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또 다른 처음'을 만드는 방법. [문학]

'거리'와 '사이', 은둔.
글 입력 2021.02.27 00: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 「비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합니다.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한다는...

 

저 역시 그렇게 생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일 텐데요, 그래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흘리지 않아도 되는 눈물을 흘리고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는 일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자리로 스스로를 이동시킨다고요. ‘일어나도 좋은 일’만 겪어내는 게 과연 삶을 온전히 안착시키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안) 한 일들이 가져다주는 것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이건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달관이나 순응이라기보다 의외성에 반응하는 방법론에 더 가깝습니다.

 

*

  

혹자는 이미 싫증을 느낄만한 주제인 코로나19에 대하여, 정확히 말해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의외성에 대해 나윤석 기자는 얘기하며 두 권의 책을 기점으로 삼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이어진” 대학 강의의 바뀐 풍경을 일기 형식으로 담은 박길성 교수의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과 사회학자이자 교수인 김홍중의 『은둔기계』입니다.

 

먼저 박길성 교수는 일상을 잃어버렸다고만 생각하던 시기를 지나 비일상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에서 ‘전염의 폭로’를 목격합니다.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jpg

 

 

코로나19는 인간이 모더니티의 문명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살아온 그동안의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필요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 필요의 이름으로 필요의 문명이 만들어 놓은 결과는 과잉 풍요, 과잉 양극화였다. 원래 모습으로의 복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_박길성,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 중 

 

 

지향점은 더 이상 ‘원래 모습으로의 복원’이 아닌 게 됐습니다. 기존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비슷한 문제 상황이나 더 심각한 일들이 닥칠 게 분명할 테니까요. 사람 간의 ‘거리’‘사이’가 비례하는 사고에서 한 발짝 물러나 ‘또 다른 처음’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얘기합니다.

 

 

거리를 두어야겠지만 이럴수록 사람들 사이는 더 가까워져야 한다. 배려, 함께, 연대, 공동체, 공감, 공유, 협력, 책임, 신뢰, 시민적 동의가 요즘처럼 중요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이 하나하나가 ‘또 다른 처음’을 만드는 근간이다.

 

_박길성,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 중

 


그동안 우리는 문제가 될 요소를 지닌 사안에 대해 제대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표면에 드러났을 때 비로소 이런 논의가 진작 이뤄졌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 아쉬워했습니다. 의외성은 이런 순간 발현됩니다.

 

그간 인지하지 못한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지점에 눈을 뜨는 것. 묵과하고 있던 얘기들의 볼륨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늦지 않고, 고개 돌리지도 않으리라는 다짐이 있습니다.

 

후회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요.

 

 

은둔기계.jpg


 

김홍중 교수는 『은둔기계』에서 ‘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오히려 생존의 위협으로 돌아온 현재에 “조금은 느리고 천천히, 덜 일하고 덜 먹고 덜 쓰는 삶”을 고민합니다.

 

 

“삶의 바탕에 존재하는 것은 전진이나 확장이나 강화가 아니라, 포기다. 코나투스 혹은 힘에의 의지가 아니라 자기-비움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어떤 경우 ‘연결하고’ 어떤 경우 ‘연결을 끊는’ 동물, 은둔할 줄 아는 동물이다.”

 

“인간의 인간성에 자기-제한을 가할 것, 인간의 인간성을 스스로 비워낼 것, 인간의 인간성이 누려온 특권을 내려놓을 것. 해방이 아니라 포기, 전진이 아니라 이탈, 사교가 아니라 은둔.”

 

“아무개에게 악이란 아렌트가 말한 ‘사유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과도한 사유를 통한 과도한 변형, 과도한 힘, 과도한 행위능력, 과도한 움직임, 어떤 제어장치도 없이 폭주하는 욕망의 과도함 그 자체다.”

 

_김홍중, 『은둔기계』 중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가던 길에서 잠시 벗어나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다시 그려보는” 행위로 은둔을 제시하는 김홍중 교수는 삶의 의외성 앞에서 얼마간의 단절과 감속을 논합니다. 계속 가다가 놓치는 게 생기기 전에 멈춰 서서 톺아보는 것입니다.

 

폭주하는 관계 앞에서는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없죠. 그 상황에 매몰되고 다른 건 잘 보이지 않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기에 그가 말하는 은둔이란 ‘사이’의 재발견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또 다른 처음’을 만드는 일종의 보리밟기입니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지만 다른 어떤 것을 품에 안고 다시 출발점에 서게 될 테니까 말이다.”

 

_ 『기획회의 529호, 나윤석: 코로나19 1주년, 책과 함께 - 의외의 사건이 안겨준 의외의 성과』중

 



조원용 컬처리스트.jpg



[조원용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2558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04.11, 22시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