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 가족 [영화]

가족이어도 어쩔 수 없는 거리와 상처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4.0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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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 가족


 

대체로 가족과 싸우는 이유는 사소하다. 작은 말 한 마디에서 시작한다. 타인에게는 그렇게 화 안 내고 너그러운 내가, 가족에게만큼은 유달리 발화점이 낮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나 이제부터 운동하려고"

"운동? 체력도 하나 없잖아."

"엄마는 왜 내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식으로 단정 지어?"

"뭘? 가족인데 이정도 말도 못하니?"



가족인데 이정도도 못하냐는 말은 끊임없이 나와 엄마의 거리를 상기시켰다. 엄마는 '가족이니까' 나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했고 나는 '가족이어도' 거리는 두고 싶었다. 너무 가까워지면 상처 받는 관계들이 있다.

 

가족 중에 엄마를 가장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말이면 다 맞는 줄 알았고 모르는 일이 있으면 엄마부터 찾았다. 어쩌면 엄마는 그당시 내 안에서 신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선하고 베풀 줄 알고 언제나 맞는 말만 하는, 때로는 단죄를 내리기도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에게서 거리감을 느끼게 된 건 성소수자에 대한 엄마의 반응 때문이었다.

 

"왜 튀지 못해서 안달일까"

 

짧게 머리를 자른 여자 아이들을 보고 엄마는 혀를 찼다. 내가 아는 레즈비언 친구도 그 무리 중 하나였다. 그뒤로 엄마가 하는 말 하나 하나가 다 거슬렸다. 여자애가 좀 꾸며라, 옆집 아저씨가 마누라를 팼다더라, 뒷집 아줌마가 종교에 빠졌다더라.

 

무조건적 믿음을 배제하고 보니 엄마는 적당히 약하고, 그만큼 악한 사람이었다. 남의 불행에 대해 떠들면서 엄마의 불행을 조금이나마 잊으려 했다. 엄마의 말버릇은 '그래도 우리집은 그 지경은 아니라서 다행이지 않니'였다. 나는 매번 '우리집은 더하잖아요'라고 튀어나오는 대답을 꾹꾹 눌러야 했다. 어느새 엄마에게 나는 대답하지 않는 딸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아픔을 모른 척 하는 무정한 딸.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대학에 들어가자 엄마와 물리적 거리가 생겼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본가에 가지 않았고 겨우 명절에나 잠깐 들리는 손님이 됐다. 갈 때마다 집 곳곳은 내가 모르는 것들이 생겨났다. 전기 파리채, 윗몸일으키기 운동기구, 인덕션 등 낯선 물건들이 자리잡고 있을 때마다 나보다 그것들이 더 오래 이 집에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간 본가에서 엄마는 내게 웃으며 비수를 꽂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말들이었다. 공부 잘하고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오빠와는 달리 불안정한 길을 가는 내 모습이 영 마뜩찮다는 엄마의 반응에 공감했다. 다만, 자괴감과 열등감, 자책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작은 밥상머리 대화는 항상 서늘한 공기로 마무리 되었다. 가족이기에 사랑하지만, 가족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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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10여 년 전 바다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다 죽은 형 준페이의 기일에 맞춰 새로운 아내와 함께 본가에 가는 이야기다. 가족과 함께 1박 2일간 머무르며 그들은 의도치 않게 서로의 비정함, 상처를 들여다 보게 된다.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은 말하지 않으면 마치 명절 같은 분위기다. 옥수수를 튀겨 먹고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뛰어 논다. 다만 언뜻 언뜻 비치는 가족들의 약하고 악한 모습이 그들이 여전히 그 시간을 걷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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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페이가 구한 청년이 매 년 기일마다 찾아오는 게 불편해 보이자, 동생 료타는 엄마에게 이제 그 청년 그만 와도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오랜시간 묵혀 왔던 가슴 속 어둠을 슬며시 아들에게 내비춘다. 아들을 죽였으니 이 정도 벌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벌 받지는 않을 거라고.

 

엄마는 새로운 아내에게도 다정한 말투로 비수를 꽂는다. 전 남편과 사별하고 료타를 만난 아내가 영 마뜩찮았던 그는 기모노를 선물해 주는 다정함과 아이는 낳지 않는 게 좋겠다는 냉정한 말을 동시에 한다. 이젠 가족이니까 그정도 참견은 괜찮겠지, 라는 거리감으로 자연스레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엄마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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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들은 여전히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를 걷고 있다. 가족이니까 보여줄 수 있는 속내, 그 거리감에 상처 받는 또 다른 가족. 그들은 안간힘을 내어 가며 살아간다. 걸어도 걸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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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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