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내게 그림이란 큰 마음을 먹고 보는 대상이 된 듯하다. 그림을 본다. 그림만을 집중해본다. 그렇다면 미술관이다. 별다른 손재주가 없어 그림 그리기라는 취미를 로망 삼고 있을 정도니, 살면서 그림을 제대로 마주할 방법은 미술관에 가는 일 뿐이다. 전시를 보러가는 일 역시도 지금까진 한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니 역시, 그림을 보러 가는 날엔 큰 마음을 먹고 가게 된다.
큰 마음을 먹는 일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어든 보이는 것으로부터 내게 던져진 의미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겠다는 의지, 이에 더하여 골똘히 그림을 보겠다는 끈기정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백전 백패다. 온통 흰 색인 벽면에 ‘오직 내게만 집중하라’는 듯, 한껏 목에 힘 준 작품들 앞에서 ‘알못’인 나는 한 없이 작아진다.
미술관이 주는 공허감, 웅장함도 이에 한 몫 한다. ‘예술에 정답이 어디 있겠어!’라는 말로 작은 위안을 삼는다. 어른으로서 그림을 본다는 일은, (비전공자로서도) 내겐 그렇다.
그림과 멀어진 걸까. 그건 맞고도 틀리다. 여전히 난, 그려진 – 캐릭터, 웹툰, 책 속의 삽화, 풍경화, 크로키, 다양한 쓸모와 기법들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그림이 어떤 뜻이나 의미, 생각들을 담는 수단이 된다면 – 차라리 누군가 글로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림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은 결국 보기 쉬운 그림이 좋다는, 그런 속마음이 아닐까 한다.
어려운 글도 (때때로) 찾아 읽는 마당에 그림은 또 쉬운 것이 좋다니, 내 스스로에겐 조금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를 잃은 느낌이다. 분명 그림도 그림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은, 산문과 운문이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듯 문자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최근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표지에 실린 일러스트를 보고 나는 이 ‘슬픔’이라는 한 단어가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산문집이 다룰 슬픔의 층위가 얼마나 다양할 것인지 예상해볼 수 있었다.
모두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이다. 물론 등 돌리고 앉아있는 남자가 정말 슬픈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제목이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한 슬픔들이 이 그림에 마저 담긴 기분, 맞다. 그 기분이나 느낌들이 한동안 내게 꽤 깊게 남아있었다. 슬픔을 한 차원 더 넓은 범위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나름의 충격이기도 했다.
세상을 담는 그림
‘세상을 담는 그림’ 불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서의 세상을 담는, 이라는 말이 더욱 와닿았던 것도 위같은 경험 덕분이었다. 글을 이제 다 안다고 그림책을 떼었던 것이 참 오래된 일 같은데, 다시금 나는 그림책을 봐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림책을 읽었던 그 당시를 이제와 돌이켜보면 단순히 그림은 글의 보조도구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림책 속의 그림을 읽어가며 나는 글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더 많은 일들에 대해 알아갔던 것이다. 당연히 모두 처음 알게 된 것들이었다.
책장 안에 꽂힌 세계아동전집 중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에게서 묘한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걸리버 여행기>에서 존재할 지 모르는 더 작은 세상과 더 큰 세상에 대해 – 작은 나라에서의 걸리버를 묶었던 포승줄이 얼마나 간지러울까! 하는 느낌들도 말이다.
어린이가 책을 본다는 건 의미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예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계를 예술 작품을 통해서 간접 경험하는 거죠.
- 그림책 작가 이루리
그림책에 대해서, 또 그림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어른이 된 지금도 모르는 세상 투성인데, 그렇다면야 그림책 앞에서 어린이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실은 그림책만큼 어른과 아이 모두가 세상을 간접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고, 안전한 수단이 없지 않을까. 나는 이러한 이유로, 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 한 번 가볼까 한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소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특히 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에는 최종 선정 작가 76명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볼 수 있는 본전시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작가인 벤디 베르니치 Vendi Vernić (Croatia)의 책과 원화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시와,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서 선정된 일러스트 작가가 창작한 메인 이미지들의 원화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이 밖에,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라가치상'의 수상도서 16권, 한국 출판사로서 최초로 2017년 볼로냐아동도서전의 최고의 출판사 상을 받은 보람 출판사의 책들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외국 작품들과 함께 한국의 그림책들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세상을 담는 그림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일자 : 2020.02.06 ~ 2020.04.2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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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 12,000원
청소년 : 10,000원
어린이 : 9,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씨씨오씨
주관: 메이크앤무브
관람연령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