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을 매개로 민중과 소통하다 [미술/전시]

민중미술과 포스트 민중미술
글 입력 2021.01.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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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이란?


 

민중미술은 1980년대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등장한 체제 저항적 미술을 통틀어 이른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당연해 보이는 사회비판적 성격이 민중미술의 주된 정체성 중 하나였던 것은 우리 사회의 특수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다. 일제의 침탈, 광복 이후 이어진 미국과 소련의 주둔, 연이어 발발한 한국전쟁과 전후 들어선 독재정권으로 인해 민주화의 시대는 계속해서 뒷날로 유보되었고 미술계 내부에서도 발언의 자유가 온전히 주어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민중미술의 범주가 지나치게 광범위함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의 존재 가치는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다양한 양식을 아우르는 만큼 그 안에서도 민중을 대변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했다. 공통적으로‘민중의 삶’을 작품의 주요한 주제의식으로 내세웠으나 그 방법론은 작가별, 시기별, 단체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민중미술의 선행연구를 검토하고 그 계보에서 살아있는 민중과의 생생한 소통을 시도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후대의 포스트 민중미술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 알아보고, 이들의 방향성을 민중미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민중미술이 시도한 민중과의 직접적인 소통

 

‘현실과 발언’과 민족미술인협회를 주도했던 민중미술운동 이론가 원동석은 1987년 발표한 논문에서 민중미술이라고 자처하는 작품의 사례들은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민중의 삶이 갖는 해방의 속성을 미술 자체의 자유로운 표현과 감수성으로 발휘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그 까닭은 사회에 발언하고자 하는 비판 정신을 공유하는 이라면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민중미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자료 - 원동석. "민족,민중미술의 지평." (실천문학 8, 1987), 147쪽)

 

이렇듯 민중미술은 특정한 화파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었기에 민중미술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민중의 삶을 표현하고 대변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따라서 원동석의 주장처럼 민중미술의 범주가 확정적으로 고정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민중미술이 진행되고 있었던 80년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주장이다.
 
민중미술이 포스트 민중미술로 이행되었던 90년대 이후의 이론가들이 민중미술을 형식별, 주제별로 분류하는 것은 과거가 된 민중미술 내부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고찰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작업이다. 민중미술의 형식을 서구의 개념을 빌려 살펴보면 도구주의부터 뉴장르 퍼블릭 아트까지 다양한 유형을 포용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중에서도 본인은 1989년 발족한 미술비평연구회가 논의한 당파적 현실주의 개념에 주목하고자 한다.

 

87년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달라진 노동자 계급의 위상을 반영한 ‘당파적 현실주의’는 노동자의 정치의식인 당파성, 곧 ‘당과의 이념적·조직적 결속(출처-두산백과, 당파성)’을 예술 창작의 중심으로 삼아 사회변혁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1985년에 결성된 민족미술협의회, 광주자유미술인협회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미술비평연구회가 당파적 현실주의의 사례로 거론한 작가들은 홍성담, 최병수, 그림패 ‘둥지’, 조소패 흙, 오경화 등이다. (참고자료 - 기혜경, "문화변동기의 미술비평" (한국근현대미술사학 25, 2013),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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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패 둥지의 걸개그림, <맥스테크 민주노조>를 살펴보자. 1987년 성장 위주의 정책 하에서 저임금, 부당해고, 과도한 노동의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은 노동자 대투쟁을 전개했다. 이 상황에서 민중미술은 여러 가지 형태로 대중과의 소통을 촉진하였는데, 그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식은 걸개그림이었다. 시위나 집회 현장에서 참여자들의 투쟁 의지를 고취시키는 걸개그림은 구체적이고 간결한 형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리고 둥지는 여성미술연구회 내부의 그림패로, 여성운동단체와 연대해 작업을 진행했던 단체이다. 그림 속 안경 낀 여성들은 맥스테크의 노동자들로, 이들은 미국에서 의학서적이나 재판기록 등의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의 과중한 노동을 해야 했고 장시간의 컴퓨터 작업으로 시력이 떨어져 입사 후 6개월이 지난 사원들의 90% 이상이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해야 했다.
 
이러한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펼치기 위해 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투쟁하였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걸개그림이 이 작품이다. 다국적기업의 자본가를 무찌른 안경 낀 여성 노동자들이 화면 한가운데 크게 그려져 있고 아랫부분에는 당황한 자본가의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다. (참고자료 - 오미진, “한국 민중미술에 나타난 행동주의 공공미술“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미술이론전공 석사학위논문, 2015), 39-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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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살펴볼 사례는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의 시민미술학교이다.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는 5·18 항쟁의 현장에서 선전 활동을 체험한 청년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민중미술운동단체이다. 그리고 1986년, 천주교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는 시민미술학교 수강생의 판화작품 550여 점 중 220점을 선별해 <나누어진 빵>이라는 제목의 시민판화집을 펴냈다.
 
