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남학생이 여성용 무용복을 입는 이유 -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공연]

우리도 스트레스 받으면 하는 행동 있잖아, 그런거지 뭐
글 입력 2020.01.3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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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타드.PNG

 

 

레오타드는 무용수가 입는 몸에 딱 붙는 의복을 말한다. 아무 사이트나 열어 ‘레오타드’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와 게시글이 나온다. 대표적인 이미지가 발레를 하는 여성 모델이 입고 있는 레오타드를 광고하는 모습이다.


화장품, 패션 브랜드에 대해 잘 몰랐는데, 안나수이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패션 브랜드의 이름이다. 즉,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란 안나수이 브랜드의 XXL사이즈의 레오타드를 손거울로 본다는 의미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든다. 레오타드를 따로 구매해서 입을 정도로 무용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XXL 사이즈를 구매하는 것이 이상하다. 물론 XXL라는 사이즈가 존재한다는 것에서 이것은 또한 내 편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용수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몸매 관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S ~ L 같은 사이즈의 레오타드를 입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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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그렇다.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란 연극은 무용수의 성장기를 다룬 연극이 아니다. 모두의 예상을 엎고, 연극의 주인공은 입시 경쟁에서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 ‘준호’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정해놓은 안정적인 삶을 위한 입시 공부에서 준호는 불안해하고 초조해 한다. 그는 그 불안감을 ‘여성용 레오타드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는’ 사적인 취향으로 해소한다. 친구들과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그 사실은 비밀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에 레오타드를 입은 준호의 사진이 얼굴만 모자이크된 채 올라온다. 준호는 그 사진을 올린 사람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희주임을 알게 되고, 희주는 체육 수행평가에서 짝이 되어달라고 사진을 갖고 협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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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의 줄거리만 봤을 뿐인데도 상당히 충격적이다. 심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딱 붙는 여성복을 입는 주인공 소년이나, 친하지는 않더라도 학급 친구의 은밀한 사진을 단지 협박을 위해서, 그것도 단순히 체육 수행평가의 짝을 구하기 위해서 학교 게시판에 올리는 학생의 행동이나 다 상식 밖의 일이다. 그런 비밀스러운 취향이 알려진다면, 준호는 당장에라도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들으면서 따돌림을 당할 게 뻔하다. 희주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불법적인사진 유출에 해당한다.

 


부모의 세계에 갇힌 아이들.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우정.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 없이 내보이고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가? 청소년의 결핍과 대립의 모습을 통해 본, 세상과 만나는 인간의 이야기.


제도 안에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칙, 일반적으로 좋다고 말하여지는 것들, 쉽게 마하면 부모나 선생이 말하는 세상 잘 사는 법.


이 연극은 그 틀을 벗어날까 봐 두려워 죽도록 애쓰며 매달리는 아이와 틀을 벗어나 바깥을 엿본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대학 입시를 할 때를 되돌아보면,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딱히 크게 간섭하는 것이 없어서 나와 성적이 비슷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당시에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절약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지만 학원이란 곳을 단 한 번도 발을 디딘 적이 없었고, 지금 되돌아보면 그건 내 학창시절의 가장 큰 자유를 보장해주었던 일이었다. 아빠는 돈을 버느라 바빴고, 엄마는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는 외할아버지와 몸을 움직이지 못하시는 외할머니를 매일 집에서 돌보느라 나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고집이 세고, 독립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간섭, 조언도 거의 듣지 않았다. 야자를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빼먹고 친구들과 공원에서 컵라면을 나눠 먹거나, 노래방에 가서 별로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고 돌아와서 선생님께 걸리면 엎드려뻗쳐 벌을 서곤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느그 그러는 거 다 추억이 될 것 같제?”라며 우리의 질풍노도를 한껏 비판하셨다.


그렇게 타인에게서 주는 규율은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나는 스스로 가학적인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뭘 조금이라도 먹으면 바로 체해버렸기 때문에, 의무급식이었던 점심을 학교에서 빼주어 급식비를 내지 않았다. 남들은 일 년에 한 두 번 체한다는데, 나는 체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고약한 손버릇이 있었는데, 내 눈썹을 있는대로 다 뽑는 버릇이었다. 어느 날은 시험이 코앞이었는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는지 공부를 하면서 한 손으로는 나도 모르게 눈썹을 뽑다가 이발기로 민 것처럼 눈썹의 절반이 사라져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눈썹 다듬다가 밀어버린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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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나타나는 정형화된 행동이 있다. 한때는 그게 정신을 놓을 때까지 술을 많이 마시는 거였고, 또 한때는 성적인 자극을 느끼는 거였다. 또 최근에는 거의 다 고쳐졌지만, 외출 직후 빵이나 뭐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꾸역꾸역 씹지도 않고 삼키는 버릇도 있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그냥 많이 먹는 거라며 위로를 해줬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행복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음식물들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로 가득 들어차는 불쾌하고 자기 혐오적 감각만을 느꼈다.


