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빛나다 사라진다. 살아있기 때문에 [도서/문학]

장편소설 '파과'를 읽고 나서
글 입력 2021.03.0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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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책도 있다. ‘파과’, 흠집이 난 과실, 여자 나이 16세. 파과라는 제목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상상하며 자연스레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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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65세 노인, 직업은 청부살인업자



책의 주인공은 65세의 킬러 ‘조각(爪角)’이다. 65세의 나이와 자그만 체격의 여성임에도 그는 결코 약하지 않다. 조각은 흔히 떠오르는 눈에 띄는 미모의 젊은 여성킬러와는 달랐다. 아이보리 펠트 모자로 잿빛 머리칼을 가리고, 잔잔한 플라워 프린트 셔츠에 수수한 카키색 코트를 겹쳐 입고 어떤 누구의 인상에도 남지 않는 행동거지로 움직였다. 늙은 몸이 무색할 정도의 타고난 감각과 노련한 경험치 만이 그의 전부였다. 조각은 능숙하게 움직이며 ‘방역(책에서 청부살인을 이렇게 칭함)’을 해 나간다.

 

책은 그런 65세 여성 조각에게 찾아온 묘한 감정과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알 수 없는 젊은 동료 청부업자가 얽히며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흔치 않은 주인공의 흔치 않은 이야기.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충분했다.

 

 


제 2장. 상상을 현실로



살다 보면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지만 상상만으로 해보곤 하는 일들이 생긴다. 하지만 조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에 앉은 임산부를 조롱하며 밀치는 노인과 누구하나 끼어들지 못하는 주변사람들. 가끔 비슷한 상황을 목도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서기란 쉽지 않다. 등 뒤로 주먹을 쥐어 보이며 상상 속으로 노인에게 일침을 가해보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조각은 그 남자를 죽였다. 복작이는 지하철역에서 남자를 지나치며 스치듯 독이 묻은 칼로 그어 즉사시킨다. 물론 조각이 정의를 구현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의뢰를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각의 간단하고 은밀한 ‘방역’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물론 우리가 현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는 일은 많이 없지만, ‘상사 엿 먹이는 법’을 검색해보며 화를 삭인다던 회사원의 우스갯소리 정도의 은밀한 일탈 아닐까.

 

 

 

제 3장. 타고난 킬러



무엇보다 멋있는 점은 그의 재능이 타고났다는 점이었다. 살인에 재능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웃기지만 그는 타고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조각이 외국인에게 강간을 당하려던 장면이 나올 때, 눈앞이 아찔했다. ‘성폭행을 당한 후 큰 상처를 얻어 킬러의 길로 들어선 걸까?’ 어린 시절의 불행을 상징하는 요소로써의 성폭행 소재를 좋아하지 않기에 한숨을 쉬며 책장을 빨리 넘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어린 조각이 남성의 입에 작살을 꽂아 넣는 것을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헛되게 흘린 피 없이 깔끔히 남성을 처리한 조각에게 류는 ‘이거 소질 있네.’ 한다.

 

타고난 재능의 숙련된 킬러노인. 이제껏 이런 여성 캐릭터가 있었던가?


 

 

제 4장. 결코 착하지만은 않은



조각의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가 마냥 선인(善人)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조각이 ‘방역’하는 인물들은 대개 ‘악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각이 피해자를 대변해서 복수의 마음을 갖고 그들을 죽이거나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흔히 여성노인에게 부여되는 ‘모성애’나 ‘오지랖’도 없다. 심지어는 일말의 동정심마저 없다.

 

아버지의 원수라든지, 정의라든지 어떠한 이유로든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 없이 그저 책임감만으로 사람을 방역해나간다. 그런 점이 좋았다. 살인은 나쁜 것이 당연하다. 정당성을 부여하면 그것이 살인이 아니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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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파과



책에는 과일이나 과일을 이용한 비유가 등장한다.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

 

뭉크러져 가는 복숭아는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 때는 무엇보다 달콤한 과실이었지만 좋은 시절을 즐기지 못하고 뭉크러져 제 기능을 잃은 덩어리. 감정이 없는 듯 메말랐던 조각에게도 불꽃같던 감정이 존재했다. 그는 노화를 겪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달콤한 과실처럼 빛나던 때가 있다. 우리가 달콤히 빛나다 깨지고, 상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파과(破果)임을 받아들일 때, 파과(破瓜)의 순간은 비로소 다가온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 파과, 구병모

 

 

[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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