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도시 속 혼재하는 평범한 사랑 [도서]

박상영 작가의 2019년 작 [대도시의 사랑법]
글 입력 2020.07.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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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모두가 ‘소수자’ 의 수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줄곧 의심하곤 했었다.

 

소수라는 개념은 단순히 수가 적은 집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흔히 ‘일반적’으로 분류되는 사회의 보편적인 관념 및 가치관과는 다른 모습을 지닌 자들을 소수자로 정의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묶다 보니 종종 우리가 그들의 머릿수를 소수로 짐작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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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작 ‘대도시의 사랑법’은 자칫하면 편협하게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생각들에 대해 스스로 각성할 있는 기회를 주었다.

 

2019년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통해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책장을 덮고 나서 가장 먼저 심플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작품이다. 성소수자인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사랑하는 대상이 이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적절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한 적절함이란,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모습을 과장해서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종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성소수자의 모습이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조차도 성소수자는 다들 이럴 것이다, 다들 이런 외양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던 시기가 있어서 페이지를 한 장 한 장씩 넘기며 잠재되어있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깨부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서야 영화 <윤희에게>, <캐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및 영국의 드라마 시리즈인 <킬링 이브> 등 동성애 서사를 담은 콘텐츠를 보다 폭넓게 즐길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들이 줄줄이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은 소설은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대도시의 사랑법>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퀴어 남성 본인의 언어로 전달해 들으며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제일 흥미로웠다.

 

얼마 전부터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 코너로 발걸음을 돌리면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이 꽤 상위권에 놓여있는 걸 보았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의 소설들은 대개 ‘현재’를 이야기한다. 현재의 페미니즘 서사, 현재의 성소수자 이야기, 현재의 인간소외 현상 등을 세밀하게 다루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따라서 현실을 반영하는 정도가 꽤 높으면서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상을 과장하여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만 젊은 작가상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 적이 있다.

 

이 소설집도 중간에 퀴어 남성이 사회적으로 갇혀있는 환경 및 편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툭 흘리며 연출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를테면 병원의 직원들이 동성애 커플을 보고 동성애 혐오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듣고도 그저 넘기던 인물들의 모습은 사회적 편견 아래에서 그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있는 억압을 한 번씩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자인 ‘영’은 꽤 자조적이다.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처럼 우울을 관념적으로 표현하지도 않고 애써 소설의 모든 사건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수록된 소설 <재희>에서 ‘영’은 자신의 단짝인 자유분방한 영혼 재희와 동거를 하며 유쾌한 일상을 보내지만 죽어도 결혼만은 안 할 것 같던 재희도 결국 안정을 찾아 결혼하고, 동성애자인 ‘영’은 홀로 남는다.

 

재희의 물건들이 빠져나가고 텅 빈 방에 누워 재희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영’의 모습은 천진난만했던 학생 시절을 추억하는 부쩍 커버린 사회인의 허탈함을 보여주면서도 이성애자 재희와는 달리 결국 홀로 남게 되는 동성애자 ‘영’의 모습을 상반되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영’은 자신의 허탈함을 쥐어짜거나 어딘가에 호소하지 않으며, 묵묵하게 상황을 인식한다.

 

‘영’의 생각과 감정이 어디까지 향해있는지 독자들은 직접적으로 알 순 없지만, 아마 큰 생채기를 입고 나서 조금씩 무던해지는 자신을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영’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화자가 마냥 동성애자인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인식하고 자꾸만 감정적인 모습만 보였다면 나는 ‘영’으로 대표되는 성소수자들의 감정을 함부로 추측하려 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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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을 하고, 누구나 실연의 아픔을 겪는다.

 

사랑의 모습과 실연을 겪는 방식 또한 같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형태가 어떤 성별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는다. 이건 정확한 사실이다. 한데 이 당연한 사랑은 왜 특정 누군가에게는 입 밖으로 당당히 뱉을 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것일까. 인구 900만이 넘는 대도시 서울에서는 ‘이런’ 사랑도 존재한다.

 

사랑의 디폴트값이 이성애가 아니라는 사실, 그 누구나 당당히 사랑을 외칠 수 있고 제 사랑의 방향을 ‘올바르게’가 아닌 ‘올곧게’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박상영 작가는 <대도시의 사랑법>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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