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도 그랬었지 [사람]

글 입력 2020.05.0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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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 미생maxresdefault.jpg

 


아침엔 본능을 거스르고 밤엔 본능을 따르는 생활 중이다. ‘더 자야지’ 하며 눈을 뜨지 못하는 본능을 애써 알람 소리로 이기고, ‘더 자야지’ 라고 할 것 없이 눈이 감기는 본능을 소리없이 잘 따르는 편이다. 출근과 퇴근이라는 제도가 만든, 어떤 틀에 갇힌 삶을 요즘 살고 있다.

 

출근과 퇴근, 그리고 회사. 비교적 학생 신분보단 자유롭지 않은 인턴 생활을 해내는 동안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 자발적으로 그 비자유에 뛰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 쏟는 에너지만큼이나 어딘가에서는 아껴주어야만 할 것 같아서, 일과 일 외의 것들을 잘 분류해 두었더니 결국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왕성하게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들. 그동안 내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던 시간은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출퇴근 시간이나, 일정이 텅텅 빈 여유로운 주말, 온전히 누리는 새벽 시간이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출퇴근 길에는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고, 즉흥적인 일정으로 텅 빈 하루를 채우는 주말을 보냈고,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조용한 새벽을 오롯이 홀로 보내면서, 나는 나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나는 에너지를 아끼는 일로 나의 자유를 잃게 되었다. 출퇴근 길엔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눈을 감거나 당장 앞의 핸드폰을 들여다 보기. 여유로운 주말은 평일동안 챙기지 못했던 일을 하며 또 다시 돌아올 평일을 준비하는 정도로 보내기. 가장 좋아하던 새벽시간도 내일의 에너지를 위해 잘 자두기.

 

그리고 그렇게, 투박해졌다. 매일 보던 글은 피로로 다가왔고, 읽거나 보는 일이 없으니 쓸 일도 드물었다. 요 며칠간 이어진 좋은 날씨에도 내게 정해져 있는 길로만 걸을 수 있는 처지였다. 언제든 갓길로 빠질 수 있는, 마음껏 읽고 쓰며 사유하는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말했다.

 

“나도 그랬었지”

 

*

 

어느 때와 다름없는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하지만 또 어느 때와 다름없는 식사를 하고 싶지는 않아서, 동료분들을 회사로부터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가게로 이끌었다. 간간한 음식말고 삼삼한 음식이 먹고 싶었고, 또 옆 테이블의 손님이 휙휙 바뀌는, 테이블의 회전이 빠른 곳보다 도란도란 각자 이야기를 나누며 앉은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는 곳. 브런치 카페였다.

 

바뀐 공간이 많은 것을 바꾸어 주었다. 다닥 다닥 붙어있는 직장인 전용 식당에서 널찍하고 여유 있는 브런치 카페로 오니,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더 넓고 깊숙하게 할 수 있었다.

 

갓 두 달 된 인턴 생활에서,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인턴으로서 일의 기쁨과 슬픔(최근 읽은 책이기도 하다), 앞으론 어떤 일을 바라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왜.. 등등등. 어쩌다보니 동료분들의 질문공세로 시작해 나의 방백으로 배를 채우게 된 점심시간이 되었다.

 

일, 꿈, 미래, 목표.. 그동안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들이었지만, 다행히도 흩어져 있던 생각들과 고민들이 완성된 퍼즐처럼 잘 맞춰져 이야기가 되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애써 말로 뱉으려는 노력이, 다짐이 되어 내게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밥 먹는 데에 일단 열중하며 가장 에너지를 아낄 점심시간이었겠지만, 생각하고 말하고 정리하는 일이 그렇게 힘도 신도 날 줄이야.

 

휴, 그렇게 이야기와 식사가 한꺼번에 끝난 순간 들린 한 마디

 

“나도 그랬었지”

 

나보다 10년은 넘게 직장생활을 해오신 동료분의 목소리였다.

 

*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 길, “저도 요즘 ‘나도 그랬었다’라는 말 자주 해요.”라는 말은 ‘이제 다른 일을 좀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라는 대답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방송국 PD를 꿈꿨던 그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고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꿈 꾼 PD 였지만 재능이 없었고, 결과적으론 회계를 업으로 삼게 된 그녀였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지금 내 나이가, 그걸 아는 내가 부럽다고.

 

근데 사실은 그녀도 지금 하고 싶고, 꿈꾸는 삶이 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단지 잊고 살았을 뿐.

 

‘맞아. 결국은 나이가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랬었지”라며 예전의 자신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 그녀와 나를 보며, 아, 조금 더 붙들고 살아야지. 조금 더 부단하게 매일을 잡고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랬었지' 말고, 나도, ‘나도!’라고 나중에도 이야기 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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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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