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듯,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음을 [여행]

글 입력 2020.06.05 16: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그녀는 자세를 한번 바꿀 때마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골몰하게 생각한다. 혹은 하나의 자세에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한다. 오늘의 일과 내일의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건강과 세금, 부채, 누군가의 부고, 후회와 수치, 돈이 나오면 꼭 사려고 마음 먹은 것들, 냉장고 속 식품의 유통기한...... 그주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하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 김애란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원체 생각이 많은 나는 또다시 내 생각들을 생각들 통해 카테고리화하고는 한다. 그렇게 정리한 생각 뭉치 중 하나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1년 전 이맘때는 무엇을 했나’ 정도가 될 것이다. 작년 6월의 나는 기말고사를 대비하고, 팀플 발표를 준비하며 ‘종강’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의식들을 거행하는 중이었다. 묵묵히 ‘학생’의 소임을 다한 내게 일종의 보상으로 해외 학교에서 계절학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2달간 토익을 공부하고, 또 2달 간 만반의 준비를 한 결과 나는 7월 한 달 동안 생애 최초의 해외 여행을 혼자서 떠날 수 있었다. ‘최초’와 ‘혼자’라는 전제 조건이 붙었을 때 모든 경험들이 한층 더 특수해지고 당사자에게는 애틋해지게 마련이다.

 

7월이 가까워질수록, 또 방안에 틀어박혀 있을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바르샤바와 베를린과 프라하에서의 추억이다. 그 추억의 대부분은 여행자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동안 유럽에서는 특히 드물었던 검은 머리로 그곳의 뙤약볕을 몽땅 흡수했던 일이다. 이렇게 기억을 유발하는 것이 ‘햇볕’이기 때문에 태양의 기세가 날로 강해지는 요즘, 창밖만 보면 머릿속의 달력은 자꾸 7월로 돌아가버린다.

 

그러나 지켜나가야 할 꾸준한 일상이 있다. 몇 번의 실험을 거쳐본 결과 ‘더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고, 어쩔 수 없이 이따금씩 시간을 비우고 여행에서 가져왔던 티켓과 브로슈어를 들춰보거나 여행에 관련된 책과 영상들을 보는 것으로 나 자신과 합의를 봤다. 일종의 회유책인 셈이다. 출간이 된 지 1년이 지난 지금에야 ‘베스트셀러’였던 <여행의 이유>를 읽기 시작한 이유였다. <여행의 이유>에서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 좌절,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나 역시도 여행에서 잊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가 있고 며칠이 흐른 뒤에야 ‘아!’ 하는 외침이 내 머릿속의 작은 종을 댕~ 하고 울렸다. 그 ‘아!’하는 외침은 베를린의 한 카페에서 일기를 쓰다가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듯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캡처.JPG
이미지 출처: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

 

 

처음 해외에 가는 여행자가 갖춰야 할 태도는 단연 ‘유비무환’이었다. 엑셀 차트에 그날그날 가야 하는 곳의 동선과 시간과 식당, 심지어는 먹어보고 싶은 후식까지 요목조목 따져서 상세하게 적어 놓았었고, 매일 잠이 들기 전에는 그 계획들을 복기하며 ‘완벽하게 즐거울’ 다음날을 마음이 벅찰 정도로 기대했다. 일종의 무늬처럼 보일정도로 낯선 글자들의 낯선 조합과, 낯선 목소리가 내뱉는 낯선 말소리, 낯선 보도블럭의 낯선 건물 모양새. TV가 없었더라면 마치 외계라고 인식했을 지도 모를 만큼 생경한 시공간에서 긴장이 바짝 들어 얼마간은 틀에 박힌 모든 계획을 ‘미션 클리어!’ 를 했었다.

 

그러나 7월 하반기, 한창 여름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가 으레 그렇듯 태양은 햇살을 오래된 돌길에 내리꽂았다. 필요 이상의 햇살은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당시 여행 계획표를 보면 하루에 한번꼴로 미술관에 들렀었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미술관을 섭렵했던 것은 물론 이런저런 전시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오후가 되면 도저히 야외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땀을 식히고 한숨 돌리기에는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늘 서늘하고 건조한 미술관이 제격이었다.


