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공녀, 미생물의 서식에 적합한 미소(微小) 서식지 [영화]

좋아하는 것 투성이
글 입력 2021.04.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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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Microhabitat)

 

감독 전고운

출연 이솜 안재홍

개봉 2018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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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재미가 뭘까? 한참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좋아하는 취미마저 뭔가 해치워야 하는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 직장동료가 말해준 영화가 있었다. 오랜만에 새벽을 지새우며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동료가 한번 보라는 말과 한마디를 던져줬는데, 말 한 마디에 그렇게 호기심이 들더라.

 

 

"그냥 이솜이 위스키랑 담배가 좋아서 집 버리고 떠도는 이야긴데, 한번 봐봐요."

 


정말 영화 줄거리를 간단히 줄이자면 동료의 저 말과 다를 게 없다. 감독 전고운의 영화로 소공녀 다음으로 넷플릭스에 공개된 아이유 주연의 영화<페르소나(2019)> 중 세 번째 트랙인 '키스가 죄' 로 유명하다. 그 외 족구왕(2013), 범죄의 여왕(2016) 등이 있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 새해가 되자 집세도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올랐지만 일당은 여전히 그대로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포기한 건 단 하나, 바로 ‘집’. 집만 없을 뿐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현대판 소공녀 ‘미소’의 도시 하루살이가 시작된다!

 

- 영화 <소공녀>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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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작품에도 출연한 이솜과 안재홍은 소공녀에서 미소와 한솔의 역을 맡으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호흡을 맞춘다. 영화 감상을 마치고 나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배우와 캐릭터가 호흡이 좋았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주제여서 그런지, 아니면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솜과 안재홍이 연기한 미소와 한솔은 아무것도 없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또 키치함과 날것의 감성 그대로를 연기하는 이솜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솜과 함께하는 안재홍의 어수룩하고 솔직한 연기 조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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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A little Princess'로 번역되는 소공녀가 특이하게 'Microhabitat'로 표현된다. 뜻을 찾아보면, 미생물의 서식에 적합한 미소(微小) 서식지(출처 : google)라고 한다. 정말 귀엽지 않나?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의 서식지라니, 그래서 영화 <소공녀>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라고 담담히 말할 줄 아는 미소의 하루가 가득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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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이 아직 2,500원인 시절 미소는 하루 청소를 하여 45,000의 일당을 받는다. 밥과 위스키 한잔, 그리고 담배를 사면 25,000원이 남는다. 하지만 2015년 1월 1일, 새해가 밝자 담뱃값은 4,000원으로 오르고 5년 동안 집세를 올리지 않았던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 미소에게 남은 방을 또 월세로 준 중간 주인(?)도 월세를 올린다.

 

덕분에 마이너스로 끝나는 하루 일당에 미소는 당황한다. 보일러도 틀지 않는 집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 또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버리는 미소는 결국 집과 약을 버리기로 한다. 그렇게 형광 주황으로 빛나는 여행용 가방을 들고 미소는 길거리로 나온다. 그리고 대학교 시절 같이 밴드 동아리 친구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한 손에는 친구들의 연락처, 그리고 다른 달걀 한 판을 사 들고 그리운 친구들을 찾아간다.

 

미소의 친구들은 우리들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저마다 어디서 본듯한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변하지 않고 여전히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건 미소뿐이다. 아마도 미소를 맞이한 대학교 친구들은 자신의 지난날을 미소를 통해 회상하고 너무나도 달라진 현재의 모습과 비교되지 않았을까 싶다. 유일하게 미소를 제대로 맞이한 친구는 키보드 정현정 말고 없던 것 같다.

 

미소가 기억하던 친구들은 전부 사라졌고, 친구들은 미소를 보며 얘기한다. 미소 걔는 그대로더라. 그러니까 걔는 그대로더라. 이 말을 하는 친구들의 말투, 표정, 행동들이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나는 친구들이 모여 미소에 대해 말할 때, 마치 그렇게 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해? 라는 뉘앙스로 느껴졌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예전 다 같이 꿈꾸던 친구들은 우리가 그렇게 말하던 기성세대와 다를 게 없어졌다.

 

그렇다고 다 성공해서 잘 사는 것도 아니다. 또 사회적으로 말고 개인이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삶이라면 본인이 행복한 미소에게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큰 회사에 취직해 휴게실에서 포도당까지 맞아가며 버티는 베이스 문영, 작곡에도 재능이 있고 키보드도 잘 쳤던 현정,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밥벌이가 안 되는 남편과 시집살이 중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버림받고 대출받은 신혼집과 덩그러니 남겨진 드럼 대용, 또 노총각으로 늙어간 보컬 록이는 가족과 작당하여 미소에게 자신과 결혼을 강요할 생각으로 감금을 시도했으며, 또 부잣집 저택에서 과거를 세탁하고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복종하는 기타 정미까지, 현정 빼고는 전부 미소에게 무례했다.

 

세상에 정말 내 편 하나 제대로 없다고 하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지난날의 추억이 무색해질 만큼, 그들은 미소의 선택이 틀렸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걱정을 표하는 모습이 진심도 아닌 그저 자신이 보다 우위에서 내려다본다는 표면적인 위선자의 관점이었다. 미소가 지난날의 젊음이었다는 것을 잊은 건지, 본인들의 젊음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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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개인의 취향과 자신을 우선시한다. 봉지가 찢어져 청소해준 집에서 얻어온 쌀이 질질 새는지도 모르고 걸어온 미소는 속상하더라도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삶을 실천하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수반되는 노동과 관심 없는 것에 대해 군말 없다. 그러면서도 저금통에 차곡차곡 돈도 모은다. 무언가 고쳐야 하고 상황이 안 좋아지면, 좋아지기 위해 행동하고 바로 실천한다. 오늘 하루도 성실히 살아온 자신에게 좋아하는 위스키 한잔과 담배라는 보상을 준다.

 

미소의 인생 목표는 빚 없이 사는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소가 가지고 있는 환경은 단편적으로 나열해서 보기엔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의 미소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인정을 베풀 줄 아는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환경에 대해 자격지심도 없다. 미소가 가진 환경에서 다음을 위해 행동하고 따뜻한 마음과 한결같은 미소로 사람들을 챙긴다. 빈곤 속의 풍요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자신을 지킨다고도 표현할 수도 있겠다.

 

예컨대, '소확행' 혹은 '욜로'의 정석을 보여준 미소는 어찌 보면 현실성이 없다. 당장이라도 당신에게 안락한 집이 없이 하루하루를 벌어가며 살아갈 수 있나? 그것도 일시적인 기간이 아니라 그렇게 평생을? 아니면 그런 삶을 모토로?

 

나는 현실에 자주 굴복당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나는 절대 불가다. 타협하여 절충안을 가지고는 살아가겠지만, 올인은 절대 선택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에 그렇게 극단적인 속도로 투자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마지노선을 올려보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로, 나는 미소가 굉장히 용기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가 선택한 길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식주와 점점 멀어져가는 길이다. 꼭 멀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길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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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둘 다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지 않았을 테니,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미소의 친구들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겐 나는 '미소'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비교'가 생기기도 하고 안정된 선택이라는 길이 만들어진다.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흘러가는 대로 안전한 선택을 한다.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미소만큼 충실히 자신에게 스스로 솔직한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 버린 미소는 오늘도 위스키 한잔을 마신다. 좋아하는 것 투성이로 하루를 가득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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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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