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상처주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

이보현 에디터를 만나다.
글 입력 2021.05.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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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글을 쓰고 싶어요.”

논리적인 글을 지향하고 약자가 소외되지 않는 문화를 꿈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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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Project 당신’이란 프로젝트에 관한 메시지를 받고, 평소 관심 있었던 에디터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신청서를 보냈다. 대표님은 에디터님과 나를 카톡방에 초대해 주셨다. 천안에 사는 보현님과 서울에 사는 나는 수원역 근처 카페로 약속을 잡았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바깥에 오래 있으면 땀이 흐를 정도의 날씨였다.


보현님의 글을 처음 보게 된 건 국립현대 미술관 전시에 관한 글이었다.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일을 막 시작했을 무렵 첫 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서양화를 전공한 나는 왠지 전공과 관련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이상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첫 글을 위해 국립현대 미술관을 다녀왔다. 하지만 영화나 책에 관한 감상문밖에 써보지 않은 나는 전시에 관한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했다. 사실 영화나 책을 보는 것보다 전시를 덜 열정적으로 보기도 하거니와 전시의 어떤 점을 글로 써야 하고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영화의 경우 서사, 배우, 감독, 미장센 에 관해서 쓸 수 있고, 되감기 해서 반복해서 볼 수 있지만, 미술관은 코로나로 인해 관람시간이 제한되어서 원하는 만큼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국립현대 미술관에 관한 다른 리뷰들을 찾아보았고, 그때 이보현 에디터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리얼돌을 내세워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였다. 정윤석의 ‘리얼돌 작품’에 관한 논쟁이 뜨거웠던 시점이어서 그런지 그것을 다룬 기고글은 댓글창이 이례적으로 뜨거웠다. (아트인사이트에서 이 정도로 댓글창이 시끄러운 경우는 처음 봤다.) 보현님의 글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으면서 정리된 언어로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모든 말들이 일목요연했고 글은 물 흐르듯 잘 읽혔다. 그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나의 머릿속에 뒤죽박죽 들어있던 의문, 느낌들이 활자로 잘 풀어져있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취약한 부분이었다.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해서 풀고, 주장에 대한 근거를 들고 일관된 주장을 하는 것. 나는 에디터의 글 쓰는 비법이 궁금해졌다.

 



예술 경영과 문화기획 동아리



-보현님 전공이 예술경영인 걸로 알고 있는데, 예술경영이 무엇을 하는 건가요?

 

콘서트에서 가수들이 공연을 하고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잖아요. 그것을 하기 위한 작업이에요. 문화행정처럼 예술에 대한 전반적 사업이라고 보시면 돼요. 콘서트, 공연, 전시 기획 등이 있죠.

 

 

-큐레이터랑 비슷한 느낌이 있네요.


큐레이터는 미학과라서 조금 달라요.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하죠.

 

 

-그럼 상업에 더 가까운 면이 있네요. 섭외도 해야 하고. 꼭 필요한 인력이네요. 실기나 이론은 어떻게 배우나요?


실기는 연극과에서 하시는 분들이 있고요. 전공에서는 미술사나 문화행정, 경영학을 많이 배워요. 공연기획, 전시기획 실습도 하고요.

 

 

-문화예술이 관심이 많으셔서 전공을 선택하신 것 같은데, 피아노를 배우셨었다고 글에서 봤어요.


네 피아노를 십 년을 했어요. 지금은 취미로만 쳐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어요. 음악 외에 진로를 뭐할지 고민하다가, 음악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작은 음악회를 하시는데 제가 따라다녔어요. 근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무전기 잡고 일을 하는 게, 그래서 정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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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 인가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책 읽는 건 별로 안 좋아했는데.

 

 

-어떤 글을 쓰셨어요?


저는 산문 위주로 썼던 거 같아요. 에세이 같은 것


 

-저는 되지도 않는 소설을 많이 썼는데, 결말도 없는 찢어버리고 싶은 것들. 만화도 많이 그렸어요.


