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이 듦', 살아 있음을 멈추지 않는 것 [드라마/예능]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Grace and Frankie)
글 입력 2021.04.2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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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다. 누군가에게 ‘노년의 삶’을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아마 보편적으로는 ‘(이성애적) 사랑으로 맺어진 동반자와 함께하는 삶’을 떠올릴 것 같다. 거기에 욕심이 좀 더해진다면 슬하의 자녀까지. (여기서 더 나간다면 손주까지.) 아마 사람들은 이러한 가족의 형태를 일반적으로 떠올리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그 안에 녹아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결혼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자식은 더욱이 내 상상 밖 존재다. 이러한 가치관이 언젠가는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내게 허락되길 바라고,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더라도 적당한 선이 지켜졌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노년의 삶’을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혼자 지내거나 마음이 맞는 친구와 지내는 모습을 막연히 떠올린다. 뭐, 정 심심하면 내 위로 있는 형제들 집에 놀러 가면 되지 않을까.

 

부모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늘 그렇듯 ‘가족’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여기에서의 ‘가족’은 물론 이성애적 '정상 가족'이다.) 부모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먼 산을 바라보고, 미간을 좁힌다. 이런 나의 태도가 다년간 지속되다 보니, 부모님도 포기했는지 “그래, 그런데 혼자 살려면 성공해야 한다. 열심히 해라.”는 격려 아닌 격려를 해준다. 여기에 나는 눈치 없는 톤으로 한 마디 더 얹어주곤 하는데, “마음 맞는 친구랑 살면 안 될까. 그때쯤이면 법도 바뀌어서 괜찮을 듯?”이 주 내용이다. 물론 그 ‘마음 맞는 친구’는 그때쯤 ‘가족’이 없겠냐는 반박(을 가장한 타박)이 돌아오곤 한다.

 

부모님에게는 자신만만하게 ‘내 미래’를 외치지만, 앞서 말했듯 먼 미래의 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다. 부모님이 뭘 걱정하는지 나도 잘 알고 있다. 고령화 담론 속 다뤄지는 '노인'들의 전형적인 처지, 제도 밖에서 머무는 이가 현실에서 맞닥뜨릴 많은 일들. 내가 막연히 바라 온 ‘노년의 삶’을 지지해주는 사회 제도나 롤모델은 거의 없다. ‘생활 동반자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내 미래에는 조금 더 넓은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한들 완전히 제도 안에 포섭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노년의 내가 어떤 일상을 살아갈지 전혀 상상이 안 된다는 거다. 친구랑 함께하는 삶은 더더욱 말이다. 동네 어딘가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어르신들을 종종 목격하기는 했지만, 글쎄다. 내가 한 번이라도 그들의 삶을 궁금해한 적이 있었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없다. 나를 항상 아껴주던 우리 할머니도 나에게는 '할머니'였고, 내 주위에 점철된 미디어 이미지도 '노인'은 그저 '노인'이었다. 그중에서도 '노인 여성'의 입지는 더더욱 비좁았다. 바라는 삶과 괴리감이 있는 이미지들이 넘쳐나고, 사회는 그저 젊음을 쫓으라 하니 '노년의 삶'은 쉽게 잊혔다. 20대인 나에게 70대 이후의 삶은 말할 필요 없고, 상상할 필요도 없는 어떤 시기로 여겨졌던 게 분명하다. 언젠가는 다가올 시간이지만, 어쨌든 지금 생각할 필요 없는 '이후의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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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얼마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만났다. 제목에 걸맞게, 그레이스와 프랭키 둘의 이야기다. 조금 독특한 건 둘이 70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정반대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고상함을 폴폴 풍기고 다니는 소싯적 커리어 우먼 그레이스와 괴짜 기질이 넘치는 히피 예술가 프랭키는 서로 여집합 같은 존재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번번이 부딪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둘은 일상을 공유하고, 조금씩 교집합을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드라마는 '새로운 가족'이 된 70대 여성들,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삶을 익살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풀어놓는다.

 

 

 

'정상 가족'을 넘어 '새로운 가족들'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정의된다. 현대의 가족 이데올로기는 이성애 부부와 그 아이들로 이루어진 핵가족 형태를 '정상'이라고 간주하며, 그 외의 가족 형태를 '비정상'으로 배제한다. 하지만 앞선 정의에, '정상'에 부합하는 가족이 현 사회에 얼마나 될까. 그리고 '정상 가족'의 형태는 반드시 이상적이고 바람직할까?

 

<그레이스 앤 프랭키>는 이러한 질문을 정면 돌파하며 시작한다. 그레이스의 남편 로버트, 그리고 프랭키의 남편 솔은 변호사로 함께 로펌을 운영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남편들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 이유는 다소 충격적이다. 자신들과 40년을 함께했던 남편들이 사실은 게이였고, 로버트와 솔은 20년 동안 몰래 연애를 해왔다는 것이다. 로버트와 솔은 결혼하기를 원하고, 홀로 남겨진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두 부부가 공동명의로 구입했던 해변가 별장에서 같이 지내게 된다.

