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시절 멜로가 전하는 사연 하나, 미수와 현우의 이야기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을 보고
글 입력 2020.06.0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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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카세트 플레이어, 다이얼 전화기….


90년대를 상징하는 물건들은 곧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90년대 추억에 발 걸치고 있는 스물넷의 나에게 레트로 감성은 낯선 드라마 속 이야기 같기도, 익숙한 사진첩 같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그 시절 추억의 물건들을 볼 때면 ‘이런 게 있었어?’ 하는 놀라움과 ‘이거 알아. 우리집에도 있었어.’ 하는 친숙함 사이에서 자란 나는 언젠가부터 이 레트로 감성에 빠져들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이고,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를 찾아 나서는 프로그램 ‘슈가맨’, 플레이리스트를 꽉 채운 ‘토이’, ‘김동률’, ‘015B’ 등의 노래까지 나의 작은 한구석에는 어느새 90년대 추억이 자리하고 있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것에는 ‘라디오’도 빼놓을 수 없다. 꾹꾹 눌러쓴 글씨로 사연을 보내고, 내 사연이 불릴 때의 짜릿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엽서를 쓰고 라디오국에 보내기까지 며칠이 걸리던 과거와 실시간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현재를 비교하면 생활도, 문화도, 물건도 많이 변했지만, 사연을 기다리는 설렘 하나는 여전히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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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가수 유열이 ‘음악앨범’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네 모습과는 조금 다른, 쉽게 닿지 못하기에 더 간절한 설렘을 말하고 있는 영화는 짧지만 확실하게 그 시절의 감성을 데려왔다.

 

 

 

우연이 필연이 되고


 


"오늘 기적이 일어났어요."


1994년 가수 유열이 라디오 DJ를 처음 진행하던 날, 엄마가 남겨준 빵집에서 일하던 미수(김고은)는 우연히 찾아온 현우(정해인)를 만나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연락이 끊기게 된다.

 

"그때, 나는 네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기다렸는데…"

 

다시 기적처럼 마주친 두 사람은 설렘과 애틋함 사이에서 마음을 키워 가지만 서로의 상황과 시간은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계속되는 엇갈림 속에서도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과 함께 우연과 필연을 반복하는 두 사람…

 

함께 듣던 라디오처럼 그들은 서로의 주파수를 맞출 수 있을까?


「유열의 음악앨범」 시놉시스


 

미수와 현우의 첫 만남은 미수네 빵집에서였다. 조금은 불량스러워 보이는 모습으로 빵집을 찾은 현우와 그를 불편해하는 미수.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빵집의 아르바이트생이 된 현우는 미수와 차츰 가까워지지만, 현우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첫 번째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만남을 맞이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였다. 내일이면 군대로 향하는 현우의 상황 탓에 미수는 연락망으로 현우의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그에게 건넨다. 하지만 현우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미수의 실수로 그들은 또다시 기약 없는 두 번째 이별을 맞이한다.


현우가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둘은 겨우 연락이 닿지만,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고 무너진다. 이번에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락이 끊긴 두 사람이었다.

 

미수가 새로운 직장을 얻고, 현우 또한 사회에 발 디딘 청년이 되었을 때, 둘은 각자의 사무실이 위치한 같은 건물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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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연히 만나네, 우린.”


몇 번째 이별이고, 몇 번째 만남인지도 모를 속절없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결국 다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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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리움의 장벽은 허물어지고 그들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멀리 떨어져 있던 몸의 시간은 항상 잠재해있던 마음의 시간을 뛰어넘지 못했다.


여러 번의 우연 속에서 그들은 인연이라는 필연을 만들어 나갔고, 그것은 곧 운명이 되었다.




잔잔한 그 시절의 멜로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제목이 가져온 라디오 감성과 예고편이 보여준 90년대 향수 때문일까. 건축학개론과 같은 90년대 배경의 영화를 기대했던 것에 비해 영화는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한 장면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뒤로하고, 1994년부터 2005년까지의 시간의 흐름에 조용히 마음을 맡기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편안해졌다. 큰 갈등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가 지루할 만도 하지만, 오히려 그 잔잔한 흐름이 멜로의 세심한 감성에 집중할 수 있게 했고, 캐릭터의 감정에 온전히 이입할 수 있게 했다. 영화 중간중간 ‘라디오’라는 매개체를 살려 변화하는 시대의 특성을 반영하려 했다는 점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따금 개연성이 없어 관람객에게 설명이 필요했다는 관람평도 있었지만,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려 하기보다 시간의 공백이 주는 의미를 상상함으로써 영화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것도 관람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눅눅한 이 영화는 반복된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심화된 주인공들의 감정을 애틋하게 담아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시간과 사람과 추억, 그리고 사랑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누구나 내 안의 작은 한 켠에 멜로 영화 한 편을 간직하고 사는 이유이자, 모든 멜로 영화가 전하는 엽서라고 생각한다.


*


자극적인 주제, 강렬한 장면, 스펙터클한 액션이 흥행하는 영화 시장에서 30초 정도 데운 뜨뜻미지근한 우유의 느낌이 나는 멜로는 큰 파급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멜로 영화는 어느샌가 우리를 따스한 기억 저편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그 기억 속 온기로 우리를 감싸 안아준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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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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