스무 살 때 교양 수업으로 문학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젊은 작가상 같은 현대문학을 읽는 수업이었어요. 그때부터 다시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어요. 근데 마침 저희 학교에 연계전공이 있는거에요. 스토리텔링 연계전공이라고 있었는데 그거를 하게 된 거죠. 작품을 많이 알아야 하는데 잘 모르니까, 희곡, 시나리오, 현대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다시 글을 쓰게 된 거 같아요.


 

-그런 수업이 많으면 좋은 거 같아요. 저는 대학 들어가서 배웠던 책이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총, 균, 쇠> 이런 것들 이어서.. 독서에 대한 흥미가 없었어요. 그런 수업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 같네요.

 

*

 

-아트인사이트 이외의 글쓰기 활동을 하시는 게 있나요?


아트인사이트가 처음이었고, 이걸 발판 삼아 서울문화재단에서 시민 기자단을 하고 있어요. 명함 하나 드릴까요? 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은 서울문화재단 산하기관들의 문화 행사를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활동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이 기본적으로 배리어 프리,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등에 힘을 쓰는 기관이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글로써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굉장히 바쁘게 사시는군요. 저는 학생 때 이런 거 하나도 안 했는데.. 지금은 또 동아리 회장이시라고 알고 있는데 안 바쁘세요?


제가 바쁜 걸 즐겨요. 안 바쁘면 약간 불안한 사람이라. 그리고 사 학년이라 많이 하는 건 없어요.



-동아리에서는 어떤 일을 하세요?


문화기획동아리예요. 학교 행사 주최도 해요. 안서동에 학교들이 모여있는데 학교들끼리 연합이 안 되고 천안 지역문화도 미비해서 지방 캠에는 예술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모여서 문화기획 같은 거 해보자 하고 하는 거예요. 졸업전시도 했어요. 동아리 안에서 친구들을 모아서 해요. SNS 콘텐츠도 만들어요.


 

-그런 게 정말 필요한 거 같아요. 지방에 문화예술이 발달하면 사람들이 몰릴 테고 그러면 지방들도 활성화되니까요.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걸 살려서 기획하면 좋을거 같아요.


천안문화재단에서 지원사업을 많이 뽑는데, 연락을 많이 주세요. 이번에 안서동에서 친환경 페스티벌도 열어요.

 

 

 

안주하지 않는 글, 사랑으로 나아가는 글



예술경영과 관련하여 전시 얘기를 하면서 에디터님은 인상 깊게 봤던 전시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정강자 작가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이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회고전을 했었어요.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라는 전시였어요. 관람하면서 이분의 일대기를 다 훑은 느낌이었는데, 마지막에 그분이 장기를 도려내신 그림이 있어요. 그분이 위암에 걸리셨었는데, 실제 투병 중에 그리셨다고 하는데 거기서 마음이 울컥하는 거예요. 너무 슬펐어요. 이때부터 전시에서 맥락을 많이 봤던 거 같아요. 전시 기획하면서 배우는 게 전시 전체에는 내러티브가 있다고 배우거든요, 그 경험을 이 전시에서 처음 한 거죠. 그래서 졸업작품을 할 때 내 전시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하고 큰 주제를 가지고 기획을 했어요. 전시 전체가 담고 있는 얘기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 전 주제를 정하나요? 글감은 어디서 얻나요?


저는 글감 노트는 안 써요.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게 작가님들이 하시는 말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서 일상이 투영되는 글을 보면 흥미로운 게 많이 나와요. 황정은 작가님의 <연년세세>를 보면 현대사와 맞닿아있는 부모님 세대의 기억이 나오는데, 그 서사를 보면서 시대의 흐름 때문에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고, 그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상황을 겪은 경험이 있는 저희 부모님에 대해 생각해본다든지 그런 식으로 결부를 시켜요. 그렇게 해서 나온 글이 가장 최근에 쓴 '아주 길고 가느다란 행복에 관한 소원'이고요.


 

-책을 읽고 연상되는 것들을 연결 지으시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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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서처럼 따르는 책이나, 작가가 있으신가요?


