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얼마나 크게 울 수 있나요 [사람]

글 입력 2020.03.2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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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정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해 힘들어했다. 툭 치면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밤낮으로 우울했다. 이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는 비단 슬픔과 우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쉽게 화냈고 과장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이 싫었다. 감정을 보인다는 건 약점을 보인다는 것처럼 느껴졌고, 항상 무표정을 유지하며 기계처럼 차분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빈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모습을 닮고 싶었지만 그들은 싫었다.

 

바람대로 어느 순간부터 감정 앞에 초연해졌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리액션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짜 내가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러한 모습 사이의 이질감은 점점 커졌다. 혼자 있을 때와 타인과 있을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감정과 감각 모두 마비된 기분이다. 먹기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그 행위 자체를 즐기던 나는 더 이상 먹는 데에 흥미를 읽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인터넷 소설을 보고 잘 울고 웃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는 그 작은 핸드폰 화면 안에 담긴 글에 푹 빠져서는 밤을 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 무언가에 온 감각 감정을 동원하여 몰입하고 싶어도 나를 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보는 TV 프로그램,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는 일이 매우 드물다. 어쩌다 보게 된다고 해도 '5분 트릭'과 같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상을 3분의 1 정도 보다가 끈다. 감정 범벅의 영화를 보거나 소설책을 읽는 것도 힘들다.

 

 

 

영화 '데몰리션(Demolition)' & 소설 '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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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다가 영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 제목은 데몰리션(Demolition). 어떤 배우가 나오는지 언제 나온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를 찾는 것은 뒷전이고, 에세이에 짧게 소개된 줄거리가 불러일으키는 호기심부터 해결하려면 얼른 영화를 찾아 재생 버튼부터 눌러야 했다. 이 영화가 남긴 여운이 바로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슬프게도… 그녀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도 않아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성공한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그를 보고 사람들은 수근거리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데이비스는 점차 무너져간다.


“편지 보고 울었어요, 얘기할 사람은 있나요?”

  

아내를 잃은 날, 망가진 병원 자판기에 돈을 잃은 데이비스는 항의 편지에 누구에게도 말 못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어느 새벽 2시, 고객센터 직원 캐런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캐런과 그의 아들 크리스를 만나면서부터 출근도 하지 않은 채, 마음 가는 대로 도시를 헤매던 데이비스는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망가진 냉장고와 컴퓨터 등을 조각조각 분해하기 시작하고 끝내 아내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집을 분해하기로 하는데…

 

 

영화 제목인 데몰리션(Demolition)의 뜻은 파괴. 데이비스는 러닝 타임 100분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분해하고 부순다. 그리고 그 모습은 폭력성보다는 후련함을 느끼게 해준다. 무표정을 유지하던 그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나타나고 비로소 그는 그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도심 속 인파 사이 헤드셋을 낀 채로 음악을 느끼고 춤을 추는 장면과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가슴 아주 깊은 곳에서 응어리진 것이 부드럽게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불투명하게 얼어 있던 얼음이 따뜻하게 녹아서 보이지 않던 것이 서서히 나타나는 느낌.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의 기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긴 했지만 데이비스가 짓눌러왔던 감정은 상실감과 슬픔, 사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너의 감정을 느껴봐! 숨기지 마! 따위의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은 없다. 고요한 파괴를 함께 하며 나도 나를 무너뜨렸다. 나는 부드럽고 평온하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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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여도 죄책감이든 혼돈이든아무것도 못 느낄테니까. 그렇게 타고났으니까"

 

"타고나?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말이야."

 

- 154p

 

 

그리고 영화를 본 후 자연스럽게 떠오른 소설은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 데몰리션과의 눈에 띄는 차이는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재의 엄마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가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리 상황별 반응을 알려준다. 후에 윤재는 곤이와 도라를 만나게 되어 눈물을 흘리게 된다.

 

타고났다거나 원래부터 그런다거나 하는 말들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난 원래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해왔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래도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아몬드는 여전히 고장 난 상태인 것 같다.

 

데몰리션이 성인의 감정 성장기라면 아몬드는 청소년의 감정 성장기이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두 작품 모두 좋았고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럼에도 더 오랜 여운을 남겨준 것은 데몰리션이다. 아무래도 이에는 영상과 책이라는 매체의 차이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나는 텍스트만으로 상황과 감정을 그리기가 힘들다.


 

 

얼마나 크게 울 수 있나요


 

두 작품의 기억에 남는 공통점은 해방의 감정을 눈물로 표현한 것이다. 눈물은 꼭 슬픔만을 보여주는 요소가 아니다.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분노와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 가지의 감정 안에는 또 다른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니 슬픔 하나마저도 우리에게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엉엉 소리 내어 울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를 내고 울고 웃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감정을 표현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일까. 겨우 털어놓은 고민과 함께 보인 감정에 사람들은 무관심해 보였다. 어쩌면 무감정한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서럽게도 괜히 말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싫어하는 사람을 마주해야 할 때도 무표정을 짓거나 적당히 웃는다. 지금 이 분노와 슬픔 그리고 좌절감, 상실감, 우울함을 최대한 느끼지 말자고 다짐한다. 자신을 인생 선배라 칭하는 사람들이 말하듯 사회생활이 다 이런 걸까. 나의 감정과 예민함의 모서리는 너무 날카로워서 아무리 깎아내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불투명하고 튼튼한, 모서리가 둥근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넣어두었다.

 

자유로운 데이비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겨우 무너뜨린 그것들을 밤새 다시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감정을 직시한다는 건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다. 행복한 진실도 있다면 슬픈 진실도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싫어하는 것이 싫어하다가 좋아하는 것도 무디게 만들었다. 무미건조한 오늘과 지금 그리고 이 무뎌짐이 좋은지 싫은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나' 혹은 '우리'는 참 많이 무뎌져버렸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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