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티스트 인사이트: 차이를 만드는 힘 [도서]

글 입력 2021.05.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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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마케터들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감도 높은 마케터'라는 표현이다. 필름의 감도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보았어도 '감도 높은 마케터'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감도(sensitivity)'란 사전적으로 '측정기, 수신기 등이 외부의 자극, 작용에 대해 반응하는 예민성의 정도'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필름의 감도로 예를 들어 보자. 감도가 높은 필름은 작은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어두운 환경에서도 사물을 포착하고 촬영할 수 있다. 반면, 감도가 낮은 필름으로 어두운 곳에서 촬영을 한다면 필름이 적은 빛의 양에 반응하지 못해 온통 검정색으로만 나올 것이다.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감도 높은 사람, 감도 높은 마케터는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개인마다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이해한 감도 높은 마케터는 '같은 것을 보더라도 남들은 보지 못하는 사소한 차이를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같은 가게에 가더라도 미세하게 신경 쓴 부분까지 캐치할 수 있는 사람,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짚어낼 수 있는 사람. 감도 높은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세상보다 더 다채롭고 풍요롭다.

 

이러한 '감도'가 중요한 영역이 바로 예술이다. 대부분의 예술은 이 세상에 전혀 없던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곁에 항상 존재했던 것, 너무 당연해서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도서 <아티스트 인사이트: 차이를 만드는 힘>은 일상에서 작은 차이를 포착하고 이로부터 자기만의 예술을 창조해내는 아티스트들의 통찰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이를 '경영'과 융합해 비즈니스 세계에서 뛰어난 통찰력으로 성공을 이끌어낸 사례들을 함께 소개한다.

 

다소 튀는 노란색 표지를 덮으며 든 첫 생각은 '이 책은 예술 교양서와 경영서, 자기 계발서 중 어떤 것으로 분류해야 할 것인가?'였다. 보통의 책들은 예술이면 예술, 경영이면 경영, 자기계발이면 자기계발 등 하나의 주제로 분류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들이 적절히 융합되어 있었다. 관찰, 성찰, 창조와 발견이라는 챕터 아래 다양한 예술가와 비즈니스 사례를 소개하였고 가슴 뜨끔한 질문을 던져 책을 읽는 독자가 통찰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독려한다. 종종 이도 저도 아닌 융합의 산물을 많이 보았는데 이 책은 '아, 이런 게 융합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 부분의 밸런스가 잘 맞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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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관찰, 성찰, 창조, 발견이라는 4가제 주제를 통해 우리 안의 사유를 깨우고 일상을 비틀어 보는 시각을 전한다. 첫 번째 주제인 '관찰'에서는 아티스트들의 집요한 관찰법을 소개한다. '진짜로 보는 것'이 무엇인지, 익숙해져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 속에서 의도를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예술가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주제인 '성찰'은 삶의 전체에서 내면의 진실을 지향하는 아티스트들의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세 번째 주제인 '창조'는 기존의 관행을 과감히 해체하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불문율을 파괴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마지막 주제인 '발견'에서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취약점을 발견하고 끊임없는 혁신으로 자기만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예술의 의도에 대한 관람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유도하고 '왜'라는 존재 이유에 초점을 맞추어 차이를 만드는 인사이트를 제시한다.

 

책의 4가지 챕터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관찰과 성찰 부분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관찰: 집요하게 보는 힘


 

 

그리지 못한 것은 보지 못한 것이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처음 카메라를 사 동아리 친구들과 출사를 나갔던 날이 기억난다. 분명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한정된 대상을 찍었는데 우리의 사진은 다 달랐다. 같은 대상을 찍더라도 저마다 구도와 색감이 달랐으며 어떤 친구는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것들을 찾아내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일상을 여행하고 싶다면 사진을 시작하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 계기였다.