글을 쓸 때 좌우명처럼 읊게 되는 문장이 있어요. 백수린 작가의 <시간의 궤적> 글의 해설을 쓰신 선우은실 평론가의 글이에요. ‘우리의 삶은 동경하는 일의 아름다움과 그로부터 도래할 불안을 마주하고 감내할 용기로 이루어진다.’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할 때 이문장에서 용기를 얻는 거 같아요.  국현미 젊은 작가상 글 쓸 때도 계속 되뇌었어요. 그리고 이건 백수린 작가님이 쓴 글인데 "나는 당신이 안온한 혐오의 세계에 안주하고픈 유혹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랑 쪽으로 나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혹시 글을 쓸 때 신경 쓰거나 경계하는 부분이 있나요?


대표님과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쓰는 글들이 보통 약자 혐오에 관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사람들이 얘는 맨날 똑같은 글만 쓴다고 생각할까 봐 그게 고민이었어요. 대표님께서는 ‘그게 아니라 의견이 뚜렷한 거고 가치관이 뚜렷한 거다.’라고 하셨어요. 이 고민을 할 때 아까 말한 문장을 봐서, 글 쓰는 데 모토로 둬요.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반응이 있나요?

 

‘어떻게 이렇게 생각을 하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글을 좋아하는데,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나요? 비법이 있나요?


'왜 그렇게 했어?' '왜 그래?' 하면서 자연스럽게 논리를 찾고 이유를 갈망하는 게 제 원래 성격인지라, 제가 글을 쓸 때도 논리가 비약하면 그 부분을 계속 채우려고 해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어나갈 때 이 부분에서는 좀 논리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으면 그것을 채워나가는 게 몸에 밴 습관인 것 같아요. 그 뿐만이 아니라 소설에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등의 구조가 있잖아요? 제가 글을 쓸 때도 읽히기 쉬운 순서들을 나열해서 이 부분에는 이 문장을 써야 더 잘 읽히겠다! 싶은 구조를 갖추는 게 글을 읽을 때 힘도 덜 빠지고, 어느 정도 텐션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이 잘 읽히는 순서를 스스로 조립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 실용서를 더 좋아하세요?


읽는 건 소설을 더 좋아해요.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요?


상처 주지 않는 글이요. 내면의 성찰로 인해 느낀 변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문장이 누구도 상처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는 글이요. 항상 단어 선택에 유의해요. 제가 연극수업을 들으면서 깨달은 게, 연극이 정말 연출자 중심이거든요, 이 장면을 넣을까 말까부터 시작해서 대사도 다 거치는데, 이 안에서 폭력성이 있으면 엄청 갈리거든요. 연극, 영화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들께서 다들 지향하시는 작품의 윤리관이 비슷하신 걸 느꼈거든요. 폭력적인 내용을 연출하는 것에 있어서 누구한테든 상처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는데, 그것을 배우고 예술작품을 관람하면 폭력적인 내용이 들어가는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제 기준의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것 같아요. 따라서 좋은 글도 표현 방식에 있어서 누구에게든 상처주지 않을 방식으로 전개가 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후반에 에디터님이 지향하는 글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전시회 리뷰글로 인해 정신적으로 시달렸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글을 쓸 때 동기들이랑 오랫동안 토론을 했어요. 거의 몇 시간 동안.. 친구들 마다도 의견이 분분해서 글을 걷어내고 하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글을 쓰면서도 내가 쓴 글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보면 안 되니까, 정말 조심스럽게 썼고 마감을 하면 원래 신경을 안 쓰는데, 창을 못 나가겠는 거예요. 네이버 메인에도 올라가는 바람에 댓글도 계속 달리고…

 

*

 

인터뷰를 진행해나가면서 그녀의 글쓰기 방향과 처음가졌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알아나간 기분이었다. 내가 만난 그녀는 논리적인 글의 힘을 믿는 사람, 글쓰기 뿐만 아니라 예술은 그 안의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 혐오의 세계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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