베를린을 떠나기 전 날, 오랜만에 휴식이 아니라 감상을 목적으로 미술관에 갈 계획이었다. 반질반질한 코팅지에 인쇄된 채로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인상주의 작품들은 학창 시절 줄곧 나에게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선사했다. 한 번도 대한민국 밖을 나서본 적이 없으며 아이팟을 손에서 놓지 않는 중학생이었지만 인상주의 작품들을 볼 때면,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 구국립미술관에 인상주의 회화 작품들이 몇 점 있다는 사실을 가이드북에서 읽고 난 뒤 지금 나에게 ‘어딘가 돌아갈 곳’은 그 미술관이라고 확신했으며, 베를린을 떠나기 전 반드시 그 곳에서 실물을 봐야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그 곳에 가지 못했다. 당연히 그림도 보지 못했다. 참 어이없고, 우습게도 다른 박물관의 건물을 구국립미술관 건물으로 착각하고 만 것이다. 구국립미술관이 위치한 곳은 ‘박물관 섬’으로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다섯 곳의 박물관이 밀집해있는 일종의 박물관 지구였다. 만들어뒀던 엑셀 차트가 부끄러울 정도로 어이없는 실수의 이유를 따져보자면 한국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박물관 섬’에 위치한, ‘유럽식’으로 통칭되는 건물은 다 비슷비슷해보였던 게 아닐지.


또 그 날도 어김없이 내 정신을 혼돈하게 만들었던 강렬한 뙤약볕의 농간 역시 애먼 박물관 -내가 구국립미술관이라고 착각한 곳은 보데 박물관이었다- 에서 3~4 시간 동안 조각 작품과 특별 전시 중이었던 동전들 사이에서 인상주의 작품을 찾아 헤맸던 이유 중 하나일 테다. 박물관 폐장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마지막 전시실에서 아프리카 미술 작품까지 샅샅이 뒤진 뒤에야 내가 베를린의 마지막 날을 날려버렸음을 깨달았다.


 

bode-museum-1729255_1920.jpg
잘못 찾아간 보데 박물관의 사진이다.

 

 

거대한 아프리카 가면 앞의 벤치에 한동안 울적한 기분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동안 한치의 오차도 없이 클리어해왔던 계획이 어긋나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어떻게 좋은 것만 하고 사냐고 엄마는 늘 그랬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건 최대한 안 하면서 살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거 참 어려운 거다. 이것 봐라. 독일에서 하루 한 번씩은 기분 잡치고 있지 않은가. (...) 좋아할 만한 거 하기로 바빠 죽겠는데 계속 애매한 걸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행까지 와서 스스로를 최대치의 행복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

 

- 2019년 7월 24일자 일기

 

 

일상에서 계획이 틀어지는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그저 성가신 일이었지만,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을 들이고도 스스로에게 '낭비'가 아니라는 조건 하에 유희를 허가해주는 아량을 베품으로써 주어지는 귀중한 여행에서 이러한 오차는 과연 충격이었다. 행복에 대한 강박이 강해질 수록 행복하지 못한 순간에는 더 좌절스러워지기 마련이라는 것이 여행의 이중성이었다.

 

흔히들 여행지에서 더 관대해진다고 말한다. 여행지에서 놀고 먹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관대함은 일종의 방어 기제로서 여행자가 갖추는 일반적인 태도로 자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낯선 시공간을 걷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확률은 더 높아지고, 그 일은 대개 난감하게 마련이며, 행복과 즐거움을 전제한 상황에서 불청객처럼 들이닥친 불행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사건 이후의 일정을 망치지 않고 남은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부러 ‘관용’의 태도를 지니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여행자의 자세인 것이다.


