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 안티고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존재

가슴 속에 꽃을 담고 죽는 것이 나으리니
글 입력 2020.11.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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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영화제목을 보면 다들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가? 보통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관되어 생각나는 상황이나 기억을 말하곤 한다. 예를 들면 영화 ‘기생충’을 보기 전엔 영화 ‘기생수’가 생각이 났고 ‘예스터데이’라는 영화를 보기 전엔 당연히 영국의 밴드 비틀스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추측은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그렇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소재에 끝날 뿐 주제 의식이라든가 감독과 작가의 의도와는 큰 연관성을 보여주진 못한다. 나중에 영화가 끝난 후 ‘아 이래서 제목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제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방향성이나 스토리의 시발점이 제목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본 ‘안티고네’도 그런 경향을 보여줬다. 안티고네라는 단어를 봤을 때 들었던 기분은 익숙함이었다. 콘텐츠를 통해 접해본 수많은 외국 이름 때문일지라도 굉장히 익숙했다.

 

특히나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전설이나 역사적 해프닝에 어울릴 듯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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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와 폴리네이케스_니키포로스 리트라스 1865. 그리스 국립박물관)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이다. 안티고네는 전쟁터에서 죽은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하여 매장을 금지한 섭정 ‘크레온’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했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에 모래를 뿌려 장례의식을 행하였지만 ‘크레온’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

 

과연 영화에서는 ‘안티고네’의 이야기가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신화의 흐름처럼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았을까.

 

 


#1. "네 자유를 희생할거야?"


 

이민자의 삶, 그게 바로 안티고네와 안티고네의 가족들을 대표하는 말이었다. 구체적인 국가나 장소를 알 수는 없었지만, 부모가 살해돼서 돌아오는, 그런 상황이 일상처럼 발생하는 곳이 그녀의 고향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두 오빠, 그리고 한 명의 언니와 함께 캐나다로 넘어왔다. 암울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그들은 노력하고 있었다. 안티고네는 장학생으로 뽑힐 만큼의 수재였고 '하이몬'이라는 지역 정치인의 아들과 연애하고 있었다. 환경으로만 보면 대척점에 놓일 만큼 정반대의 연인이었지만 그들은 평범한 연애를 하고 있었고 서로 사랑했다.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 는 지역갱단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맏형 '에티오클레스'는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경범죄를 저질렀던 폴리네이케스는 귀국 송환 조치를 받게 되고 안티고네는 그 결정에 순응하지 못한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가까스로 이겨내 왔던 과거의 기억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당국의 결정은 안티고네에겐 가족의 고통, 불행, 죽음으로 연관 짓기 충분한 요소였다.

 

안티고네는 행동으로 그녀의 의지를 보였다. 단발 곱슬머리였던 그녀의 머리는 짧게 밀려 그녀의 오빠와 같아졌고 얇은 팔뚝엔 지역갱단처럼 보일 문신을 새겼다. 결국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로 변장하여 그를 탈옥시키는 것에 성공한다. "작은 오빠를 구해야 해" 무리한 계획이라고 주변에서 안티고네를 말렸지만, 그녀가 한 유일한 말이었다.

 

그녀에겐 감옥과 재판장의 서슬 퍼런 긴장감보다 가족 간의 와해가 더 무서웠을지 모른다. 힘들게 지켜온 가족의 유대감이 단 한 발의 총성으로 무너져버리는 모습은 안티고네를 더욱 단단하고, 결연하게 만들어주었다.




#2. "이 재판을 아예 선전무대로 바꿔버리자"


 

안티고네는 스스로 직접 변호한다. "저는 유죄입니다." 영화 초반부, 법정에 소환된 안티고네가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말이다. 내가 무죄면 나의 할머니, 내 가족이 처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안티고네가 선택할 사항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뿐이었다. 가족과 정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마음은 가족을 위한 선택에 끌리겠지만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사회적 인식, 개인의 도덕규범을 무시하는 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안티고네는 취조 중 오빠들이 갱단에 소속되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사회에 폐를 끼쳐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두 오빠의 치부를 알았음에도 가족을 지키겠다는 책임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유죄를 주장하며 재판을 끝내려 한다.

 

그렇다고 법조인이 아닌 그녀가 계속해서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난한 안티고네의 가정 형편상 많은 국선변호사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변호하길 꺼리지만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난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안티고네에게 그녀가 지금 사회에서 굉장히 큰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마약상 집안, 갱단의 소굴, 매춘부 안티고네를 상징하는 말들이었다.

