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진정한 공정함'이라는 신화 - 능력주의와 불평등
-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분배하는 보상과 인정 시스템을 말한다. (…) 능력주의는 때로는 측정된 지능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차별하는 체제나 이념을, 때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나 실적에 따라 차별하는 체제나 이념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 공현, 〈교육에 필요한 것은 탈능력주의〉, 317쪽
나 또한 능력주의가 어느 무엇보다 ‘공정’하고 ‘공평’하며 투명하고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가진 학교 ‘간판’을 때로 자랑스러워하거나 때로 부끄러워했다. 그것은 학교에서 누누이 들어왔던 내 노력과 능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더 많은(이것 역시 상대적이다.) 경험을 가지지 못한 것, 더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나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그가 가진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과 노력, 가치를 판단하고 평가했다. 그것은 절대적이고 평화로우며 정의로운 기준이라 생각했다.
2020년, 코로나 19 등록금 반환 운동을 함께 했다. 교육권 침해와 이에 따른 등록금 반환을 외쳤다. 그 당시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단순히 서비스값 환불이 아니라 교육 공공성 전반에 대한 고찰과 패러다임 변화였다. (상한 음식이 배송되었는데 같은 값을 받으려는 모습으로 대학의 행태가 비유되곤 했다. 그러나 교육이란 그렇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누리는 서비스가 아니다.) 많은 학생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것이 자칫하면 당사자성을 가진 교육권 문제에만 집중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등록금에 따른 교육을 제공하라는 목소리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근본 문제부터 파헤쳐야 했다. 결국 능력주의 담론부터 시작해 교육공공성, 무상교육, 학벌, 학위, 수능, 시험, 청소년 권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등록금 반환을 넘어서 무상교육, 학벌 학위 카르텔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위해 능력주의의 근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능력주의와 불평등>은 능력주의 개념과 더불어 학교 교육, 시험/평가, 학벌주의와 지식/금융 자본주의의 문제, 노동의 위계화, 의사 집단의 엘리트주의와 공공성 문제, 페미니즘 실천 속 능력주의적 경향성 등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능력주의의 맹점을 비판한다. ‘진정한 능력주의’, ‘이상적인 능력주의’가 아닌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이어간다.
나는 아직 능력주의에 대한 인지 층위가 얇고 또한 당사자성을 가진 문제 위주로 서술하다 보니 글에 부족함이 많을 수 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의 관점에서 쓰인 글이므로 이것 역시 학벌 학위 카르텔에 일조하는 편협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생긴다. 아래에 쓴 글은 책의 ‘시험/평가체제 속 인간과 교육받을 권리’ 부분과 이어지는 생각을 쓴 것에 불과하므로, 능력주의와 불평등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내용들은 꼭 직접 책을 구매하여 읽는 것을 추천한다.
능력주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같은 인류의 오래된 비례적 정의관에 닿아 있기 때문에 강렬한 호소력을 지닌다. 능력주의에 대한 연구들 중 상당수가 능력주의를 가장한 세습주의, 사이비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결론에 가서 ‘진정한 능력주의’를 요청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은 그만큼 떨쳐 내기가 쉽지 않다.
- 박권일, 〈여는 글 : 불평등과 특권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의 역설〉, 9~10쪽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비유는 달리기 등의 경주이다. 이때 우리는 출발선(기회)이 같았는지, 규칙(과정)은 공정한지, 이로부터 도출된 서열과 승패(결과)가 정당한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나 삶은 개개인이 참가하는 경주나 시합이 아니다. 경주나 시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사회와 삶 전체를 경주로 보면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속도와 기록을 재기 위한 시험과 평가로 생애를 채워 나가야 한다. 불필요한 경쟁과 무의미한 고통이 다수에게 요구된다. 이에 집중하다 보면 평가와 차별의 룰을 만들고 시행하는 권력은 가려지게 된다.
- 공현, 〈교육에 필요한 것은 탈능력주의〉, 31쪽
20세기, 의무교육 제도가 확산되고 사회에서도 사람을 선발 배치하면서 동서양에서 능력주의를 작동케 하는 가장 일반적인 기제는 시험이었고, 능력의 현실태는 점수였다. (...) 능력의 현실태인 점수는 인간을 오직 하나의 비교 값으로 투명하게 만든다. 한 인간을 둘러싼 가문, 경력, 사상 같은 온갖 요소들을 제거하고 오직 점수로 본인 자신과 혹은 타인과 비교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사람들은 점수를 보면 한 개인의 능력을 직관적으로 안다고 생각하고 신뢰한다. 이게 점수의 위력이고 숫자화된 점수의 마력이다.
- 이경숙, 〈시험/평가체제 속 인간과 교육받을 권리〉, 37쪽
대학을 산업예비군화 관점에서 보는 선택적 패스제
2020년, 1학기 비대면 수업을 실시하면서 드러난 문제가 있었다. 모 대학 오픈채팅 부정행위는 1000여명이 함께 듣는 대규모 교양강의에서 700명의 학생들이 오픈카톡방을 열어 객관식과 서술형 문항 정답을 공유하며 논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 내 사립대학 등에서도 답지 공유, 과제물 베끼기 등의 부정행위가 있었다. 이 같은 부정행위와 평가제도의 형평성 논란으로 ‘선택적 패스제’ 도입에 대한 찬반 내에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다.