그러나 여행의 사전에는 긍정적인 정의만 있지 않다는 것을 최초로 체득한 초보 여행자에게 ‘관용’은 어려웠다. 물론 나에게는 다음날 오전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실수로 인해 계획을 수정할 용기는 나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베를린을 떠났다.


그 다음 여행지인 프라하에서,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랑해마지 않지만 정작 나는 이름밖에 몰랐던 자코메티의 전시를 보러 가기로 계획했다. 이 계획은 완전한 자의라기보다 어느 정도 무지에 대한 열등감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모두가 현대 조각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거장이라 말하지만 정작 나는 그에 대해 한 마디도 보탤 수 없다는 사실에 남몰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프라하에서 최초로 ‘자코메티 개인전’이 열리는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한 전시에 폭 빠져 몇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비로소 새로운 취향의 문이 하나 열렸음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알지도 못했던 ‘현대 조각’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탁 트였던 그 날이 바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전시를 본 그 날이었다. 무언가를 반드시 배워가야겠다는 의지보다 도움되었던 것은 보데 박물관에서 인상주의 작품을 찾아 헤매는 동안 틈틈이 눈에 담아뒀던 아프리카 미술 작품이었다. 내가 시간을 날렸다며 한탄스러워했던 실수의 경험은, 미술관에서 보낸 서너 시간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길 나의 남은 인생동안 예술의 일면을 달리 볼 수 있도록 개안케 한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듯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수없이 포착할 수 있으며, 이미 스스로도 깨닫고 남의 경우를 빌려 멀리서 깨달았을 이 간단한 생의 원리가 나에게 이제야 선명히 다가온 이유는 그 깨달음의 배경이 아주 비일상적인 곳, 여행지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여지껏 가족과 함께 다녀온 왁자지껄한 1박 2일 내지는 2박 3일의 여행에은 즐거웠지만 인생을 관통할 만한 교훈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꽤 우습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늘 부모님의 계획에 맞춰 연륜으로 발견한 맛집에서 맛있고 비싼 음식을 먹고 즐기다 왔던, 여행자보다 부모의 여행에 동참한 ‘어린 자녀’의 위치에 가까웠던 내가 여행자의 삶을 잠깐이나마 살다보니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주장에 담긴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경험의 강도가 어떻든 누구나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인생사 새옹지마'이다. 그 보편성 때문에 이 깨달음이 새삼 놀랍다거나 기특하지도 않다. 그러나 내 인생의 본계정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의 21년 동안 이 원리를 옅은 강도로 느른하게 알아갔다면, 동유럽 부근에서 완전히 다른 신분으로 부여받은 한 달짜리 삶에서는 그 사흘 동안 집약적으로 깨우친 것이다. 짧은 기간 밀도 높은 깨달음은 분명 효력이 달랐고, 지금도 '좋은 게 좋은 것만이 아니듯,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는 당장 좌절스러운 나에게 꽤 믿음직스러운 위로를 선사해주는 중요한 문장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의 위치가 격상된 것처럼, 이미 알고 있지만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여러 삶의 원리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줄 언젠가의 여행들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는 꼭 실현 가능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은 삶을 한층 더 활기차게 해주게 마련이다.


 

후보 사진 1.jpg

 

 

비교적 최근에 첫 여행을 무사히 마친 사람이라면 나의 경험에 공감하며 읽을 것이고, 오래 불확실에 대처하는 데에 숙달이 된 프로 여행가라면 별 것도 아닌 일을 글로 풀어내는 이 여행 애송이의 초보 티에 피식 웃음을 지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흔하디 흔한 경험을 가지고 이 글까지 쓰게 된 것은 앞으로 여행자가 될 이들을 위해서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행의 수요는 급감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축된 여행에 대한 모두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될 것 같다는 게 요즘 나의 생각이다.

 

여행자의 지위에 오르게 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불행을 겪을 것이다. 악담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그 불행은 실수로 옷을 잘못 집어 입은 행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이 글을 보태고 싶을 뿐이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당신의 여행을 언제나 응원하고 싶다는 얘기이다.

 

 

 

우제영.jpg

 




[우제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37768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