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로 살아낸 삶의 이야기 - 방구석 미술관 2 [도서]

방구석에서 만나는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장들
글 입력 2020.12.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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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서 떠나는 미술여행


 

우리 일상에서 미술은 꽤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집을 꾸미는 포스터나 조각품부터 엽서, 식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곳에 그림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휴지 곽에 그려진 클림트의 그림을 비롯해 인테리어에 자주 활용되는 마티스의 콜라주 포스터나 고흐의 그림은 우리에게 퍽 익숙하다.


또한 세잔, 모네, 피카소, 뒤샹과 같은 서양 미술가들의 이름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으며 반 고흐의 그림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 모네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들 한마디씩 거들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미술사조와 화가들에게 보이는 관심에 비하면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편이다. 지난해 김환기의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에 낙찰된 직후 뉴스 기사의 댓글을 확인한 적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그림이 왜 100억이 넘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릴 수 있겠다’는 다소 냉소적 반응을 보였고, 나는 댓글을 읽으며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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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방, 근대화가 진행된 조선.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겐 문화적 편견이 자리하고 있으나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미비했음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조원재 작가의 신간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20세기 한국 미술의 거장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친근한 언어로 풀어낸다.


 

 

식민지와 전쟁 ; 비극의 감각을 공유하다


 

한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은 한국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인상주의나 큐비즘, 추상 주의 등 서양미술의 최신 흐름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미술학도들을 통해 알려지고,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미술사적 과도기를 겪게 된다.


한국 전쟁은 이 과도기의 전환점으로, 궁핍하고 절망적인 시기에도 예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화가들의 삶을 건 싸움이 이루어진 시기다.


‘방구석 미술관 2’는 이 시기를 지나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역사의 혼돈 한가운데 개인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붓을 꺾은 이들도 있었지만, 책에 소개된 화가들은 각자의 이유와 방법으로 그림을 이어갔다.

 

유년의 기억 속 뱀을 떠올리고, 고국을 향한 그리운 마음마다 점을 찍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상을 살아내던 평범한 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담아 화폭과 끈질긴 대화를 나누며 독특한 조형언어를 생성하는 과정에 집중해보자.




예술, 힘겨워도 계속 나아간다는 것



궁핍한 생활, 가족과의 이별, 정치적 문제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힘겹던 시기에도 예술을 향한 열망은 그 자체로 삶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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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와 이응노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생맥.

 

 

이중섭은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엽서에 빼곡히 맑은 그림을 수놓으며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이응노는 전쟁의 비참함을 폭발적인 에너지로 표출했으며, 천경자는 모든 게 무너진 삶으로부터 어릴 적 기억에서 ‘뱀’을 꺼내 그리기 시작하는 등 눈앞의 비극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라는 발걸음을 힘겹게 내디뎠다.


이 과정에서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등은 서양의 흐름에 휩쓸리기보다 조선의 자연과 미에 집중해 독창적 조형 언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근대의 한계를 뛰어넘다



현대에 가까워지며 백남준과 이응노는 이제 화가라기보다 ‘작가'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간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근대적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감지한다.


백남준은 기존 예술계의 권위적인 분위기와 예술의 각 분야를 분리, 전문화하는 행태에 반발해 자칭 네오 다다이즘 그룹 ‘플럭서스(Fluxus)에서 ‘해프닝(happening)이라는 돌발적 행위예술을, TV의 등장 이후에는 매체의 일 방향성에 반발해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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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항(현상과 지각B), 1969/2013, 이우환

 

 

이우환은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근대적 이성의 폭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돌’과 ‘철판’으로 타자와의 관계를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분법적 세계에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자’로서 타자와의 만남을 이어갔으며, 그의 작품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


이렇듯 격변하는 시대에도 자기만의 세계를 꾸리고 예술로 대화하는, 나아가 세계 밖의 타자에게도 말을 거는 한국의 미술가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작업을 남겼다. 한순간도 그저 평화로울 수 없었으나, 예술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던진 이들 각자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그 작품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이 책은 우리에게 관습적으로 인식되던 ‘동양적 한국 미술’이라는 편견을 깨뜨리고, 한 인간의 서사와 피부처럼 밀착된 예술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으스대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말을 건네고 물음을 던지는 작가의 어법은 책에 담긴 이야기를 더 알아가고 싶게 한다.


이 글을 읽고 우리가 사는 토양을 공유했던 한 인간이자 예술가의 삶과 정신이 어떤 모습으로 소화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혹은 한국 근현대미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겼다면,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의 작가가 건네는 손을 잡고 열 명의 한국 미술가와 열 가지 이야기에 빠져보기를, 기회가 된다면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마주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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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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