 

너무나 달라 적과 다름이 없었던 두 여성은 함께 여러 사건을 겪으며 우정을 쌓는다. 시간이 지나며 이들은 단순한 친구를 넘어, 삶과 생활을 공유하는 동반자가 된다. '새로운 가족'이 된 그레이스와 프랭키를 보며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성애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관계, '함께-따로(Co-independent)'가 가능한 관계, 막연히 그려왔던 가족의 형태를 목격했다.

 

이들에게 평탄한 날만 있는 건 아니다. 일단 너무나도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 방식 또한 너무나 다르다. 차이가 겹치고 겹쳐, 감정이 쌓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서로 못 할 말을 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딘 서로 덕분에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고, 서로가 최고의 친구이자 파트너임을 인정한다. 내 삶에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고백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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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그레이스 앤 프랭키>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비춘다. 동성부부, 입양 가족, 다문화 가족, 재혼 가족, 한부모 가족, (비혼) 동거 가족, 1인 가족 등, 다양한 공동체의 삶이 펼쳐지는데, 이는 우리가 '정상 가족'이라고 여기는 가족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브리아나와 배리의 관계다. 브리아나는 결혼과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늘 '현재'를 사는 인물이다. 연인인 배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둘은 깊은 관계로 발전해 동거까지 하고 있지만, 브리아나는 '연인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서류 작성을 위해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게 되는데, "두 분은 사귀는 관계, 약혼, 결혼, 등록된 사실혼 관계 중 어느 쪽이죠?"라는 물음에 맞닥뜨린다. 배리는 이에 대해 "아무래도.. 사귀는 관계죠."라고 답하고, 브리아나는 "사귄다고? 그건.. 아니요, 거기에 표시하지 마세요. '디스 이스 어스' 시즌 최종회를 함께 보는 내내 제 손을 잡은 사람한테 그건 좀 가볍네요. 우린 사실상 부부나 마찬가지예요."라고 답한다. 이에 "두 분의 공동 은행 계좌가 있나요? 임대료 분할은요? 부양가족은요?"라는 현실적인 추가 질문을 받고, 브리아나와 배리의 대답("우린 동거하는 미혼 남녀로 상대가 남긴 음식을 먹지 못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죠.")을 들은 인터뷰어는 둘을 '룸메이트'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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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의 미래를 꿈꾸는 배리와 미래를 생각하기 싫어하는 브리아나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하고, 이대로라면 연인과 이별할 수밖에 없기에, 브리아나는 결심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이니까 들어줘. 자기를 잃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내가 기꺼이 할 일을 말해줄게. 자기가 늘 원했던 것처럼 예금을 합치자. 벽장에 선반 하나 더 줄게. 내가 남긴 음식 먹어도 돼. 에티오피아 음식, 라면, 멕시코 음식 주문할 때. 내가 미래를 생각하기 싫어한다는 거 알잖아. 유일하게 더 싫은 건 자기가 없는 미래를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라고 말하는 브리아나에게 배리는 청혼하는 거냐고 되묻고, 브리아나는 답한다. "응. 아니기도 해. 난 우리가 약혼한 다음 계속 그 상태를 유지했으면 해. 영원히. 사랑해, 자기가 원하는 것엔 못 미치겠지만. 내가 누구에게든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 훨씬 넘어섰어. 이 정도면 충분해?" 이 용감한 고백에 배리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평생 그렇게 살면 좋겠어요. 당신의 약혼자로."


그렇다. 사랑의 종착지가 결혼일 이유는 없다. 둘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가족'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이 얼마나 비좁은지 새삼 되새겨 볼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물론 일부 서구 사회에서는 동거나 사실혼이 결혼과 동등한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랑의 종착지는 결혼'이라는 말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중세에는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가 분리되어 있었고, 봉건 친족 사회가 붕괴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대두되면서 '낭만적 사랑'(사랑과 결혼, 섹슈얼리티가 결합한 형태)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근대의 '낭만적 사랑' 또한, 그 토대였던 성별분업이 해체되면서 변하고 있다.


역사 속 가족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해왔고, 또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그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다양한 가족형태가 존재하고, '가족'의 의미와 그 범위를 다르게 사유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기에 미디어가 재현하는 이러한 다양한 '가족들'의 등장이 반갑고, 또 기껍다. <그레이스 앤 프랭키>는 새로운 '가족들'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선사한다.