 

계속해서 회의하던 안티고네에게 변호사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재판을 아예 선전 무대로 바꿔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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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판단은 적절했다. 안티고네는 대중들에게 범죄자의 탈옥을 도운 또 다른 범죄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진심 어린 스토리는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이민자 출신으로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4남매가 어렵게 살아왔다. 그런데도 안티고네는 장학생으로 뽑히는 우등생이었고 좋은 평판을 지닌 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이 경찰에 의해 살해를 당했고 그녀는 남은 가족들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갔다.

 

안티고네의 남자친구인 '하이몬'이 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안티고네를 혁명과 평등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대중들이 안티고네의 의도와 억울함을 알 수 있게 효율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바로 SNS였다. 수많은 사람이 안티고네의 이름을 외치며 정부와 경찰을 비난했다. 안티고네라는 이름은 단지 평범한 학생의 범주에서 벗어나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저항이라는 대중들의 숨겨져 있던 욕구를 자극했고 안티고네를 지지하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었다.

 

대중들의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고 언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티고네를 조명했다. 그들에게도 무자비한 공권력의 행사는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내내 안티고네에 반대에 세력에 서 있는 세력들이(경찰, 사법부 등) SNS, 즉 여론과 미디어에 휘둘리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안티고네의 의도대로 상황이 변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미디어의 태도 변화'

 

언론의 존재 이유는 대중들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만이 아닌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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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의 형제들이 갱단에 일원인 것은 자명하지만 그녀와 다른 가족들까지 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는 큰 파급력을 보여주었고 결국 안티고네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행히 안티고네와 변호사가 언론의 특징을 활용하여 전세를 역전시켰고 소위 '안티고네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결국 언론이 되었다.

 

아직도 일부 대중들에게 언론기관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인 이유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선이 아닌 자신들의 카메라 속 프레임에 갇힌 이미지를 송출하는 사람들. 또한 손해와 이익에 따라 대상에 대한 이해를 뒤집는 모순 된 모습을 영화에서 엿볼 수 있었다. 언론을 애정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모습을 잘 비유했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태도 변화와 더불어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대중들의 태도 변화'다. 영화에선 인터넷 댓글을 캡처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영화 '안티고네'의 장점으론 매력적인 ost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참고자료나, 대중들의 인터넷상 대화를 cg로 보여줄 때 매우 중독성 강한 음악이 나온다) 영화의 런닝 타임 때문이겠지만 짧은 시간에 뒤바뀌는 대중들의 여론은 놀라웠다. 갑작스럽게 변하는 상반되는 반응에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개인적인 감상은 안티고네가 상황을 주도했다는 느낌보단, 오히려 SNS와 언론의 힘을 느꼈다. 현대판 신문고의 재현이라는 말이 적절할 듯하다. 왕은 없지만, 나라를 흔들 수 있는 여력이 미디어에 있다. 물론 안티고네의 의도였고 명석하게 활용을 잘한 것이지만, 언론은 개인의 위에 있다는 느낌을 왠지 모르게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를 단순한 범죄자로 몰아버린 뉴스속보로 인해 상처받은 안티고네를 봐선지, 뉴스에서 앵커의 말 한 마디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영화에서 안티고네와 더불어 큰 비중을 둔 역할 중 하나가 SNS와 언론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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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빠를 도우라고 제 심장이 시켜요.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


 

다시 영화의 줄거리로 돌아오면, 안티고네에 대한 재판은 이어진다. 그녀가 미성년자라는 점과 안티고네에 대한 동정 여론으로 인해 그녀에게 최소한의 처벌을 주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도 잠시, 오빠 폴리네이케스는 술집에서 경찰에게 체포되고 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젊은 배우의 연기력 때문에 종종 놀라곤 했다. 후반부까지 대체로 감정을 억누르는 표현을 했기에 감정의 완급조절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오빠를 도우라고 제 심장이 시켜요.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라는 대사에선 대사가 시적임에도 장면과 조화로웠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잡혀 온 폴리네이케스를 보곤 폭발한다. 독방에서도 끄떡없던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악몽과 망상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쉽게 참작되지 않았다. 허탈감, 배신감, 무력감, 부끄러움, 괴로움 등 부정적인 감정만이 느껴졌다.

