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로 한국 사회 파헤치기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5.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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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지금으로부터 딱 7년 전, 내 18번째 생일날이었다.

뮤지컬 <위키드>를 보고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입문하게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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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위키드> (출처 : 더 뮤지컬)

 

 

뮤지컬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는 가끔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중학교에 가서는 학기가 끝나고 대학로 근처로 소극장 뮤지컬 단체 관람을 하러 간 적도 있었다. 가끔 주변 지인들로 받은 티켓으로 대극장 뮤지컬을 관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처럼 무엇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강렬한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이 엄청난 광경을 보고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 채 설레어하던 나. 당시의 풍경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


인생은 무언가 우연한 것들과의 만남으로 순간순간 그 방향이 틀어진다고는 하지만, 이 날, 뮤지컬과의 조우를 계기로 내 생활은 이전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핸드폰에는 가요 대신 뮤지컬 넘버들이 하나둘씩 저장되기 시작했고, 용돈을 모아 고등학생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의 뮤지컬 티켓을 구매해 보러 다니기도 했다.


이처럼 다소 소소했던, 뮤지컬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대학에 입학하며 큰 전환점을 맞는다. 마침 입학한 학교가 각종 중, 소극장 공연의 메카로 불리는 대학로에 가까이 위치한, 그야말로 천혜의 환경(?)이었던 탓이다. 덕분에 기존에 ‘대극장’, 그리고 ‘라이센스’ 뮤지컬로 대표되던 나의 관극 범위는 그 규모와 국적과 장르를 총망라하는 다양한 범위로 넓어졌고, 이후 수년에 걸쳐 이름 있는 뮤지컬 중에서는 접하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을 관람했다.


뮤지컬은 내가 학교를 다니는 5년 동안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은 것이기도 해서, 실제로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한다고 거짓말을 치고 부모님 몰래 뮤지컬을 보러 간다던가, 저녁 수업이 끝나고 바로 대학로로 내려와 혼자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신 후 공연을 보러가던 일이 다반사였다.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으며,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서 더 이상 직접 수업을 들을 일도 없는 지금, 문득 그 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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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난 2014년 출간된 책으로, 뮤지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이것을 그저 '재밌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던 책이다. 당시로서는 그저 '입문자'에 불과했던 나였기에 책 제목에 뮤지컬이 들어간다는 단순한 이유로 책을 읽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공연을 보는 눈이 생긴 후에 다시 읽었을 때에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해보는 게 낫다고, 책에서 언급된 극장을 전부 가보고, 언급된 뮤지컬도 모두 보고 나니 그래도 저자와 같은 비평가의 발치에 아주 약간은 따라 갈 수 있을 만한 감각이라는 것이 생겼다고나 할까.


평소 지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였던 만큼, '극장의 지리학'을 소제목으로 내세운 9장은 특히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였던 <미스 사이공>이 극장의 지리를 고려하지 않아 흥행에 실패했던 전례를 보면서, 소수 마니아들이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나라 뮤지컬계의 특수성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게 되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마니아'이기 때문에 극장의 위치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방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숙소를 잡고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반대로 서울에서 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상경도 마다않는 열성 팬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잠재적인 관객의 비율로 따지면 결코 다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외의 다른 관객층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는 게 장기적인 흥행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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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에 위치한 샤롯데 씨어터

 

 

이 부분에서 위키드를 처음 본 극장이 잠실에 위치한 샤롯데 씨어터였던 이유도 어쩌면 필자가 뮤지컬에 입문하게 된 계기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와 같이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은 이동 방법과 시간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같은 서울 안에 위치해 있지만, 신도림에 있는 대성 디큐브 아트센터는 우리 집에서부터 지하철로 무려 1시간 반 이상의 부담스러운 이동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즉, 정말 보고 싶은 작품이 올라오지 않는 한, 이 위치는 내가 이동을 결정하게 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된다. 반면, 집에서 비교적 가까이 위치해 있었던 샤롯데 씨어터는 이동 시간과 거리에 부담이 없었고, 그래서 당시 시간이 많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비교적 쉽게 방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듯 극장 가까이에 사는 주민들을 노리는 방식은 실제로도 유효하고, 각 극장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다. 신당역에 위치한 충무아트센터는 주로 중구, 종로구 주민들에게, 역삼역에 위치한 LG아트센터는 주로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권의 주민들에게, 디큐브아트센터에서는 넓게 서울 서남권의 주민들(금천, 양천, 영등포, 구로)부터 심지어는 인천광역시, 부천시, 광명시 등 주변 수도권 주민들에게도 공연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위에서 소개한 극장의 지리학은 공연을 올릴 때 공연 예술 기획자가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소들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연계는 그 여건상 흥행이 보장된 인기 라이센스 공연을 들고 와도 확실한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구조이다. 창작 뮤지컬 콘텐츠는 물론이고 예술 시장 전반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 유명 뮤지컬에 대한 수입 로열티는 비싼 돈을 주고 들여와야 하고, 몇몇 스타 배우들에게 편중된 출연료 부담은 막대하며, 앞서 말했듯이 마니아 관객층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공연계의 현실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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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공연을 불과 며칠 앞두고 갑작스레 취소된 뮤지컬 <록키> 포스터