애초에 상대평가는 기업의 인사검증과 관련이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부실대학 정리를 위해 내놓은 대학구조개혁평가 방안에 따라, 교육부는 대학 1주기 평가에서 상대평가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는 절대평가로 인한 학점 인플레이션이 기업들의 채용에서 인사검증을 하기 부적절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며, 무한경쟁주의 사회에서 대학이 산업에 종속된 결과로 볼 수 있다.*1 지금의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는 교육학적 의의가 아닌, 취업과 서비스, 경쟁과 브랜드라는 맥락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선택적 패스제’를 찬성하는 학생 입장 역시 이와 같다. ‘취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할 때 성적이 중요한데, 우리만 도입을 안 하면 학점 경쟁에서 불이익을 얻을 수 있다’, ‘다른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만큼 우리도 도입 가능한 일이다. 나중에 취업시장에서 동시에 경쟁할 때 동일선상의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2 또한 ‘어려운 수업을 포기해서 좋다’, ‘이번 수업 개꿀이다’, ‘이런식으로 졸업하면 편하겠다’ 등의 의견으로 미루어봤을 때, 대학뿐만 아니라 학생들 역시 대학교육을 단순히 서비스적인 맥락으로만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한 학교는 ‘온라인 시험에서 부정행위에 대한 논란이 많았으며, 성적 평가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했다’, ‘대면평가의 원활한 진행과 비대면 시험의 부정행위 방지 등을 위해 1학기 학기에 한해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은 원론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선택적 패스제는 과연 부정행위를 종식시킬 수 있는가? 학생과 대학 스스로 교육의 의의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가?
‘선택적 패스제’와 ‘오픈채팅 부정행위’는 교육을 서비스적 맥락으로 바라보는 대학과 학생의 시선을 잘 담아낸다. 물론 학점은 취업과 생계로 연결되는만큼 민감한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집중해야 할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이는 곧 대학/비대학 차별, 직업 차별, 학벌, 임금부터 사회지위 격차까지, 원론적인 문제해결 없이는 끝없이 공회전할 것이다.
*1 2014년 12월, 학교 측은 상대평가 제도를 도입하며 “절대평가를 유지하게 될 경우 추후에 발표될 대학 평가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대학평가에서의 불이익은 △학교의 브랜드 가치 하락△정원감축△국가장학금 축소△정부주도사업 참여 제한 등 강도 높은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김인철 총장은 “대학의 학점인플레이션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기업들도 대학 학점의 변별력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며 “학점분포가 최근 결정된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 자료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번 학기에 신속한 대응을 하게 됐다”고 성적평가제도 변경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외대학보, 「두 가지 갈림길,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18.04.12
*2 연합뉴스, 「코로나19에 대학 기말시험 혼란… ‘선택적 패스제’ 대안 부상」, 20.06.11
*
수도권 사립대학 기준 사례를 빌어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는 결국 ‘능력주의’라고 하는 근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더욱 ‘공정한 시험’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와 학벌 학위 카르텔 그리고 교육에 대한 근본 고민이 필요하다. 인국공 정규직 전환 논란에 대해, 한 친구는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라 이 문제들이 자신에게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문제다. 각개전투로 보이는 이 문제들은 결국 능력주의라고 하는 ‘공정’함으로 위장한 뿌리 깊은 차별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이권 챙기기를 넘어서 우리 모두의 권리에 대해 들여다보고 목소리 낼 수 있어야 한다.
지식 자본주의 시대에는 지식이 환금성을 갖게 되면서 학벌은 정규직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학벌은 능력주의 사회의 신분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학벌이 ‘빼앗기’보다 ‘지키기’를 위한 방어적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상승의 욕망보다 하강의 공포가 더 커진 상황에서 학벌이 사다리를 오르는 수단이 아니라 사다리를 걷어차는 수단이 된 것이다.
- 채효정, 〈학벌은 끝났는가〉, 116~117쪽
점차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좋은 일자리에 들어갈 방법이 없어지면 노동자들은 시험에 매달리게 된다. 이미 학생 때부터 경쟁을 당연하게 겪으며 살아왔기에 오로지 시험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청년 정규직이 ‘공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사회가 불공정하기 때문에 자신처럼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시험을 통해서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달리는 것이다.
- 김혜진, 〈차별받는 노동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176~177쪽
이런 모습은 능력주의의 부정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성공을 오로지 개인의 내재적 능력과 노력의 결실로 간주한다. 2020년 8월 14일 거리 집회에서 나온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의 “교과서 사는 데에 10원 한 푼 보태 준 적 없는 정부”라는 발언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의 파워 엘리트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 주었다. ‘내가 내 돈 내고 내 의지로 열심히 해서 얻은 나의 지위인데,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사회가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책임을 요구하는가!’
- 김혜경·문종완, 〈의사들의 엘리트주의 그리고 어긋난 정의〉, 194쪽
성별 격차나 젠더 갈등은 사실상 ‘청년’이라는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범주 외부의 의제로 다루어진다. 한국 사회의 무한 경쟁 체제에서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소진에는 사회적으로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로 상정하는 것과는 달리, 청년 여성이 노동하면서 경험하는 직장 내 성차별은 상이한 층위에서 다뤄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년-여성이 경험하는, “끊임없는 경쟁과 자기계발 속에서 ‘개인’으로 성공하기를 요구받지만 동시에 구조적 차별과 폭력의 기제로서의 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청년 세대 여성들의 모순적 삶의 지형”은 페미니즘을 요청하게 된다.
- 이유림, 〈뛰어난 여성들은 자신의 파이를 구할 수 있을까〉, 206~207쪽
[장소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