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치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환상의 마로나 [영화]

난 너와 함께라면 최고로 행복해
글 입력 2020.06.0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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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같은 영화를 만났다. 영화가 시작하고서 머지않아 깨달았다.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리라는 걸. 흘러가는 매 장면 장면이 반짝거렸고, 눈앞에 펼쳐지는 몽환적인 풍경과 그에 걸맞은 음악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긴 꿈에서 깨어난 듯 기분이 몽롱했다. 행복이란 게, 아름다움이라는 게 실체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싶을 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이야기를 만났다.

 

 


세 명의 주인, 네 개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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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강아지 마로나의 삶을 담았다. 마로나는 비록 엄마와 형제와 헤어져 혼자가 되었지만, 얼마 뒤 새로운 주인을 만난다. 첫 번째 주인은 바로 '마놀'. 긴 팔다리로 엄청난 묘기 실력을 뽐내며 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을 하는 곡예사다.

 

마놀은 마로나를 '안나'라고 부르며 여러 장난감과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한다. 사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아홉'이지만, 주인이 원한다면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든지 괜찮다. ('마로나'는 세 번째 주인 솔랑주가 지어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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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때마다 자신을 데리고 다니며 간식도 살뜰히 챙겨주는 다정한 주인에게 마로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잠들기 전 그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다 스르르 잠이 들면, 마로나는 이불을 덮어주고 곁에 머물며 그를 지킨다.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다가올 이별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놀은 어느 공연 극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지만 마로나를 위해 고민 끝에 거절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놀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마로나는 자신 때문에 그가 꿈을 저버리는 걸 원하지 않았고, 어느 고요한 밤 그의 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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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의 곁을 떠나 밤거리를 헤맨 지 얼마쯤 되었을까. 마로나의 앞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바로 건설업자 이스트반. 쓰레기통에 머물던 마로나에게 먹이를 주며 살뜰히 보살핀다. 마로나는 그가 자신의 주인이 될 것임을 예감한다. 마로나는 이제 '안나'가 아닌 '사라'가 되었다. 둘은 행복한 순간을 함께한다.

 

시간이 흘러 서로가 익숙해진 나머지 종종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주인이지만, 마로나는 그를 이해한다. 그저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 기쁠 뿐이다.


마로나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해한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주인의 얼굴을 핥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 주인과 싱그럽게 웃는다.

 

평소와 다름없이 이스트반과 공놀이를 하는 마로나. 슬프게도 마로나는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이별의 냄새를 맡는다.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마로나는 더 씩씩하고 활기차게 달려가 공을 잡는다. 주인의 웃는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몇십 번이고 공을 잡으러 뛰어다닐 수 있기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온전히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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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는 얼마 뒤 솔랑주를 만난다.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소녀는 엄마와 할아버지를 힘들게 설득해 마로나를 집에서 키우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주인과의 행복한 시간이 시작됐다.

 

늘 그렇듯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솔랑주는 이제 친구와의 시간이 더 좋은 사춘기 소녀다. 마로나는 안중에도 없고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기 바쁘다.

 

해맑게 웃으며 자신과 놀아주던 소녀는 이제 없지만, 마로나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녀와 함께한 행복했던 시간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변함없이 빛나고 있기에, 매 순간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마치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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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개에게 행복이란 인간과 반대다.

지금 그대로가 제일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완벽한 순간이다."

 


마로나는 말한다. 행복은 절망으로 가는 징검다리 같은 거라고. 만남과 기쁨의 순간이 있다면 어김없이 슬픈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걸 그녀는 안다. 그렇기에 슬퍼하기보단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더 충실히 살아내려 애쓴다. 슬퍼하기에는 생이 너무도 짧기 때문이다. 그녀는 안나, 사라, 마로나로 불리며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어쩌면 삶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그 어느 무엇도 영원하지 않은데,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걸 원한다. 더 많은 돈, 더 넓은 집, 더 좋은 물건, 더 나은 사람, 더 멋진 삶... 욕심은 끝이 없고 '꿈'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다 불행에 늪에 빠진다. 남과 끝없이 비교하고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 모든 게 후회스럽고 행복은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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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는 인간의 1/8에 불과한 짧은 생을 살아가지만,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녀에게 행복이란 맛있는 간식과 주인과 공놀이를 하는 시간이다. 주인의 곁에 누워 잠에 들고 풀냄새를 한껏 맡으며 산책을 할 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행복은 이렇게 소소한 것들인데, 우리는 왜 기뻐하지 못했을까.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덧없는 욕심만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즐기며 감사해하는 자세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행복은 어느 곳에나 있다. 빛나는 눈으로 삶에 감사해하고 행복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인생을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완벽한 순간이야, 난 너와 함께라면 최고로 행복해." 라고 말하던 마로나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해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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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마로나

- Marona's Fantastic Tale -

 

 

감독 : 안카 다미안

 

주연

리지 브로체르

브루노 살로몬, 티에리 한시스


개봉

2020년 06월 11일


상영시간 : 9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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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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