 

영화 후반부, 절망에 빠진 안티고네는 하이몬과 함께 평소에 놀던 들판으로 이동한다. 그리곤 사랑을 나눈다. 삶의 고난이 닥칠 때마다 항상 곁에 있어주었던 하이몬에 대한 애정의 표시였을까, 안티고네가 느꼈던 감정은 그보다 더욱 복합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노력에 대한 회의감, 오빠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 앞으로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섞여 번 아웃이 된 그녀를 원초적인 본능으로 이끈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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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이케스가 잡혀 온 장면에선 영화를 보고 있던 나도, 같이 관람하러 간 친구도 동시에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다. 이후 장면부터 안티고네의 표정, 눈빛, 사소한 행동 하나를 숨죽이며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책임감이라는 자기통제 수단에서 벗어나 슬픔을 표출하는 그녀의 방식은 세심했고 감성적이었다.

 

감독에 대해서도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이,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안티고네' 이야기를 읽으며 결국엔 안티고네에게 새드 엔딩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원작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런닝 타임 대부분에서 안티고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희망을 품어주었지만 가차 없이 짓밟아 버렸다. 굉장히 도전적인 각색이었고 결과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안티고네의 분노 때문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비유와 스토리 전개가 인상 깊었다.

 

 

 

#4. "전 가족을 책임져야 해요"


 

폴리네이케스가 체포되고 안티고네의 할머니는 폴리네이케스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안티고네는 하이몬 아버지의 도움으로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영화는 안티고네의 가족들이 공항에서 이동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먼저 첫 번째는 안티고네도 고향으로 돌아간 것인가? 이다. 그녀의 행선지에 대한 뚜렷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모든 책임이었고, 하이몬과의 관계도 급하게 깊어졌던 만큼 남아있던 미련을 비우려 하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두 번째로 생각해볼 장면으로 새로운 이민자 가족을 공항에서 마주치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안티고네와 그녀의 어린 시절을 의미하는 새로운 이민자 가족을 마주하며 문학에서 등장하는 수미상관구조의 느낌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고 느껴졌다. 그녀에게 캐나다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것은 무가치한, 목표가 없는 삶이었을 것이다. 원작에서 안티고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만큼 각색한 이번 작품에서도 안티고네가 스스로 고향으로 가는 길을 자처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녀에게 고향이랑 부모님의 죽음, 다시 말해 가족의 파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이민자 가족을 만났을 때 그녀의 과거 모습을 상상으로 보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후반부에 안티고네는 정신적으로 매우 지쳤다. 실제로 이민자 가족을 만났는지 허상인지 그 자체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녀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항에서 길을 걷던 안티고네에게 그녀가 그리워하는 시간은 고통스러웠을지라도 가족이 가족으로서 존재했던 과거였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씬에서 휴대폰 알람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안티고네의 표정에선 남아있는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공항에서의 장면은 무척이나 상징적이었고 사회적 약자의 삶은 계속해서 순환될 것이지만, 부당함에 저항하고 자신들의 삶을 지키는 영웅을 상징하는 안티고네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란 걸 의미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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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가족을 책임져야 해요."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녀가 내뱉기엔 너무나 무거운 말, 그녀는 성숙했고 결국 그녀가 느낀 고통의 깊이도 성숙한 만큼 깊었다. 문장이 짧고 단순한 만큼 영화의 모든 대사 중 뇌리에 깊게 남은 대사다.

 

누구도 그녀에게 책임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안티고네는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에필로그



'아, 살아본들 무엇하리

꽃보다 오래 살아본들

불보다 재보다 더 오래 살아본들

가슴 속에 꽃을 담고

죽는 것이 나으리니'

 

- 생 드니 가르노 -

 

초반 에피소드 중 안티오네가 할머니에게 직접 읊어주는 시의 내용이다. 가슴 속에 누구보다 아름답고 녹진한 꽃을 지닌 안티오네, 그녀의 꽃은 불타고 재가 되어도 남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널리 퍼져 다시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안티오네'라는 영화는 기발하면서도 사회의 부조리함, 모순적인 모습들을 적절하게 비판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의 에피소드를 멋지게 변신시킨 이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만족스러운 영화로 남을 것이다.

 

올해 코로나 19로 영화관에 가지 못했음에도 오히려 더 많은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안티고네'는 올해 본 영화 중 정말 만족스러운 영화 top3안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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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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