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친애하는 나의 물건들에게 [공간]

일상의 반짝이는 풍경에 함께하는 물건을 소개한다.
글 입력 2021.01.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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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부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시각적 영감을 얻는다.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를 기웃거리거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전시 또는 공간에 직접 가보는 것, 항상 믿고 가는 장소 몇 군데를 마음 한편에 담아 두는 것은 나를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외부 경험에 의존했던 나의 즐거움은 쉽사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재난 상황과 함께 예고 없이 사라졌다.


처음엔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거나 좋아하는 공간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별수 있을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나의 생활 반경에서 마음을 반짝이게 할 조각을 찾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생기면 직접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집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혼자 사는 살림에 이것저것 물건이 많은데, 오늘은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값을 따지자면 그리 귀한 물건은 아니지만, 이 물건들은 나의 영감이자 즐거움으로 나의 공간에 함께하며 일상을 다채롭게 하기 때문이다.

 

*


내가 문구류를 좋아하는 건가? 라는 질문이 떠오르면 선뜻 뭐라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마음에 쏙 드는 문구를 보면 눈이 뒤집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문구를 수집하는데 열정적인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구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내가 구매할 수 있는 물건 중 부피를 얼마 차지하지 않으면서 자주 사용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을 사다 보니 조금씩 늘어난 듯하다.


다만, 눈이 점점 높아지고 문구류도 가치와 상태에 따라 가격이 훨씬 비싸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어떤 것이든 가치에 따라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세상의 이치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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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 도자기 함에는 이렇게 모인 문구들이 꽂혀있다. 가위를 쓸 때마다, 테이프를 꺼내 들 때마다 그 색과 형태와 질감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대량으로 생산되어 사용성과 효용성만으로 소비되는 ‘사무용품’이 아닌, 한 사람의 손을 거치며 시간과 가치를 더해가는 물건으로 나의 공간에 존재한다는 게, 막상 문장으로 써보니 멋쩍지만 뿌듯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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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시선이 가닿는 물건이 있다. 슬며시 미소를 품고 있는 도자기 화병은 창틀에 놔두고 매일 아침 블라인드를 올리며 눈을 맞춘다. 뭉툭한 덩어리에 곡선이 포개어 있는 클립은 이리저리, 여러 색과 질감의 종이를 끼워 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를 바꿔가며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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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화분을 볼 때마다 이것을 내게 선물해준 이의 마음에 새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물건이 지니는 가치는 그 자체의 효용성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품은 서사와 마음이 물건의 가치에 애정을 더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

 

시선에 자주 닿는 물건이 있는 한편, 손을 자주 거치는 물건이 있다.


찻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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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아직 다구를 다 갖추고 다도를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어서 찻잔을 모으기 시작했다. 도예 공방이나 상점을 찾아다니며 직접 만져보고 내게 알맞은 잔을 찾는 것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소비의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것 하나 없는 수많은 잔은 내 손바닥만 한 도예 작품, 나는 감정사가 된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잔 사이를 누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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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담기 전에는 서늘한 흙의 기운을 풍기다가도 잔을 데울 때부터 뜨거운 물의 열기를 오래도록 머금는 찻잔을 생각하면 ‘거참 신기하다’는 감탄이 나오는데, 특히 가장 아끼는 찻잔 세트는 흙을 오래도록 숙성 시켜 마치 돌 같은 질감과 서늘함을 드러내지만, 차를 담는 순간 한없이 따뜻해지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어 손이 자주 가는 편이다.


지난봄까지는 따뜻한 차만 마시다가 여름에 냉차를 마시기 시작하며 냉차 전용 유리잔을 구매했다. 원래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지만, 플리마켓에서 하자 없는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했고 때마침 마음에 쏙 드는 찻잔 받침을 구매해 여름 내내 냉차를 마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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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잔은 직접 만져보면 외부 표면은 매끈하고 내부는 각져있어 손에 잡히는 느낌과 빛이 잔을 투과하며 만들어내는 형태의 이질감이 꽤 매력적인 데다 비단에 꽃으로 천연 염색한 찻잔 받침을 함께 놓으면 작은 캔버스 안에 황홀경을 수놓는 그림이 된다!

 

소재의 특성을 간과한 탓에 받침이 많이 쪼그라들어 한동안 머리를 쥐어뜯은 슬픈 기억은 여전히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

 

마지막으로 최근에 나의 공간에 들인 물건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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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스툴은 급하게 앉을 자리가 필요해 ‘당근마켓’에서 봐두었던 것을 구매했고, 집에 이 스툴이 들어갈 상상만 했는데도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아 너무 신난 나머지 40분이 걸리는 동네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기억이 있다.


이 스툴이 더 특별한 이유는,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동네에서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기 때문이다. 폭포가 얼어붙은 암벽은 햇볕을 받아 난생처음 보는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자아냈고, 여유롭게 산책하는 주민들 사이로 나는 샛노란 의자를 한 손에, 핸드폰을 다른 손에 들고 셔터를 누르는 동시에 멍하니 쳐다보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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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툴을 볼 때마다 다른 세계 같던 그날의 풍경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

 

스툴보다 며칠 일찍 내 공간에 들어온 모빌은 현재 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몇 년 전부터 모빌을 구매하고 싶었으나 필수품은 아니라서 망설이며 미루던 중, 최근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정서적 불안감이 심해지는 걸 느껴 집의 분위기도 환기하고 머리를 비우려는 목적으로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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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얇은 실로 동력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날개들을 나도 모르게 응시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느긋하게 돌아가는 모빌을 바라보고 있으면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떠오르지 않고, 돌아가는 날개들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장면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한다.

 

서로의 움직임을 거울처럼 반사하며 계속 움직이는 모빌의 이름은 ‘Mirage’ 즉, 신기루다. 모빌을 실제로 달기 전까지는 이름이 그리 와 닿지 않았는데, 공중에서 이리저리 떠도는 색색의 조각들과 둥근 곡선이 비로소 사막을 헤매는 이들이 머무는 텐트의 풍경처럼 보였다.

 

둥근 무게추를 향해 끝없이 다가가지만 실제로는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는 아이러니를 표현한 걸까. 잠깐 생각을 이어가다 이내 포기하고는 ‘적절한 이름이네’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멍하니 모빌을 바라보았다.


모빌은 스툴과 함께 밋밋한 방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하늘을 배경 삼아 제자리에 놓인 물건과, 돌아가는 모빌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을 바라보는 건 도통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 물건이 지닌 이야기들도 소중하지만, 조금 물러나서 물건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보면 그 자체도 내 기억에 남아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져 매번 새롭기 때문이다.

 

*

 

글을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너무 멀리, 너무 많은 곳에서 일상의 반짝이는 풍경을 찾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방을 다시 둘러보고, 물건들의 사진을 찍으며 나의 공간에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조각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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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의 풍경에 항상 함께하는 물건이 만드는 장면은 외부의 멋지고 새로운 공간들과 비교하기엔 미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세한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애정 어린 시선만 있다면, 나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거움을 만끽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지금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익숙한 물건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잊고 있던 기억이나 풍경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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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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