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구글 포토를 타고 시간 여행 [사람]

글 입력 2020.06.0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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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GB.

 

사진을 많이 찍는 나에게는 넉넉하지 않은 핸드폰 용량이다. 저장 공간이 가득 찰 때마다 구글 포토에 사진을 저장해두고 앨범은 비우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연대기는 구글 포토에 모두 담겨있다.

 

구글 포토는 작년의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려준다. 사진 한 장에 담긴 풍경과 촬영 버튼을 누르고 있을 나까지도 생생하다. 때로는 사진을 찍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순간들도 오늘의 내가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2020년의 나보다 작년의, 재작년의 내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여기 지금의 나는 이리도 흐릿한데, 그건 내가 아직도 사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1년 전 - 2019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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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한 날이다. 발트 3국을 지나 수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

 

허리가 부서지는 줄 알았었지. 버스 정류장에서 나왔지만, 택시 잡는 곳을 찾지 못해 한참을 횡단보도 앞을 서성이다 겨우 택시를 잡아 숙소로 갔었다. 숙소 앞에는 베트남 음식점, 중국 음식점이 즐비해 있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나. 숙소 단지가 큰 탓에 강아지와 산책 중이던 여자분이 우리를 도와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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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깔끔했던 숙소는 무언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모디아노 소설에 나오는 호텔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차갑고, 텅 비고, 소리는 울리는 그런 느낌.

 

짐을 정리하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밀키웨이 초콜릿 바를 발견한 나는 신나서 몇 개씩 장바구니에 담아 넣었고, 컵라면 두어 개도 챙겼다. 친구는 채식을 다짐하고 오이와 토마토 같은 채소들을 담았지. 그리고 숙소에 와서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나? 침대가 높고, 딱딱하고, 차가웠던 기억이 난다.

 

폴란드에서 무얼 했었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르샤바 미술관에 갔던가. 친구와 각자 흩어져서 나는 미술관에, 친구는 쇼팽 박물관에 갔던 것 같다. 친구와 근처 카페에서 다시 만나서 나는 애플 파이에 아이스크림을 올려 먹고 친구는 커피를 마셨다.

 

숙소 근처에서 쌀국수와 맥주로 저녁을 먹었다. 우리 뒤 테이블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고 있었고 모기가 참 많았었다. 쌀국수에는 미처 빼지 못한 고수가 들어있었고, 간간이 씹히는 그 이상한 맛에 인상을 찌푸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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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에는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곧 독일로 떠났었다. 통유리창에 보이던 남색 하늘과 조각달, 미술관 앞에 모여있던 시위대를 보고 놀랐던 마음, 세련되고 깔끔했던 바르샤바의 첫인상…….

 

작년 오늘의 나는 장시간 버스를 타느라 지쳤을 테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집을 찾느라 힘들었을 테다. 물론, 이렇게 밀린 강의를 듣고 있는 나만큼 지치지는 않았을 테지만!

 

 

 

2년 전 - 2018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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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야밤에 한강에 간 날이다. 한강에 가서 라면 먹고 술 먹고 했겠지, 뭐. 연두색 리넨 셔츠를 입고 슬랙스 바지를 입고, 회색 줄무늬 양말을 신었던 것 같다. 이날이 유독 나에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자른 지 얼마 안 되었던 날이고, 마음먹고 화장하지 않고 놀러 나간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화장을 하지 않고 편한 옷을 입는 게 평생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지만 그때의 나는 화장과 코르셋 없이는 자신 있게 외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하철 안전문에 비친 내 모습, 카메라에 찍히는 내 모습이 신기하고 익숙지 않았다.

 

이날의 경험이 아마 나를 코르셋에서 벗어나 살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평생 바꾸는 순간은 그리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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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라면을 끓이고, 술과 음료를 고르고 첫차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던 그 때의 나와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만나기도 힘들고 만나도 서너시간 졸업 후에 무얼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다가 헤어지기 일쑤다.

 

내가 그리운 건 그때의 순간이 아니라 그때의 나일지도 모른다. 사회와 덜 부딪히고 덜 화나고 덜 슬펐던 내가 그리운 것 같다. 누적된 분노와 우울은 자꾸만 나를 과거로 회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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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양말을 신었던 게 맞았다. 평상에 누워 발로 달을 잡아보겠다고 허우적 댔던 기억이 난다.

 


 

오늘 - 2020년 6월 6일


 

내년의 오늘, 내가 바라본 본 올해의 나는 어떨까? 2020년을 살고 있는 나를 2021년의 나는 그리워할까? 아니면 저땐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느낄까? 2020년 6월 6일에는 찍어둔 사진이 없는데 그럼 나는 어떤 기억에 기대어 올해를 떠올릴까 궁금하다. 사진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으려나.

 

사진 여행은 즐겁다. 내가 무수히 많은 나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나에게 어떤 성격을 부여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틀없이 유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막연하고 어둡게만 그려지는 내년과 미래를 기대해보기로 한다.

 

분명히 무언가 달라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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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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