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기압 증후군 [사람]

50일의 저기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글 입력 2020.08.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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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웠다. 원래는 지금도 더워야 했다. 이방인의 주인공이 결국 방아쇠까지 당기게 한 여름 더위가 이번에도 순식간에 덮쳐오겠지, 두려움에 떨었지만 실체는 없었다.

 

머리 한 톨 한 톨을 지나치지 않는 잔인한 햇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처음엔 기뻤다. 그러나 곧이어 소중한 머리카락을 감싸 안기 위해 우산을 부여잡지 않으면 집 밖으로 발걸음마저 뗄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어렸을 때 폭우가 방바닥까지 차올라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엄마 바닥이 물렁물렁해요!”라고 소리쳤던 기억 이후로 이렇게 지독한 비는 처음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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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빗소리에 이토록 무력해지기도 처음이다. 꾸준한 운동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 집 앞 천은 가까이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혹여나 밖으로 나가면 물방울이 온몸에 달라붙는 느낌에 습진까지 생겨서 외출도 꺼리게 됐다.

 

올해의 장마 및 호우는 중부 지방 기준 6월 24일에 시작해 8월 중순까지 이어질 전망을 보이면서 ‘사상 최장 장마’라 불리고 있다. 기간뿐만 아니라 비의 양이 미치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

 

‘저기압’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대기 중에서 높이가 같은 주위보다 기압이 낮은 영역. 상승 기류가 생겨 비가 내리는 일이 많다. 둘째, 사람의 기분이나 일의 형세가 좋지 아니한 상태.

 

유례없는 길고 긴 저기압의 시간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마저 저기압으로 내몰았다. 코로나 때문에 두른 마스크로 공기를 힘껏 들이마실 수 없게 되었고, 날마다 내리는 비는 맑은 햇빛을 마음껏 누릴 수 없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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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저기압은 ‘저기압 증후군’으로 나타나 나와 우리 그리고 시민들을 괴롭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과 오랜만에 찾아온 우울감에 지쳐 침대 위를 뒹굴 거리기만 하던 중, 어느 날 아침 오랜만에 한 줄기 햇빛이 창을 통해 비쳐드는 것을 보고 감격하여 사진으로 찍어두기까지 하면서 문제는 날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지인이 이유 없는 두통을 호소하는 것을 듣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저기압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두통, 불안감, 관절통, 두드러기 등 실로 다양했다. 저기압에 질릴 대로 질린 나는 태어나 나본 적 없던 갑작스러운 온몸 두드러기의 원인으로도 저기압을 의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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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비가 오면 ‘구름이 눈물을 흘린다’라고 표현했던 것이 떠오른다. 전염성 있는 우울의 특성처럼 먹먹한 먹구름의 우울이 사람에게 옮아갔다. 어쩌면 이번 집중호우의 기후 이상은 구름은 아니더라도 지구의 우울은 맞을지도 모른다.


 

기후변화가 그토록 무서운 것은 그로 인해 지구의 수권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수권은 지구상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지구는 물이 많은 행성이다. 우리의 생태계는 구름을 통해 지구를 도는 물의 순환 주기에 맞춰 영겁에 걸쳐 진화해 왔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공기의 수분 보유 용량은 약 7퍼센트 증가해 구름에 보다 많은 물이 집중되고 보다 극단적인 강수 사건이 발생한다.

 

- 글로벌 그린 뉴딜 中

 


올해의 시원한 여름, 이상 기후는 단순 기후 변화가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 의해 발현되고, 그 현상은 다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정권과 정부 문제와 연결되어 갑론을박의 단계이기 때문에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태양광 설치도 호우로 인한 산사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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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집중 호우를 겪고 난 이후로 이젠 쉽게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말이 있다. 바로 ‘나는 비 오는 게 좋아’라는 말이다. 고기 굽는 소리가 연상되어 기분 좋아지는 빗소리, 먹먹한 기분이 자아내는 분위기 등을 꼽으며 비오는 것이 좋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수많은 수재민, 사망 및 실종자, 호우로 인한 억울한 죽음들을 이번 여름 특히 긴 시간 동안 뉴스로 지켜보면서 나는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창가를 때리는 비를 감상만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위협받고 생계를 잇지 못하며 그 많은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 내리는 비는 땅의 가장 낮은 곳부터 때리며 차오르다 그친다. 서울에서도 쪽방·반지하 등이 몰린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 유례없는 호우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대책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도돌이표가 되어 비슷한 기사를 마주 해야 할지 모른다.

 

기사는 도돌이표가 될지 모르나, 사람의 목숨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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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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