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몽롱하고 지독한, 윤성희의 「감기」 [도서]

글 입력 2020.02.28 16: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이미지 1.jpg

 

 

필자는 겨울만 되면 꼭 감기를 앓는다. 사게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선 환절기마다 감기를 앓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이번 겨울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상륙으로 인해 단순 감기로 인한 기침 한 번 하는 것도 두렵다. 그래서 건강에 더욱 유념하고 있다. 집밖에 나가는 일도 최대한 자제하고,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은 필수로 지키면서. 아무튼 겨울과 추위, 추위와 감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이 분명하다.


윤성희 작가의 소설은 사실 평소 필자가 좋아하는 소설 취향은 아니다. 일상적인 글은 끝까지 일상적이었으면 좋겠고, 판타지는 끝까지 그저 판타지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물론 환상도 끝까지 환상이었으면 한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독자인 나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가 깨지는 걸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고 우울하다. 너무 적나라해서 현실적인 소설을 읽을 때의 느낌과는 또 다르다. 윤성희의 「감기」는 그 균열을 자주 드러낸다.

작가의 데뷔작 「레고로 만든 집」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표현이 보기 힘들 정도로 거칠다거나 문체가 날것처럼 생생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인물에게 있는 그늘이 지독하게도 어두워서였다. 한 줄기 희망, 아니 한 줄기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반 줄기 실낱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그림자같은 여성 주인공은 애잔함을 느끼게 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김승옥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어느 밤」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밤」에서 킥보드를 훔친 할머니도 사정은 다르지만 쳇바퀴같은 고단한 일상에 지쳐있었지만, 그럼에도 내일의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함부로 불쌍해 할 수 없는, 그런 인물들이었다.

 

[크기변환]이미지 2.jpg


 
그런데 「감기」의 주인공은 사뭇 다르다. 몽유병에 걸린 성인 남성이다. 덕분에 독자는 일어나는 사건이 주인공의 어린 시절인지, 꿈인지, 여자를 만나고 난 다음인지, 그 이전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분명 즐거워 보이는 상상인데 대놓고 웃을 수가 없다. 어딘가 씁쓸한 웃음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두 아버지가 서로 3월 1일, 3월 2일이 네 진짜 생일이라며 우기고, 각각 다른 날 미역국과 케이크를 사다주는 장면은 소소하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마을 버스 운전기사인 주인공이 마을을 벗어나고 톨게이트를 지나 운동회 중인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일상적이면서도 환상적이다. 물론 그가 행복한 장면이 전부 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만은 그의 현실이기를, 아니면 차라리 꿈에서 오래도록 행복한 후에야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감기」에서 낡은 가전제품 고치기를 좋아하는 남자의 아버지는 어느 날 남자의 꿈에 나타나 십자드라이버로 남자의 몸에 박힌 녹슨 나사들을 풀어냈다. 오십 개가 넘는 나사를 빼냈더니 남자의 몸엔 여러 개의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들었고, 바람이 넘나들었다.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얼른 이 구멍들을 막아주세요. 추워요.” 잠에서 깬 남자는 등이 축축한 걸 느낌과 동시에 지독한 감기에 걸린 걸 알았다.

몸이 추워서 감기가 걸리기도 하지만, 마음에 구멍이 나서 감기가 걸릴 수도 있다. 마음에 감기가 걸린 사람들은 알고 보면 굉장히 많은데, 바로 알아채기가 어렵다. 약을 먹는다고 바로 낫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번 크게 앓고 나면 괜찮아질 수도 있는 건데, 오히려 미련 때문에 녹슨 나사들을 빼지 못하고 곪게 놔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을 채우고 있던 것들이 빠져나가 마음이 허한 것, 우리는 그것을 공허함이라 부른다. 윤성희의 「감기」는 공허함을 느끼는 자들에 대한 일종의 위로다.

 

[크기변환]이미지 3.jpg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고, 그에 따른 예외도 있다. 내겐 윤성희 작가의 소설과 그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윤성희 작가 소설의 주인공들은 전부 내 주위에 실존하지만, 나와 모르는 사이인 누군가같다. 그늘 밑에서 피어난 작은 꽃, 그림자 속의 한 줄기 빛. 이 수식어들은 전부 윤성희 작가의 주인공을 묘사하는 평론가들의 평이다.

어두운 인물이어도 그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나까지 비참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응원을 보내고,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살아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도 윤성희가 그려낸 인물을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응원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날, 정말 문득 생각날 때마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이다.

 

[임하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