눈썹을 뽑는 일과는 다르게, 폭식을 끊기가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몸속에서 인슐린 분비와 아드레날린 등 나를 쾌락에 빠지게 하는 호르몬 중독 때문이었다. 빵을 먹지 않는 날이면 지독하게도 우울해져서 종일 울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먹지 않게 되기 때문에 중독을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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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을 뽑아버렸던 고등학교 때, 그때는 아무리 해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시간만이 답이었을 뿐이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기말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면 중간고사 준비, 그리고 또다시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면 성적이 나오길 기다렸고, 성적이 나오면 못한 과목을 더 열심히 준비해야 했다. 나는 영어 교과서에 듣기 스크립트까지 전부 외워버리고, 체육대회에 짧은 쉬는 시간에도 주머니에 챙겨온 영어단어 종이를 외울 정도의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스트레스는 정말 절정에 달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있다면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아무도 나의 인생에 참견할 수 없고, 그런 강제적인 상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냥 아무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집 안에만 박혀서 살아도 살 수 있다. 대학교가 싫다면 자퇴를 하거나 휴학을 해버리면 그만이고, 아르바이트가 싫다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적을 하여버려도 자기가 그동안 일한 만큼의 수당을 법적으로 보상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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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청소년, 아직 부모님의 품속에서 아무런 사회생활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혼자 살고 싶어하는 시기. 사회라는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운동장과 학교 건물 몇 가지로 구성된 공간 안에 수천 명을 억지로 가둬놓고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간. 입시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든 이유는 아직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저 공부만 하라고 하는, 그리고 공부밖에 없는 환경이다.


분명 사회에 나가보면 직업은 정말 무한대로 많은데, 어째서 중고등학생들은 수능 공부만 하는 걸까? 청소부라는 직업은 있는데 왜 청소부가 되기 위한 공부는 하지 않는 걸까? 나는 지금 건축학과를 왔는데 왜 고등학교 때는 건축을 공부해본 적이 전혀 없을까? 미술이 하고 싶으면 미술학원을 따로 가고, 음악을 하고 싶으면 음악학원을 따로 가는데 왜 전문적인 교육은 사설 기관에서 담당하고, 학교는 형식적으로 존재하기만 하는 걸까?


수능 공부가 아무 데도 쓸 데가 없는데 대체 왜 해야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수능 점수도 낮은데 어떻게 다른 공부를 잘할 수가 있겠느냐”고 말하곤 하는데, 그 역시 궤변이다. 한 가지 시험을 잘한다고 해서 다른 적성에도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직업이 같은 영역의 재능과 같은 방식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수능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합리화적 발언이다. 수능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은 이유일 뿐이다.


IQ 검사의 역설을 아는가? 사람의 지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 검사는 결국 만든 사람의 기준에 맞춰져 있다. IQ 검사를 만든 사람이 높은 IQ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사람들을 정량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시험이다. 그 사람과 사고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면 IQ가 높게 책정이 될 것이고, 그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IQ가 낮게 책정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직업, 그리고 그 직업에 따른 보수나 인식 역시 현재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학생들에게 수능 공부를 강요하는 이유는, 전국의 모든 학생이 수능 공부를 해야 과거에 수능 공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그들이 계속해서 존경을 받고 신임을 받고, 권위 있는 자리에서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그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다양해져 버리면, 즉 수평적인 관계가 되어버리면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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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대전예술의전당

 

 

그러나 아직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지 않은 학생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수능 날짜만 다가오면 온갖 미디어에서도 난리가 난다. 수능 때 학교에서 샤프를 나눠줬는지 이제 완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샤프심 브랜드가 바뀌었다는 둥, 1년 동안 샤프를 쓰며 손에 익혔다는 둥 지금 보면 유난이라고 보일 정도였다. 입시에서 벗어나면 입시에서 무관심해진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군대 제대 후 군대 내부에서의 부조리를 당연하게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겪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경험 역시 당연히 거쳐 가야 하는 인생의 과업 중 하나 정도라고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겪는 온갖 불평, 불안, 부정적 감정 역시 개인이 성장하면서 이겨낼 수밖에 없는 그 개인의 몫으로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 내내 성적이 우수해서 거의 모든 과목 교과 우수상을 수상하는 사촌 동생이 수시 여섯 군데를 전부 의대를 지원해서 서울로 모의 면접도 보고 다녔었다. 그런데 작년에 국어 수능 3등급이 뜨는 바람에 재수했고, 1년간 학원을 통학하며 다시 수능을 봤지만 국어가 3등급이라서 다시 의대 진학을 실패했다. 이번에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정시 원서를 접수했다고 한다. 국어 등급 하나때문에 대학의 등급이 확 떨어지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내 일이 아닌데도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제는 수능 성적, 의대, 대학교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사촌 동생이 학교생활을 잘하고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하길 바랄 뿐이다.


어린 아이들은 자라서 또 수능을 맞이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나의 아이 역시 수능, 입시 경쟁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때도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연극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에서도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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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2020년 2월 6일부터 2월 9일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열린다. 목요일 오후 8시, 금, 토, 일요일 오후 4시, 7시에 극이 오를 예정이다. 곧 입시를 마주하게 될 예비 고등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생들, 그리고 아이를 기르는 학부모들, 교육과 청소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연극이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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