던 문보영의 <일기시대> 와 함께 이곳에서 일기 몰래 일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문보영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시집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등을 냈다. 손으로 쓴 일기를 독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일기 딜리버리'를 운영하고 있다.

 

<일기시대>는 일기를 묶은 책이면서 동시에 일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일기론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 번쯤 '일기가 내 애인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라며, 이 책에서 일기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한 그 경계에 있는 글들을 모았다고 말한다. '나'라는 화자를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면, 상상의 친구 '뇌이쉬르마른'이 등장하여 삼인칭을 사용하기도 하고, 자신의 방을 러프하게 그린 그림들을 통해 글의 엄숙함을 덜어내기도 했다.

 

 

 

일기의 궤적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한 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누구나 아주 오래전 초등학생 때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네모난 실내화 가방을 무릎으로 툭툭 차올리며 친구들과 앞다투어 교실에 들어서서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조례 시간이 찾아왔고, 선생님은 인사 몇 마디와 함께 학생 전체의 일기장을 거둬 가시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그들에게 나의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때만 해도 나는 선생님의 칭찬이 고픈 모범생이었기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출해야만 했었던 그 당시의 일기라는 것은, 우리가 최초로 경험했던 연재 노동이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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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는 억지로라도 재미있는 일을 찾아 실감 나게 일기를 썼다. 어린 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퍽도 흥미로웠던 모양인지 굴러가는 낙엽 하나로도 한두 페이지를 꽉 채우는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세나의 일기를 읽으면 영화를 보는 듯 순간이 생생하다.”,“선생님도 너희들의 시선이 부럽다.” 등의 칭찬들은 꾸준히 일기를 쓰게 하는 습관을 형성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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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에는 형식이 없었다. 긴 글이 쓰기 싫은 날은 내 맘대로 시를 구상하여 적기도 했고, 그날 본 책이나 영화의 감상문을 적어내기도 했다. 가끔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다 정도로 알리바이를 증명하듯 쓰기도 했으며, ‘마주 이야기’ ('마주보고 이야기하다'의 준말로, 당시 초등학교에서 배워온 내용인 것 같다.) 라며, 마치 시나리오처럼 등장인물들의 대화만으로 이어지는 글로 하루의 일과를 풀어내기도 했다. 마음대로 주제를 정해 글을 써도 숙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기장 하단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혀있었고, 나는 곧 그곳에는 무슨 이야기를 써도 상관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나만의 일기장을 만든 것은 <안네의 일기>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숨을 곳을 찾아다니던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 읽으면 금세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만다. 그러나 당시 성숙하지 못한 나는 안네가 자신의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하듯 글을 쓴 것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듯싶다. 그때 내 일기장의 이름은 키티와 세나의 합성어인 ‘티나’였으며, (이 기억을 되살리고는 온몸에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학교 제출용 일기장이 아닌, 내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나만의 친구 같은 일기장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매일같이 일기를 쓴 것은 아니었지만, 기쁨과 슬픔을 나눌 사람이 필요한 날에는 늘 일기장을 찾았다. 어린 날의 나는, 지금보다 더욱 곁에 있는 사람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깊은 사념들은 꼭 일기장에만 털어놓았던 것 같다. 한바탕 글로 써 내려간 후에는 후련함을 느꼈고, 내가 변화와 도약을 시도한 기점에는 꼭 일기장과 글쓰기가 존재했다.

 

비밀을 꽁꽁 숨기다가 어쩔 수 없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복두장의 이야기처럼,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가 쌓여간 이후에는 쩌렁쩌렁하게 외치며 누군가에게 선명히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입안에서 또르르르 알사탕을 굴리듯 속에서만 맴돌던 이야기는, 한 차례 숙성의 시간을 거쳐 농축된 진심으로 태어난다. 대단치 않아도, 그 누가 뭐라 해도 애틋한, 나만의 '글'이라는 형태로.