 

이렇듯 집요한 관찰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했던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술은 탄생한다. 책에서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연못의 모습들을 담아낸 클로드 모네, 사진에 맥락을 부여한 듀안 마이클 등의 예술가를 소개한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아티스트는 사진가 '사울 레이터'이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진가인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냈다. 비 오는 날 카페 유리에 비친 사람의 실루엣, 눈 오는 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의 우산 등 아주 일반적인 모습들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으로 본 일상은 일상답지 않다. 새롭고 아름답다. 이는 그가 우리와는 다른 눈을 가졌기에 포착한 모습이 아니다. 그가 오랫동안 애정 어린 눈으로 일상을 들여다봤기에 포착할 수 있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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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Leiter, Snow, New York, 1960

 

 

경영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한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도 일상에서 사업의 실마리를 얻었다. 그는 매번 길에서 나눠주는 배달음식 광고들을 보며 이들을 모아 볼 수 있는 앱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있을 앱 '배달의 민족'이 되었다. 필요 없다는 생각에 들춰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광고지를 보고도 누군가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통째로 바꿀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아마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활동한 김봉진 대표의 관찰력이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는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성찰: 가장 진실된 인간의 모습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그걸 표현하는 것이다.

 

-코코 샤넬-

 

 

사진 동아리를 시작한 후, 잘 찍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빨리 잘 찍고 싶다'라는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선 욕심과 마음은 슬럼프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럴듯한 사진으로 보이기 위해 과하게 보정한 사진은 본래의 색과 아름다움을 퇴색시킨다. 저자가 말한 '가장 진실된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진실된 모습이 가장 아름답지는 않다. 진실된 모습엔 연약함이나 추악함, 우리가 숨기고 싶었던 모습이 포함된다. 그렇기에 진실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용기 있고 유일하다.

 

저자는 이 챕터에서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를 소개한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 유흥가의 모습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은 다른 예술가들의 그림과 달리 남성 응시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여성들의 가난과 실연으로 얼룩진 삶을 보았고 이들의 진실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초췌함, 우울함 등을 여과 없이 그려냈다. 처음 로트레크의 그림을 본 기득권층은 그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솔직한 그의 그림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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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진실을 지향했던 로트레크의 태도는 CEO에게도 꼭 필요한 자질이다.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더 이상 기업의 보여주기식 말과 행동에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이로 인해 위기를 관리하는 기업의 방식도 변화했다. 이전엔 일명 '잡아떼기' 전략이 먹혔지만 지금은 이런 방식이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켜 강력한 불매 운동을 촉발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오늘일기 챌린지'로 큰 논란이 되었던 네이버 블로그가 떠올랐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네이버는 '오늘일기'라는 해시태그로 2주간 매일 일기를 작성할 경우 16000원 상당의 네이버 페이 포인트를 지급하는 블로그 챌린지를 기획했다. 간단한 참여 방식과 쏠쏠한 혜택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챌린지에 참여했다. 그러나 챌린지 시작 3일 만에 네이버는 챌린지를 중단했다. 하나의 일기를 여러 계정에 복붙해서 올리는 등의 어뷰징이 심각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급작스러운 챌린지 종료에 많은 사용자들은 과연 어뷰징을 예상하지 못했냐며 분개했고 과열된 분위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네이버는 이후 추가로 두 차례에 걸친 사과문을 게시했으며 방법을 보완하여 챌린지를 재게 하기로 약속했다. 만약, 네이버가 챌린지 종료 후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사과와 약속 덕분에 현재 다수의 사용자들이 재게될 챌린지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의 진심이 통한 것이다.

 

*

 

집요한 관찰, 진실된 모습에 대한 성찰, 두려움을 넘어선 창조, 본질로부터 비롯된 차이의 발견까지. 저자가 제시한 예술가의 통찰력을 얻는 방법 중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는 것이 없다. 예술과 비즈니스의 사례들을 흥미롭게 보다가도 순간순간 혼나는 기분이 든 이유는 매번 귀찮거나 두렵다는 핑계로 이런 부분들을 미뤄두었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발견 챕터의 표지에 적혀있는 아인슈타인의 말에 혼쭐이 났다.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인 미친 짓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기존의 관행을 좇는 것이 익숙하고 쉽기에 생각 없이 살았던 날들도 떠올랐다. 저자는 사고의 틀을 깨고 차이를 보는 방법으로 4가지 주제를 제시했지만 사실 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만 제대로 하더라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주제이자 나에게 가장 친숙했던 '관찰'부터 시작해보기 위해 창고에서 먼지 쌓인 카메라를 다시 꺼냈다. 아인슈타인에게 혼쭐났던 순간을 되새기며 감도 높은 마케터가 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기 위해 오늘부터 사진을 다시 찍어야겠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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