 

 

일례로 2013년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인 초연을 한 후 지금까지도 여러 번 재연되고 있는 뮤지컬 <레베카>가 당시 초연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는데도 정작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초연, 재연을 거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 자체가 흥행의 척도이고, 이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던 기억이 있다. 또한 몇 년 전 영화 록키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록키>는 공연이 올라오기 불과 며칠 전 제작사의 제작비 문제로 공연을 취소했으며, 2010년 초연한 국내 창작 뮤지컬 <서편제>는 흥행 실패와 그로 인한 적자로 공연 기획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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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 뮤지컬 협회

 

 

특히 작년은 코로나로 인해 문화예술계가 더욱 살얼음판 같은 시기를 지났고, 이 중에서도 뮤지컬을 포함한 공연계는 특히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공연계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기사들이 여러 번 보도되었고, 정부 방책에 대한 공연예술인들의 호소 역시 기사화되었다.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의 한 명으로서 이 기사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는데, 해당 기사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냉담함을 넘어선 공격적인 반응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글들의 한결같은 요지는 ‘모두 다 어려운 시기에 당신들만 힘들다고 억지 부리지 말라’, ‘이렇게 힘든 시기에 무슨 공연이냐’와 같은 비난조의 말들이었다.

 

사실 이번 상황으로 인해 가시화된 댓글로 나타나서 그렇지, 원래도 문화예술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제외하고는, 항상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고상한, 우아한, 교양 있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싼 것’이었을 뿐이다.


뮤지컬 보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같다.


 

"돈이 많나봐?"

"취미가 고상하네?"

 

 

그 기저에는 분명 '뮤지컬은 소수가 향유하는 값비싼 장르의 예술이고,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기는 부담스럽다.'라는 의미가 깔려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물어오면, 이렇게 비싼 티켓의 값을 상쇄하고도 남는 뮤지컬만의 매력에 대해 온갖 장황한 일변을 늘어놓기 바쁜 나 역시도, 정작 주변 지인에게 쉽게 뮤지컬을 같이 보자는 말을 꺼내지는 못한다. 영화와는 달리 비싼 뮤지컬 티켓 값이 다수의 지인들에게 부담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생일이나 기념일 등 뭔가 특별한 날을 ‘기념’할 수 있을 만한 것들로 뮤지컬과 공연을 찾는다. 즉,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예술은 특별한 날에만 향유할 수 있는 일회성 활동에 가깝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집에 돈이 특별히 많은 재벌 2세도, 자수성가한 청년CEO도 아닌, 매달 용돈을 받고 가끔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버는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매주, 그리고 매달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고 책과 글을 찾아 읽는다. 이렇게 몇 년 째 문화예술과 가까이 지내며 느낀 점은, 예술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에게 길은 생각보다 쉽게, 널리 열린다는 것이다. 지금도 뮤지컬, 그리고 공연계는 대중들과 좀 더 가끼워지기 위한 또 다른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요즘에는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해서 매월 수요일 마지막 날 일부 공연을 큰 폭으로 할인해주기도 하고, 프리뷰나 막공 기간을 노리면 평소보다 훨씬 싼 값에 티켓을 구매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일부 소셜 커머스에서는 좌석을 비지정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가끔은 생각 이상의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대중 사이로 들어가려는 뮤지컬의 적극적인 노력이 구체화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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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웨스트앤드의 손드하임 씨어터

 

 

우리는 자주 영국의 웨스트앤드와 미국의 브로드웨이를 부러워한다. 그들이 이루어낸 거대하고 화려한 문화를 찬양하고 부러워하며, 역시 서양권의 선진 문화라며 치켜세운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그들의 공연이 보여주는 완성도와 화려함에만 주목하여, 정작 일반 관객들이 그들의 생산물인 예술을 대우하고 향유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우 역시 많다.

 

문화예술은 하루아침에 짠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만들고, 발전시키고, 써 주어야 하고, 단 며칠이라도 활동을 멈추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근육과 같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니 멈췄다가 나중에 흔히들 이야기하는 ‘그럴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다시 찾아봤자, 문화예술은 예전과 다름없이 그 긴장과 완성도를 팽팽히 유지하면서 관객들을 맞을 수 없다. 마치 일주일만 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이 쉽사리 굳는 것처럼 말이다.

 

*


<위키드>에 나오는 천상의 멜로디와 감동적인 서사에 반해 뮤지컬의 세계에 입문했지만, 이제는 이 책, <뮤지컬 사회학>에서 묘사한 것처럼 그러한 공연 한 편을 만드는 데 마냥 환상적인 동화 같지만은 않은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단순히 ‘특수성’, 또는 ‘독특함’이라는 단어만으로 결코 무마될 수 없는, 실로 뼈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공연은, 그리고 뮤지컬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이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점을 명확히 확인하기도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의 논의를 필두로 하여, 앞으로의 한국 뮤지컬이 나아가야 할, 다방면에서의 건설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아직 여기에 남아있다. 공연을 보는 2~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바로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이는 배우들, 그리고 그 뒤에 숨어있는 많은 이들의 열정과 땀방울이 얼마나 고귀하고 값진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뮤지컬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즐거움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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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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