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국노'라고 비난받은 유명 소설가의 소신 [도서]

글 입력 2020.03.03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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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가 세상에 공개된다.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세계적인 작가의 신작이니만큼, 많은 사람의 관심과 기대를 받은 이 책은 출간일부터 많은 독자에게 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며칠 후, 일본의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는 『기사단장 이야기』에 대한 평가로 뜨거워진다. 워낙 많은 사람이 기대한 작품이니만큼 활발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거센 비판이었다. 많은 사이트에서 별점 테러가 이어지고, 책의 판매 부수는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비판의 이유는 작품 속에 등장한 역사적 소재 때문이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난징대학살’에 대해서 언급한다. 난징대학살은 중일 전쟁 때 난징을 점령한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중국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이른다.


일본 패망 후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는 난징대학살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15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이름 없이 죽어 나간 이들까지 합하면 거의 30명 가까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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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에 대해 중국계 미국인 역사가이자 작가인 아이리스장이 적은 『난징의 강간』에서는 이런 문구로 그때의 참혹함을 다루고 있다.

 


“어떤 역사학자는 그 당시 난징의 사망자들이 손을 잡는다면 난징에서 항저우까지, 약 322km나 이어질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 사망자들의 시체는 2500량짜리 기차를 가득 채울 것이며 시체를 포개놓는다면 74층의 높이의 빌딩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일본 우익 세력에서는 난징 대학살의 희생자 수가 많아야 20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하지만, 아이리스장의 글을 볼 때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비록 매우 구체적인 숫자들이 포함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들의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미명아래 자행되었던 집단 학살의 잔혹함일 뿐이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바로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한다.

 


“그렇습니다. 이른바 난징학살사건입니다.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령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전투 중의 살인도 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죠,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일본군이 항복한 군인과 시민 대부분을 살해해버린 겁니다.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세부적인 수치는 역사학자들 사이에도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엄청난 수의 시민이 전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사십만 명과 십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나는 알 수 없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문학동네, 2017, p.88


 

더불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특유의 무라카미식 어법과 미스터리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 폭력이 피해를 본 중국인들뿐만 일부의 일본인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음을 주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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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는 초상화 화가인 ‘나’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비어있는 집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때 아마다 도모히코는 일본의 유명 화가로, 지금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살고 있다. ‘나’는 야마다 도모히코의 집에 숨겨져 있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말 그대로 기사단장을 살해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강렬한 그 그림을 발견한 뒤로 ‘나’에게 미스테리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마다 도모히코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빈에서 나치고관의 암살 계획을 세운 일본 지하 저항조직과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불어 난징 대학살에 징병된 야마다 도모히코의 동생, 야마다 쓰구히코가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자살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된다.

 

점차 ‘나’는 ‘기사단장 죽이기’의 그림이 아마다 도모히코가 빈에서 끝내 마치지 못한 과업에 대한 마음의 부채를 표현한 그림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때 그 과업이란 자신의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거대한 폭력에 대한 반격-나치고관의 암살로도 볼 수 있는-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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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익 커뮤니티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매국노’, ‘허위사실로 일본과 일본인을 매도함으로써 책을 팔려는 행위’ 등의 신랄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으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는 오히려 일본의 올바른 역사관과 미래를 위한 소신 있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아무리 우리에 맞게 역사를 다시 써도 결국 다치는 것은 우리일 뿐이다. 벗어날 방법, 숨길방법, 그런 건 없다. 만약 방법이 있다면 상대조차 인정할 정도의 사죄, 그것 하나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일본에서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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