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지개빛 변화의 조용한 음률을 그린 영화 - 바그다드 카페 [영화]

다채로운 성장의 詩
글 입력 2020.07.0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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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눈이 펑펑 오던 어느 날 강화도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에 간 적이 있다. 한 점 소리 없이 고요한 곳에 위치해 있는 작은 카페였는데 그 고요는 마치 세상과는 동떨어진 듯, 이질적인 평화마저 선사해 주었다. 근래에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접한 영화 <바그다드 카페(1987)>는 몇 해 전 강화도에서 느꼈던 바로 그 순간처럼 세상과는 별개인 듯 조용하고 따뜻한, 그런 영화이다.


눈 오던 날의 강화도 바그다드 카페와는 달리 영화 속의 바그다드 카페는 휘몰아치는 먼지바람으로 늘 입 속에 모래알이 씹힐 것 같은 황량한 곳에 위치해 있다. 심지어 커피머신 하나 없는 바그다드 카페의 이야기는 배경보다도 더 황량한 모습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아주 불행해 보이는 두 여자가 등장한다. 바그다드 카페의 주인이자, 집을 나가버린 무기력한 남편에게 화가 난 흑인 여자 ‘브렌다’. 그리고 남편과 여행길에 싸우다 급기야는 헤어져버린 백인 여인 ‘야스민’.

 

영화는 내내 한 편의 시 같다. 꼭꼭 연필로 눌러쓴 '시(詩)' 말이다. 장면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함축적이고 절제되었지만 그렇다고 현학적이거나 형식에 치중된 것은 결코 아니다. 주인공들이 가진 상처를 따듯하게 보듬어 주고 세련되게 그려낸, 그러나 가볍지만은 않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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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 속에서 처음 마주한 두 여인의 만남은 처음부터 시적이다. 서로 마주친 채로 말 없이 눈물을 닦는 브렌다와 땀을 닦는 야스민의 모습은 한 번의 대화 없이 조용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긴 상징이자 비유이다. 그건 마치 한 단어 한 단어에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 시와 같다. 그녀들이 땀을, 그리고 눈물을 닦는 행위를 바라보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이후에 변화와 치유가 올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변화와 치유는 바그다드 카페의 변화와 대응한다. 이 역시 매우 시적인데, 야스민과 브렌다, 그리고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은 바그다드 카페라는 장소에 대응하여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량한 모습의 바그다드 카페는 야스민의 방문과 함께 서서히 변화한다. 그와 동시에 닫혀있던 브렌다의 마음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데 영화는 오랫동안 닫혀있던 브렌다의 마음이 열리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보여준다. 말 한마디에 쉽게 울고 웃는 영화들과는 좀 다르다. 그러나 그녀들의 더딘 치유와 조용한 회복은 관객들에게 큰 설득력을 준다. 어디 상처 받은 사람 맘이 열리는 게 한 순간일까.


브렌다의 마음이 열렸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장면 역시 말이 없다. 바로 야스민이 마술을 익혀 건넨 장미꽃을 브렌다가 받아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닫혀있던 브렌다의 맘이 열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상처를 극복하려던 야스민의 노력 역시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함축적으로 의미를 담는 장면들이 영화를 더욱 깔끔하고 담백하게 해준다.

 

영화에서 드러난 시적인 요소는 이뿐만 아니라 색(色)의 대비에서도 드러난다. 흑백의 전혀 다른 두 여인이지만 그들은 오히려 서로 섞여 다채로움을 만들어 낸다. 마치 황량하게 보이던 바그다드 카페가 다채로워지는 것처럼. 영화 초반의 황량함은 흑백의 대비를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였지만, 영화 끝 무렵의 다채로움은 흑백을 대비되는 색이 아닌 그저 다채로움 속 한 종류의 색으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다채로운 다름의 미학은 세상의 모든 색을 흑과 백만으로 나누는 갈등의 현실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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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문학의 한 장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감흥·사상 등을 함축적·음률적으로 표현한 글.]


시의 본질엔 음률이 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의 본질에 충실했다. 영화의 시작과 그녀들이 다시 만나는 모습에 깔린 ost는 뜨겁고 황량한 모래바람과 그녀들의 간절함을 공감각적으로 우리에게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축제 역시 다채롭고 신나는 음률로 장식된다. 영상 하나가 근사한 시 한 편이 될 수 있음을 체험한 강렬한 경험이었다.

 

 

[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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