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요계를 더럽힌 댄스 음악 Part.2 - 덕후씨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5.1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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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Opinion] 가요계를 더럽힌 댄스 음악 Part.1 - 아이돌 음악, 편견과 혐오의 시선 [문화 전반] 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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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코스프레’의 줄임말, 이하 ‘일코’. 아이돌 가수의 팬에게 ‘나 일코 중이야’라는 문장은, 학교나 일터에서는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숨기고 산다는 의미로 통한다. 아이돌 가수의 팬이 빠순이나 빠돌이 같은 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것이 꽤 오래전의 일이니, 팬과 일코가 함께해온 역사 또한 짧지 않을 테다. 이글에서는, 아이돌 음악과 함께 편견과 혐오의 대상으로 존재해왔던 향유자들, 즉 우리가 아이돌 문화의 팬을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혐오를 말한다.

나의 경우엔 학교나 학과 내에서 손에 꼽히는 아이돌 덕후로 불리면 불렸지, 일코를 해본 적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하지 않은 것이 반, 하지 못한 것이 반이었다. 어디선가 무례한 말을 듣고 오는 날엔 ‘이래서 다들 일코를 하는 거구나’ 생각하면서도, 반항심 비슷한 마음이 들어 SNS 프로필을 괜히 아이돌로 도배했고 한편으로는 ‘주접’이라는 애정표현을 사랑하는 나는 어차피 일코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 또한 알았다. 그러나 일코를 둔 고민들의 끝은 매번 비슷했다. ‘일코, 안 할 수는 없을까?’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 건, 단어에 반영된 혐오의 시선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덕후’라는 개념은 대개 ‘B급 문화를 향유하는 B급 정서들’ 정도로 취급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과 분위기가 반영된 단어인 일코에 따르면, ‘비일반인’인 덕후는 덕후라는 정체성을 지울 때 비로소 ‘일반인’으로 통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덕후들은 비일반인으로 배제되지 않기 위해 그들의 소중한 취향을 숨기고 살아간다. 일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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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아이돌 문화를 향유하는 덕후에게는 주로 다음과 같은 형용사가 붙는다. ‘미숙한’, ‘철없는’ 또는 ‘한심한’.

학창시절엔 한 달에 5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았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이 대부분인 생활이었기에 부족함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생활비가 빠듯해지거나 모자라게 되는 때는,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앨범이 발매되거나 콘서트가 있을 때가 전부였다. 그럴 땐 덜 먹고 덜 입으면서 앨범을 샀고 콘서트에 갔다. 지금도 내심 뿌듯하게 여기는 과거인데, 당시엔 주위로부터 부모님 등골에 대한 참견을 들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는 직접 번 돈으로 앨범을 샀고 콘서트에 갔다. 하지만 역시나 무례한 말들을 들어야 했다. 스물하고도 몇 되지 않는 내 나이가 언급되면서 ‘애들도 아니고’ ‘차라리 적금을 들거나 자신에게 투자하라’라는 참견을 들었다. 이쯤 되면 나이를 핑계 삼아 ‘아이돌에 쓰는 돈이 아깝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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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가수의 팬은 대개 폭력적이고 무성의한 방식으로 명명된다.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이름은 빠순이라는 멸칭 또는 거대한 팬덤으로 뭉뚱그려진 이름, 두 가지 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분명한 구체성을 띠는 팬 개개인의 서사와 감정들은 자주 생략되어 왔다. 새 앨범의 비닐을 벗겨보는 순간의 두근거림, 막차를 타고 콘서트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여운은 대개 방구석에 갇히거나 덕후 공동체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외부로 공유된다.

그러나 아이돌 가수의 팬이 ‘수동적인 소비자’ 정도로만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구심이 들 만큼, 그들은 ‘덕질하는 나’의 행복을 주체적인 방식으로 또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과거 아이돌 산업 규모가 작았던 초기의 팬덤 문화는 힘이 없었으며, 그리하여 소비자면서도 을의 위치에 놓였다. ‘가수 있는 곳에 팬이 따라가는’ 형태로 향유의 방식이 단일화되어있던 시대였다.

그리고, 과거와 대비되는 가장 큰 변화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향유방식으로의 변화다. 이제 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소비를 결정한다. 나아가 아티스트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공간을 구축하면서 덕질 주체로서의 행복까지 추구하는 팬덤 문화를 이룩했다. ‘가수 없는 곳에도 팬이 있다’라는 문장이 가능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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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팬덤 문화의 주체적인 방식이 돋보이는 문화는 바로 ‘생일 문화’다. 그들은 응원하는 스타의 생일이 일 년에 한 번씩, 매년 돌아올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생일을 축하한다. 지하철역을 오가며 한 번쯤은 보았을 전광판 광고부터 버스 쉘터나 버스 자체에 걸리는 광고까지, 팬들은 가수에게 의미 있는 장소(소속사가 위치한 곳이나 가수의 본집 지역)마저도 세심하게 고려하여 광고를 건다. 최근에 와서는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의 광고를 통해, 해외의 팬들도 함께 축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생일 당일이 포함된 사흘 정도의 기간 동안엔 카페를 빌려 팬들이 함께 축하하는 공간을 만든다. 물론 아티스트는 없다. 이벤트 기간에는 카페의 음악부터 메뉴까지 특별하게 바뀐다. 액자와 현수막을 카페 곳곳에 걸어두고 빔프로젝터로 영상을 재생하는 등 카페 내부를 다채롭게 꾸민다. 스타의 생일이 내게도 특별한 날이 되는, 능동적이고 또 주체적인 향유형태의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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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를 통해 꽤 자주 접하는 ‘팬덤 기부 문화’도 있다. 팬덤 기부 문화는 그룹 신화의 팬클럽 신화창조가 2007년, 멤버 신혜성의 솔로 콘서트에 꽃화환 대신 쌀화환을 보냄으로써 시작된 ‘쌀화환 문화’가 대표적인 형태다. 쌀화환 문화는 연탄화환, 계란화환 등으로 빠르게 응용되었고, 현재는 가수의 이름을 건 숲을 조성하는 형태나 복지재단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형태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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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와 팬이 공유하는 감정을 부르는 이름은 몇 없다. 하지만 수천 명의 관객이 모인 콘서트장엔 수천 개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개별적이고 또 소중한 서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존중하려는 노력을 가할 때, 뭉뚱그려졌던 감정들은 구체적인 이름을 갖게 된다. 응원이면서 애정인, 고마움이면서 미안함인, 공감이면서 위로인 많은 감정들.

나아가 에둘러 말하지 않고,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K-POP과 아이돌을 애정해 온 시간이 짧지 않았지만, 이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게 된 건 며칠 전의 이야기다. 너무나도 많이 돌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돌 문화의 향유가 취미 이상의 진지한 향유로 이어지는 것을 알게 모르게 검열해왔고, 감정은 쉽게 소비시켰으며 ‘응원’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많은 것을 가뒀다. 그리고 아티스트와 팬이 다양한 감정을 공유하고 따로 또 같이 많은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장면을 보았던 어느 날 생각했다. 사랑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고.

무대에서의 주인공은 언제나 스타였으며, 팬은 언제나 서사를 부여받지 못했다. 하지만 무대 위의 가수도, 무대 아래의 팬도 알고 있다. 완성된 무대엔 가수와 팬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게 바란다. 조금 더 '나'의 서사에 귀 기울여줄 수 있기를. 그보다 먼저는 세상에게 바란다. 수많은 '나들'이 우리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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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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