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물넷의 일기 [사람]

자아 :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글 입력 2020.06.3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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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

 

취업을 준비 중인 학생일 수도, 꿈에 한 발짝 나아간 직장인일 수도 있는 나이. 어리다고 하기엔 책임져야 할 게 많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자유롭고 싶은 나이.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때론 울기도, 때론 웃기도, 좌절하기도, 다시 일어서기도 하는 나는 ‘스물넷’이다.

 

 

 

자아의 혼란


 

아이유의 〈스물셋〉이라는 곡이 있다. 스물셋의 아이유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이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대립 구조의 형태가 나타난다.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난,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요

아니, 아니 물기 있는 여자가 될래요

아 정했어요 난 죽은 듯이 살래요

아냐, 다 뒤집어 볼래 맞혀봐

 

 

지금이 좋다고 말하다가 사실은 다 때려 치우고 싶다고 하거나, 죽은 듯이 살겠다고 하지만 결국 다 뒤집어 보겠다 다짐하는 이 가사들은 아이유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보여준다.

 

〈스물셋〉을 처음 접했던 열아홉 당시의 나는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집중해 이 노래를 ‘귀엽고 새침한 곡이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땐 지금처럼 무수히 많은 선택지보다는 단 하나의 선택지, 입시만 바라보고 살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소리에 집중하는 과정보다는 대학이라는 결과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던 그 시절의 내가 자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노래를 온전히 이해했을 리가 만무하다.

 

시간이 지나고 스물셋이 되어서야, 나는 이 곡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곡은 아이유의 스물셋이 아닌 ‘모든’ 스물셋을 이야기하고 있다. 멜로디에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가사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다시 들은 〈스물셋〉은 꼭 나의 이야기 같았다.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겪는 줄만 알았던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이라는 가사 속 상황은 사회생활을 하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고, 난 수수께기 Question 뭐게요 맞춰봐요, 사실은 나도 몰라와 같은 가사는 나도 나를 모르겠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모르겠는 우리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라는 가사는 모순된 욕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꼬집었다는 점에서 나의 흥미를 유발했다. 해당 가사를 앞서 나오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이라는 가사와 함께 보면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가 진실일 때, 나머지 하나 역시 꼭 거짓일 필요는 없다는 전제와 이어진다. 나는 여기서 ‘모순된 욕구’와 ‘모두 진실인 선택지’라는 키워드가 현재 스물넷 나의 고민과 맞아떨어져 책을 읽듯 가사를 정독해나갔다.



 

모순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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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양자택일’이다. A와 B의 선택지 중에서 무조건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쩔 땐 스트레스까지 받는다. 심리 테스트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사람에 따라 선택이 변하는데 무조건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를 인식하게 된 후로, 내가 결정 장애가 아닐까 하고 의심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기보다는 오늘의 선택과 내일의 선택이 바뀌는 나의 모순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스물넷이 된 후 내가 정의한 나는 ‘모순적 인간’이다.

 

어제 싫었던 것이 오늘 좋아지고, 오늘 했던 생각이 내일 변하는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무언가를 확신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난 A 할 거야. 근데 내일 돼서는 B 한다고 할 수도 있고.”

 

‘그런데’라는 말을 자주 쓰던 내가 이젠 정말 ‘그런데’와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앞의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을 이끌 때 쓰는 접속 부사인 ‘그런데’처럼 어제 했던 나의 말과 생각이 오늘 뒤엎어지는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자기모순의 부정적인 의미에 갇혀 지낸 지 몇 달이 지나고서야,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자연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우주가 변하는데 나라고 안 변할게 뭐 있냐고, 어제는 그런 생각을 했고,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라고 말이다.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정신없고 조금은 난해한 듯한 〈스물셋〉이라는 노래가 결국은 나를 찾아가는 길잡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게? 하고 반복해서 묻는 가사가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고,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는 것을 깨닫게 했고, 그 깨달음만으로도 나는 혼란스러운 내면을 잠재울 수 있었다.


*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인간관계라는 것에 ‘나 자신과의 관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 집중한 채 나와의 관계를 소홀히 여길 때가 있다. 그 상황이 반복되어 내 스스로가 나를 힘겹게 할 때, 그때야 우리는 내 안의 나를 마주한다.

 

나 역시 이 같은 상황을 반복했었고, 자존감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힘든 시기를 겪고서야 나와의 관계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은 혼란스러울지라도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에는 내가 한 말과 생각에 매듭짓고, 또 그 말에 책임을 지면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자기모순에 빠뜨렸지만, 그것은 사실 모순된 나의 모습이 아니라 변화하는 나의 모습이다.

 

스물셋이었던 과거도, 스물넷인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스물다섯도 무수한 빈칸들에 답을채우는 도전이 계속되겠지만, 그 속에서 나는 모순된 나의 모습에 자책하기보다는 변화하는 나를 인정하면서 살기로 했다. 수많은 혼동과 갈등 속에서 흔들릴지언정, ‘나’를 잃지 않고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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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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