판화집의 내용은 주로 노동자들의 삶이나 빈곤, 소외 등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노동수기>는 한 여성금속노동자의 생활을 담은 판화이다. 모욕적인 처사와 5만원에서 오르지 않는 월급, 높은 노동강도를 버티다 끝끝내 약을 먹고 자살한 노동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쓰러진 동료를 안고 슬퍼하는 모습, 뒤에 서서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오열하는 모습과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추모하는 모습 등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참여자가 대부분 노동자와 농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남아있는 1회의 설문조사 결과 분석에 따르면 응답자 60명 중 학생이 39명이었고 직장인이 15명이었으며, 여성이 41명을 차지했다고 한다. 따라서 시민미술학교 역시 민중과 노동자와의 직접적인 소통과 그들의 창작 활동을 촉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민미술학교는 판화강좌에 앞서 노동현장 및 소외지역을 답사하고 상호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것이 노동자나 빈곤, 소외 현상이나 사회비판 등의 주제의식이 판화집의 전반적인 내용을 구성하는 이유이다. (참고자료 - 서유리, "검은 미디어, 감각의 공동체 ―1980년대의 시민미술학교와 민중판화의 흐름―." (民族文化硏究 79, 2018), 96-97쪽)

 
  
포스트민중미술과 민중미술의 연결고리

 

‘포스트 민중미술’은 민중미술 이후에 등장한 2세대 후배 작가들의 비판적 미술 경향을 일컫는다. 이 용어는 민중미술의 계승 혹은 극복의 차원에서 다각도로 논의되어 왔다. 이는 ‘반(反)’ 혹은 ‘후기’를 동시에 의미하는‘포스트(post)’라는 단어의 모호함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80년대와 90년대의 사이에 발생한 급격한 사회 체제의 변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중미술이 그 어떤 장르보다도 사회현상에 오감을 집중해 직접 반응하는 미술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시대적 변동에 따라 급변한 미술가들의 사회적 활약상, 민중들의 생활상은 과거 민중미술의 양상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으며 미술을 활용하는 방식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이 상황에서의 후세대 미술가들의 작업은 기존의 민중미술의 정신성을 계승하되, 형식상의 다양성만 새로이 확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포스트 민중미술의 대표적 사례가 되는 플라잉시티의 <청계천 프로젝트>에 대해 알아보자. 플라잉시티는 전용석의 주도로 2001년에 결성되어 재개발 사업 등의 도시 정책이 도시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 삼아 설치나 미디어,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펼친 도시주의 그룹이다. 이들은 2003년도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인해 인근 지역의 공동체에 가해진 압력에 주목해 <청계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원사업에 긍정적으로 반응했지만 주변 세입자, 노점상들은 임대료 상승과 상업활동 제한의 위험에 처했다. 그래서 플라잉시티는 이 지역의 상가 및 노점상을 취재 및 조사하고 그 결과물을 다양한 형태로 가공했다. 그중 하나인 <공구상가 네트워크>는 각각의 작업장의 연결 구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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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플라잉시티는 여전히 법체계의 바깥에 존재해 정부가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노점상 그룹 역시 주제로 삼았다. 플라잉시티는 이들의 생존 원칙에서 자원 순환의 가장 하위 레벨에서 쓰레기나 폐품을 재활용되게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며 경제적 침체기에는 실업자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듯 노점상들은 청계천 상가가 번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청계천 개발로 인해 이들의 과거가 잊힐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플라잉시티는 노점상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자는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 천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플라잉시티는 청계천 프로젝트를 위해 현장을 취재하며 접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존권 투쟁에 가려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시위나 집회와는 달리 낮은 톤으로 말하되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토크쇼 형식을 이용했으며, 파라솔 색깔로 디자인한 깃발과 천막 등을 거리에 설치했다. (참고자료 - 전용석, 안인기, "도시담론의 변화와 공공미술의 가능성" (현대미술사연구 16), 216-218쪽)
 
*
 
앞서 살펴본 민중미술의 두 가지 사례, 걸개그림과 시민미술학교를 플라잉시티의 청계천 프로젝트와 비교해 보자. 이들은 모두 지배권력이 일방적으로 가하는 억압을 적대시하고 민중의 삶을 대변하고자 했다. 또한 삶과 예술의 거리를 좁히고자 당대의 사회현상에 참여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걸개그림은 시위 현장에서 민중들의 감정을, 시민미술학교는 판화 수업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을, 플라잉시티는 국가사업으로 인해 생계의 위협이 가해진 지역민의 현실을 대변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목적의식과는 별개로, 포스트 민중미술에서 크게 변화한 지점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술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앞선 시대의 민중미술은 정치·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술의 물성 자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인쇄 매체나 대형 걸개그림 등을 활용해 직접적으로 민중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반면 포스트 민중미술 시대의 미술가들은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미술의 물질성보다는 비물질성이 강조되었으며, 미술가들은 작품의 생산자보다는 민중과 미술 사이의 매개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설정했다. 이 부분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미술 양식이 수용된 결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이 변화 속에서 포스트 민중미술이 민중미술의 일종의 틀을 벗어났다고 본다.
 
청계천 프로젝트의 퍼포먼스 현장 혹은 전시실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은 미술가 개인의 존재감이 아닌 민중 그 자체이다.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인근 지역 상인들의 목소리가 취재 혹은 설문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반영되었으며, <이야기 천막>에서는 이들이 실제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술가의 역할이 함몰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미술에서만 가능한 독자적인 영역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포스트 민중미술은 민중미술과 마찬가지로 분절적으로 그 개념과 형식을 가두어 놓지 않는다. 즉 상당히 넓은 범위의 미술이 포스트 민중미술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에서 사회비판의 성격은 중요하다 못해 미술의 마땅한 책무로 당연시되기에, 민중을 대변하는 동시대의 갖가지 미술들을 포스트 민중미술이라는 새삼스러운 용어로 통칭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민중미술의 끝이 아닌 그 반대를 의미한다. 민중미술을 동시대 미술의 시작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하는 만큼, 민중미술의 정신과 본질은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억압의 시대에서 갑작스럽게 민주주의 사회를 맞이해 원동력을 잃었던 민중미술이 새로운 양상의 포스트 민중미술로 다시금 사회를 반영하고, 포스트 민중미술이라는 용어 역시 이제는 동시대 미술을 가리키기에 고루한 개념이 되었다는 것은 반가워해야 마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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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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