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보통의 히어로 -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도서]

글 입력 2021.02.2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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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영웅은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고전 신화 속 영웅은 탄생부터 범상치 않다. 갑자기 하늘을 가르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혹은 인간임에도 알에서 태어나기까지 한다. 비범한 탄생 이후의 행보는 더 기가 막힌다. 나라를 구하고 태평성대를 이룬다. 영웅에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위대함을 우러러본다.

 

영웅적 서사는 현대에도 주목받는다. 우리는 <슈퍼맨>을 보고 하늘을 나는 것을 상상하고 <스파이더맨>처럼 쫄쫄이를 입고 건물을 타고 날아다니기를 꿈꾼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어떤가? 만약 정말 알에서 태어났다면 영웅의 탄생으로 보기보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허언증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고 방영하지 않을까? 거미에 물렸다면 스파이더맨이 될 것이 아니라 병원을 가야 한다.

 

사실, 영웅은 우리 사회에 숨어있다. 그저 상상 속 영웅들처럼 눈에 띄지 않아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영웅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걸요.’라는 말로 다시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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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라면 이럴 때 슈퍼히어로가 짜잔 나타나 위기와 도탄에 빠진 지구를 구하고, 나도 구해 주겠죠. 어쩌면 나는 그의 연인이나 사이드킥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과연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에게만 우리를, 세상을 구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

 

- 안전가옥 스토리 PD 이지향

 

 

이런 물음에서 안전가옥의 여섯 번째 앤솔로지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가 탄생했다. “과연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만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물음의 답을 알고 있다.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역시 그 답을 다섯 작품으로 보여준다.

 

본문에서는 다섯 작품 중에서도 「캡틴 그랜마, 오미자」와 「사랑의 질량 병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캡틴 아메리카 말고, 「캡틴 그랜마, 오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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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초능력 있어요?” …

“암. 있지. 그 슈퍼맨인가 뭔가 하는 놈보다 내가 더 셀지도 몰라.” …

“요즘은 슈퍼맨 인기 없는데.”

“그럼 누가 인기가 좋냐?”

캡틴 아메리카나 아이언맨.”

그럼 캡틴 오미자, 나는 그거다, 그거.”

 

 

오미자는 여든이 넘어서야 한글을 배웠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무시를 받았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시골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할머니였다. 그러나 글을 배우면서 그녀는 알 수 없는 능력이 생긴다. 하루에 단 한 문장만, 그녀가 써진 것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데스노트’처럼 이름만 쓴다고 사람이 죽거나, 한순간에 불사신이 되는 정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미자는 그 능력으로 남들보다 조금 힘이 세지고, 조금 풍족해지고, 조금 더 잘 살아가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TV 속 광고를 보고, 오미자는 소말리아에 갈 것을 다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그는 ‘한심한’과 ‘야’를 만나 소말리아에 갈 준비를 한다.

 

할머니 히어로라니. 요즘 웹툰에서도 주인공이 중년 여성 혹은 남성이며 ‘왕년’에 용사였다거나 하는 서사가 가끔 보인다. (예: 네이버 웹툰 <왕년엔 용사님>) 혹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다른 신분으로 세상을 구하고 있기도 한다. (예: 버프툰 <판타스틱 시니어>) 대부분 주인공 연령대가 1020이었던 것에 비해 상당히 반가운 변화이다.

 

마찬가지로 「캡틴 그랜마, 오미자」에서도 여든이 넘어서야 특수한 능력을 얻었다. 심지어 히어로에 맞게 오미자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친다. 그는 그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고, 나아가 세계 정복을 꿈꾼다. ‘주민탁 폐암 다 낫는다, 이민숙 이 썩은 거 다 낫는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세계 정복까지 퍼져나가는 오미자의 목표를 우리는 부지런히 응원하게 된다.

 

 

 

하찮지만 위대한 능력에 관해, 「사랑의 질량 병기」


 

 

근처에 화장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 테니까.”

 

 

장거리 버스 안에서 급격히 배 속 신호가 온다면? 혹은 시험 응시 중에 배가 아프다면? 급격한 화장실 신호는 육체적 고통을 넘어 정신까지 지배한다. 중요한 자리일수록 그 고통은 배가 될 것이다.

 

「사랑의 질량 병기」의 주인공은 그 급박한 상황을 기적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는 초능력자이다. 바로 자신에게 ‘급똥’ 신호가 왔을 때 그 신호를 주변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 그는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최대한 그 신호를 참았다가, ‘터지기 직전’의 상태가 되면 타인에게 신호를 옮긴다. 그 능력은 마치 ‘설마 내가 갑자기 급똥 신호가 온 이유가 저런 능력자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있음에도 주인공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성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짝사랑으로 끙끙 앓던 주인공은 어느 날 그 상대에게 뜻밖의 제의를 얻는다. 주인공의 능력으로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사실, 상대 역시 능력자였다. 그 능력은 바로,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인간이 근처에 다가오면, 무조건 그 대상은 ‘급똥’ 신호가 와 황급히 자리를 뜨게 된다. 상대는 분명 자신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는 주인공이 화장실을 찾지 않는 것에서 의문을 느끼고 그 역시 능력자인 것을 깨닫는다. 상대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성과 이어질 수 있도록 급똥 신호를 옮겨달라고 부탁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그 능력을 쓸 것인지 고민한다.

 

주인공의 능력은 설명하기도 민망하지만, 우리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긴장하면 배가 슬슬 아파오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의 능력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능력 때문에 그는 사랑하는 상대의 다른 사랑을 응원해야만 한다. 이것은 과연 비극인가 희극인가. 우리는 마지막까지 급똥 신호와 싸우는 주인공을 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우리는 모두 히어로


 

얼마 전, 흥미로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너 요즘 뭐 하고 다녀?”

 “외계인 퇴치.”

“거짓말 하지마.”

“네가 모른다는 게 내가 외계인을 퇴치한다는 증거야.”

 

 

정확한 문장은 아니고, 이런 분위기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위의 두 작품을 제외하고도 다른 세 작품에서는 다양한 히어로를 다룬다. 「피클(Fickle)」에서는 히어로보다 ‘빌런’에 가까운 인물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이어가고, 「서프 비트」에서는 히어로라고 해도 능력 밖에서는 한계가 있어 주인공은 좌절을 겪기도 했다. 「메타몽」,에서는 “아마 대부분은 누군가 발견해 주기 전까지 자신의 특별함을 모른 채 살고 있을 거야.”라고 말하며 우리가 모두 히어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거나, 믿지 않거나, 혹은 ‘마이너리티’적인 존재지만 노력하는 존재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마지막까지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들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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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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