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쇼핑몰에서 그래피티를 본다면? - STREET NOISE 스트릿 노이즈

P/O/S/T의 첫 번째 전시
글 입력 2021.03.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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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walker

 

 

그래피티(graffiti)는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에 어원을 두고 있다.

 

현대의 그래피티는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어,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서 낙서화가 유행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래피티라고 하면 주로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문자를 그리는 낙서가 연상되지만 현대의 그래피티는 추상 회화 같은 작품부터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까지, 그 주제가 다양하다.

 

그래피티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에 그려져 공공미술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공공기물에 그린다는 점 때문에 위법행위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래피티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거리에 그렸던 작품들이 미술관으로 들어오며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거리의 예술’ 그래피티를 쇼핑몰에서 본다면 어떨까? 지난달 26일 오픈한 롯데월드몰 P/O/S/T에서는 유명 그래피티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 STREET NOISE >가 열리고 있다. P/O/S/T는 코로나19 이후 여러 문화예술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조성된 문화 공간이다.

 

MZ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통칭하는 말)를 겨냥한 이 공간은 단순히 전시 공간이나 소비 공간, 둘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거리의 풍경’처럼 여러 브랜드, 아티스트, 기업과 협업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첫 번째 행사인 < STREET NOISE >는 P/O/S/T라는 공간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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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VC 파우치와 스티커를 구매하면 전시 입장이 가능하다. 전시 티켓까지 하나의 굿즈로 제작한 셈이다.

 

 

대부분의 전시에서 전시가 끝나고 나오는 출구에 아트숍을 꾸며 놓는 것과 달리, P/O/S/T에서는 전시를 보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아트숍을 지나가게 된다. 전시는 유료 관람이지만 아트숍은 티켓 없이도 편하게 볼 수 있다.

 

그래피티 작가들의 실제 작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전시 굿즈와 실용적인 캐릭터 상품, 미술품을 한 자리에서 판매하고 있는 풍경이 신선했다. 단순히 상품만 진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공중전화 부스 모형,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공간 등의 볼거리도 마련해 놓아 지나가는 이의 이목을 끌고, 포토존의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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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CLASSIC], [POSSIBILITIES], [POP ART], [ZEVS], [SOCIETY], [SPECIAL SECTION]의 6가지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섹션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볼 수 있다.

 

전시실 입구에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캐릭터인 ‘검은 고양이 필릭스(FELIX)’ 조형물과, 태블릿을 이용해 직접 그린 그림이 레이저로 벽에 투사되는 그래피티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직원에게 문의해보니, 대부분의 관람객이 방문 날짜나 이니셜 등을 그려서 전시 인증샷을 찍는 방식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한다. 벽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그래피티를 레이저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본격적인 전시에서는 그래피티의 선구자로 불리는 크래쉬, 닉 워커부터 라틀라스, 제우스, 국내에서 개인전이 열릴 정도로 유명한 셰퍼드 페어리 등 유명 작가들의 작업을 볼 수 있다. 전시실의 벽 한 면 전체를 캔버스 삼아서 그려진 벽화 작업과 작가의 서명이 들어간 의자, 그래피티 작업에 쓰이는 소품 등이 함께 놓여 있어 단조롭지 않다. 캔버스에 그려진 작업들은 철망에 걸어 전시하는 방식을 통해 전시실에 생동감을 준 점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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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작품 중 눈에 들어온 작품은 제우스(Zevs)와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의 작품이었다. 제우스의 캔버스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브랜드 로고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로고를 그대로 옮겨오지 않고, 물감을 흘러내리게 하는 기법을 사용해 로고가 녹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는 실제로 빗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은 작업인데, 대형 브랜드 로고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특히 데이비드 호크니의 < A Bigger Splash >를 빌려와 수영장에 석유가 흘러내리는 장면을 그린 작품에서는 유명작을 패러디한 작가의 재치와, 석유기업의 석유 유출 사건을 지적하고자 한 문제의식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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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드 페어리는 그래피티를 통해 꾸준히 정치적 메시지를 전해온 작가다. 셰퍼드 페어리라는 이름은 몰라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얼굴과 ‘HOPE’, 또는 'VOTE'라는 단어가 있는 포스터는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포스터는 2008년 오바마의 대선 출마 당시 셰퍼드 페어리가 지지의 뜻을 밝히며 제작했던 실크스크린 포스터인데, 대중들에게 오바마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각인시켜 이후에는 공식 포스터로 채택되기까지 했다. 작가는 이렇게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그래피티의 특징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데, 이는 주로 간결한 이미지와 볼드체의 텍스트를 통해 표현된다.

 

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거리에서 보는 것이 핵심인 그래피티를 어떤 식으로 전시 공간에 들여올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가벽을 최소화한 넓은 공간을 통해 최대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 쿵쿵 울리는 공간에서 그림을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물론 그래피티의 현장감이 덜하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쇼핑몰이라는 공간과 젊은 세대를 겨냥한 P/O/S/T에 걸맞는 생동감 있는 전시였다.

 

이번 전시에서도 국외 작가들의 작업이 주를 이룬 것이 보여주듯, 국내에서 그래피티는 아직까지 대중에게 생소한 장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주도로 그래피티 작가들과 협업하여 지하보도나 지하철 교각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들이 시행되기도 했지만, 허가받지 않은 그래피티는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 한복판에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거침없이 남기는 국외 유명 작가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와는 동떨어져 있는, 낯선 풍경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비록 사회비판이라는 처음의 의도는 퇴색될지라도, 이렇게 전시를 통해서라도 국내에서 그래피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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