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에 비타민 충전하기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글 입력 2020.03.2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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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듯 우중충한 아침이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던 나의 마음을 맞이하는 것은 매서운 바람뿐이었다. 나는 차갑게 언 손을 꼭 쥔 채 전시장 안이 따뜻하길 바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볼로냐 스탬프.jpg

 


들어서니 바로 옆에 놓인 종이와 스탬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탬프를 모두 찍어 오시면, 아트샵에서 특별한 선물을 드립니다!" 종이 아래에 새겨진 문구는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특별한 선물? 도장을 찍고, 어떤 특별한 선물이든 받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안쪽 공간으로 들어갔다.


볼로냐라는 도시는 세계 최초의 대학이 있는 도시이자 뚱보들의 도시라고 한다. 설명을 보며 이탈리아의 화창한 태양과 붉은 지붕의 유려한 건물들 아래에서 맛있는 음식과 지식을 갈구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 '배우신 분'이었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연을 담아내는 법

 

볼로냐 벤디베르니치.jpg

 


다음 섹션으로 가면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상 2018 수상자인 벤디 베르니치Vendi Vernić (Croatia) 특별전 공간이 펼쳐진다.

 

벤디 베르니치의 싱그러운 그림이 벽 전체를 감싸고 있어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2019년 'La casa de fieras (동물원)'라는 단편소설을 그림책으로 만들며 주목을 받았다. 5명의 어린 남매들이 애완동물을 위해 동물원을 만들기로 하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대략적인 스토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이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어떻게 탄생했을까? 작품들은 한 장 한 장 생동감이 넘쳤다. 생생한 원화를 구경한 뒤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보고 나니 그 싱그럽고 자연 친화적인 그림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 Vendi Vernic.jpg

 


그는 그림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사실을 모방하여 그리는데 중점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림을 보며 느껴지는 것이 어떠한가에 중심을 두며 작업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림과 이야기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한 벤디 베르니치는 그 사이의 분위기에 세심한 신경을 기울였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중요한 점은 자연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본다. 과연 영상 속의 벤디 베르니치는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음을 여는 열쇠, 상상력


 

사실 가장 재미있었던 섹션은 신화와 동화 그리고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작품은 옛날이야기를 자수로 표현한 일본 작가의 작품이었다.


 

볼로냐 자수.jpg

 


2차원의 모니터로 봤으면 그다지 감흥이 없었을 것 같은 작품인데 실제로 보니 훨씬 따뜻하고 아기자기하고 정교했다. 딱 떨어지지 않고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는 실밥들조차 정겹게 느껴졌다.


 

ⓒ Jan_Bajtlik.jpg



신화를 비롯한 옛날이야기는 언제나 현대인에게 영감을 준다.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Jan Bajtlik의 작품은 오래된 신화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화풍으로 담아내 인상적이었다. 오디세이아와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이야기가 오밀조밀하게 한 장의 그림에 담겨 있었다. 신화의 내용은 사실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지만 그림 자체는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중앙에는 일상 속에서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통제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을 단순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나 일상 속의 외계인을 상상한 작품 등이 있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상상력에 있다고 했던가. 상상력을 발휘해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들이 있기에 우리는 한층 더 인간다워 지고는 한다.

 

볼로냐 일러스트를 심사한 심사위원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 역시 이와 닿아 있다. '이미지가 열려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말은 그리는 이와 보는 이가 상상력을 사용하게 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심사위원의 관점이 반영된 전시의 작품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들은 생각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표현해 냈다. 우리들은 그저 마음의 문을 열고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들에 흠뻑 빠지면 된다.

 


 

우리의 친구


ⓒYuke_Li_5.jpg

동물들은 그림 그리는 이들의 좋은 친구다.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그러다 보면 그리고 싶고, 무엇보다 어떻게 그려도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물 친구들을 소재로 한  전시의 한 파트가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동물들이 색다른 귀여움으로 맞아 주는 공간에 절로 흐뭇해졌다.

 

최근에는 동물뿐 아니라 채소 등 식물에 대한 작품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제 '자연'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동물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는 식물들과 더 가까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 그리고 사람


 

전시의 마지막 공간의 제목은 'Life 우리 곁에 숨은 이야기'이다. 유쾌한 상상력보다는 삶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찰력을 요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멋대로 줄을 서 있는 유치원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설레고 북적거리는 공항의 모습. 삶의 장면을 작가들의 머리에서 꺼내어 종이에 펼쳐 놓은 것만 같은 일러스트들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한 명 한 명의 사람을 오롯이 바라봐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삶에 행복한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듯 전쟁을 소재로 그린 작품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전쟁이나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문제는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그런 점에서 동화책을 통해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은 정말 좋은 방법이다.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열심히 스탬프를 찍으며 전시를 둘러보았다. 스탬프를 찍고 받은 선물은 엽서였다.(어떤 엽서인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그저 도장을 열심히 찍었을 뿐인데 뭐라도 하나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밖으로 나오니 우중충했던 하늘은 어느새 따사로운 햇볕이 반짝이고 있었다. 근처 카페로 가 생각을 정리하고 어떤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오랜만에 산책을 하고 싶어 졌고, 글이 쓰고 싶어 졌고,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그림이 그리고 싶어 졌다.

 

날씨 때문인지, 전시 때문인지, 책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활기가 충전된 하루였다.

 

 


 

 

메인-포스터.jpg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 세상을 담는 그림 -

 

 

일자 : 2020.02.06 ~ 2020.04.2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20분)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제7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 12,000원

청소년 : 10,000원

어린이 : 9,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씨씨오씨

 

주관: 메이크앤무브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ART INSIGHT_김채영.jpg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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