 

 

그 후에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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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레이스 앤 프랭키>는 70대 여성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즉,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이야기를 그들 스스로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이혼 후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제 삶을 위해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 그레이스는 자신이 딸(브리아나)에게 물려준 뷰티 회사에서 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거절당하고, 프랭키 또한 미술 교사 구인 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두 사람은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허리를 다치는 등, 노년기에 따라오는 신체 기능 저하를 겪는다. 이 외에도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 노인 차별, 세대 갈등 등, 그 시기에 부딪칠 다양한 문제들이 폭넓게 다뤄진다. 심지어 자식들은 그레이스와 프랭키를 염려하며 둘을 양로원으로 보내려 하기까지 한다. 이렇게만 보면 미디어의 흔한 '노인' 재현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레이스 앤 프랭키>에는 이들의 욕망과 열정, 그리고 유쾌함이 공존한다.

 

노년 시기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문제들이 여기저기에서 발생하지만,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일상을 즐기고, 삶의 고민들을 맞닥트린다. 가벼운 만남(데이트)을 가지기도 하고, 사랑을 찾아 나서기도 하며, 노인과 같이 빠르게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신호등 지속 시간에 항의하기도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또한 창조해낸다. 이들은 자신의 새로운 욕망을 찾아 나서고 실현하며, 그 안에서 다양한 갈등을 겪으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나간다. 관계에 있어 떼쓰기도 하고, 자존심 세우기도 하고, 소리지르기도 한다. 로버트와 솔 역시 마찬가지다. 커밍아웃을 한 후 결혼한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자연스럽게 갈등에 직면한다. 동시에 로버트와 솔은 로펌 은퇴 후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나서고, 뮤지컬에 도전해 상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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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노년 여성의 섹슈얼리티다. 데이트 자리에 나가는 그레이스에게 프랭키는 "받아, 필요할지도 몰라."라며 콘돔을 건네고, 그레이스는 "콘돔을 왜 써? 어차피 임신 위험도 없는데."라며 대답한다. 또한 연인과의 성관계에 대한 기대, 걱정 등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원활한 성생활을 위해 유기농 질용 윤활제("폐경 여성 84%가 질이 건조해서 섹스할 때 고통을 느껴")를 만들기도 한다. 화룡점정은 이들이 만든 바이브레이터다. 그레이스는 옛 친구로부터 바이브레이터를 선물 받는데, 이를 사용한 후에 손목 관절염이 도진다. 이를 계기로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나이 든 여성이 편하게 쓸 수 있는 바이브레이터를 만들기로 하고, '바이브런트' '자위도취' 사업을 시작한다.

 

미디어는 나이 든 여성에게서 모든 성적 매력을 빼앗고,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말 따마나, "나이가 들며 여성의 신체는 변해도 욕구는 그대로"다. 가족들 앞에서 사업 계획을 알리며 "모른 척은, 노인네들도 자위하거든!" "우리도 질이 있다네" "혈액 순환도 약하고 성기 조직도 훨씬 섬세하거든. 오르가슴까지 손목이 오래 수고를 해야 하니 관절염은 더 심해지는 거지. 노인네들 손목 좀 아껴줘야 하지 않겠냐고?"라고 말하는 둘의 모습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미디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거쳐, 이들의 '바이브런트' 사업은 대성공한다.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며 비즈니스를 이어나간다. 이 또한 신체 노화와 긴말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무릎 교체 수술을 받은 그레이스가 변기에서 혼자 일어설 수 없게 된다. 프랭키는 특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둘은 '병원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도 변기에서 일어서게 도와주는 맵시 있는 제품'을 고안한다. 바로 '일어나라(Rise-U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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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그레이스 앤 프랭키>가 노년기에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룬다고 말하며, 단지 여기에만 그쳤다면 미디어의 흔한 '노인' 재현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대로 해당 드라마가 그저 노년 여성의 성공적인 비즈니스와 당당한 섹슈얼리티만을 다뤘다면, 이 드라마는 어쩌면 '안티-에이징'적인 재현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해당 드라마는 젊음을 모방하는 식의 노년이라던가, 젊음과 완전히 대비되는 식의 노년 재현을 답습하지 않는다. 노년을 재현하는 기존 미디어 담론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다양하고 풍부한, 그리고 고유한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뿐이다. 해당 시리즈의 제목이 '그레이스'와 '프랭키', 두 사람의 이름인 것 또한 이러한 점을 방증한다.

 

평소에 우리는 노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젊음의 시선을 매개해 그들을 규정하지 않았는가. 앞서 노년의 내가 어떤 일상을 살아갈지 전혀 상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본 지금은 조금 다르다. 노년의 삶에 대한 상상의 진폭이 넓어졌다. 물론,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나와 너무나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처럼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특히 미래의 내가 해변가 별장을 소유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나이 듦을 멈추려고 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이 듦'이 살아 있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의 삶'이라고 여겼던 그 시기. 그 시기에 도달했을 때의 내 모습이 기대된다. 그 후에도 삶은 끝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와 함께,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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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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