 

 

 

미워할 수 없는 일기, 다른 이들의 일기를 읽기


 

 

일기를 쓸 때 나는 나에게서 가장 멀어진다.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타인을 만나고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일기에는 늘 타인의 흔적이 묻어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을 때도 비슷하다. 책에 적은 것처럼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나의 영혼은 상대의 영혼과 미묘하게 뒤섞이면서 나는 약간 내가 아니게 되고, 상대도 그 자신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일기를 쓰는 동안 나는 여러 명이 된다.

 

- p12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에세이를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 에세이는 통상 일기·편지·감상문·기행문·소평론 등 광범위한 산문 양식을 포괄하며, 모든 문학 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고 정의한다. 에세이와 일기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에세이는 일기라는 산문 양식을 포괄한다.

 

아트인사이트 플랫폼 내에서도 에세이를 연재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특히 나는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일기와 비슷한 형태를 띤 비공식적 에세이들을 볼 때, 종종 미워하지 않는 것을 넘어선 애틋함을 느낀다. 닮은 시간들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동질감을 느낀 것과 더불어, 그 이야기들을 심도 있게 풀어내기 위한 엎치락 뒤치락의 치열한 과정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글을 보면 나는 그와 미묘하게 뒤섞이면서 약간 내가 아니게 되고, 상대도 그 자신으로만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 시간에 나는 나의 기쁨을, 슬픔을, 유약함을, 벅차오르는 순간들을 함께 나눈 타인들을 만난다. 그렇게 교집합 속에 들어앉아 글을 쓰며 나는 여러 명이 된다.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미 출력한 글들 중 몇몇 글들의 처참한 구석이 벌써부터 눈에 띈다. 사실 시작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값비싼 시행착오의 순간들을 거쳐도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어쩌면 이 공간에는 나의 흑역사가 반 이상 탑재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계속해서 무언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에는 내가 여러 명이 되는 시간, 그 시간들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상 함께하는 것 같다. 공유와 소통의 공간에서 쓰게 된 것은 행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누군가의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았음에도 부끄러워 댓글을 남기지 않던 소심한 순간들을 딛고 용기를 내어 감사함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날이다.

 

 

 

일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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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쓰다 보면 어느 날 그 글은 소설이 되기도, 시가 되기도 한다. 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일기가 집이라면 소설이나 시는 방이다. 일기라는 집에 살면 언제든 소설이라는 방으로, 시라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일전에 한 독자가 내게 물었다. 자신이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재능이 없어도 시를 쓸 수 있냐고. 나는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능은 뭔가를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들보다 오래 좋아하는 지구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친구들로부터 배웠다.

 

- p102

 

 

글을 쓰려면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트인사이트라는 이 공간만 해도, 조금은 질투가 날 정도로 잘 쓰시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솔직히 처음엔 기가 좀 죽기도 했다. ‘나도 나름 글쓰기라면 꽤 자신있었으니까, 뭐, 괜찮아.’ 했던 쿨한 척하던 태도는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며 ‘이 정도면 타고 나야 되겠는데?’의 부러움의 과정을 거쳐, 어느새 ‘내가 계속해서 재미를 붙여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지금은 꽤 많이 접은 상태다. 오래 쓰신 분들이 모두 공통으로 하는 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남들보다 오래 좋아하는 지구력이라는 것이 어쩌면 재능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선뜻 그 단어를 쓰기조차 민망하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이라는 단어 대신 내가 꾸준히 좋아했던 일기라는 것으로 그 단어를 대신한다. 일기를 쓰듯 계속해서 써야지. 일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사랑해야지. 보여줄 수 없는 일기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언젠가는 농축된 진심이 담긴 보여줄 수 있는 글로 바깥으로 끄집어내야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그 변주에 기대어, 나만의 리듬을 찾아 연주해 나가야지. 그것이 재능이라면 그래야지. 아직 내가 좋아한 기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이 틀림없는 지금이니까.

 

이런 날엔 밤이 짧게 느껴진다. 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짓기 위해 일기장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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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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