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특별함 속에서 평범한 '우리' 찾기 [웹툰]

웹툰 <아홉수 우리들>의 평범함 예찬
글 입력 2020.01.23 02:5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런 만화 같은 일이

 

만화는 죽지 않는다. 드라마, 영화, 예능과 같은 시청각 프로그램이 날이 갈수록 화려해져도 만화는 종이에서 핸드폰으로 둥지를 바꿔, 우리 일상에서 그것만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누워서 편하게 영상을 볼 수도 있지만 굳이 손을 움직여 가며 만화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답변이 있겠지만, 만화는 앞서 언급한 다른 매체보다 현실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SF, 재난, 좀비물과 같은 장르의 측면부터 일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과 세부 요소까지, 만화가 구현해낼 수 있는 비현실은 무궁무진하다.


드라마와 영화 역시 비현실성을 어느 정도 기반으로 하지만 평균적으로 정해진 러닝타임과 CG로 구현 가능한 정도 등의 문제로, 어느 선을 넘어가면 관람자는 어색함과 인위성을 느낀다.

 

그렇다면 2차원의 선들과 면으로 이루어진 웹툰은 그 외형부터 가상이기에, 현실성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로운 것일까?

 


 

특별한 사건, 보편적 감정


 

현재 연재되고 있는 웹툰들을 보아도 현실에 가까운 스토리나 설정은 많지 않다. 주인공이 자신을 ‘평범’하다고 소개해도, 어떤 특별한 사건을 겪거나 특별한 인물을 만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현실성을 즐기기도 하지만, 완전히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된다. 용과 싸우고 다른 시공간을 가더라도, 마법을 쓸 수 있어도 등장인물의 선택과 그가 표현하는 감정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인물에 이입하여 비일상적 세계와 마주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 웹툰이다. 특별한 인물과 비일상적인 사건, 보편적 감정이 키워드인 것이다.


KakaoTalk_20200122_234544383_01.jpg


아홉수 우리들의 이야기


 

그렇지만 평범한 인물이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을 겪는 웹툰도 있다. 네이버 토요 웹툰 <아홉수 우리들>이 그러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우리, 회사의 비정규직인 봉우리, 꿈보다 돈을 위해 회사에 다니는 차우리가 주인공인 <아홉수 우리들>은 29살의 세 우리들이 겪는 각각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웹툰은 우리 주변, 한국의 서울에서 흔한 세 캐릭터의 일상을 그린다.

 

그중에서도, 4년간 사귄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기다렸으나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별 통보를 받은 봉우리의 에피소드가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남자는 너를 사랑했었지만, 어느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 뒤 떠난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도 아니고, 봉우리의 회사가 불안정해서 결혼을 못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이별엔 특정한 원인도, 누구의 잘못도 없다.

 

오래 사귄 연인의 가벼운 권태, 나만 곱씹고 있는 듯한 과거의 결혼 이야기, 이유 없는 이별, 이별 이후에도 해야만 하는 출근. 이 일련의 과정은 웹툰이라는 장르에서만 볼 수 있는 비일상적 사건이라기보다 매우 일상적이다. 나에게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 있거나, 주변에서 듣고 보았던 일들이 ‘봉우리’라는 인물을 통해 재현되는 것이다.

KakaoTalk_20200122_234544383_02.jpg


드라마 같은 웹툰


 

비일상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는 웹툰에서 독자는 사건 그 자체보다 인물의 행동, 감정에 이입한다면, <아홉수 우리들>과 같은 경우 사건이라는 더 큰 범위에서부터 이입하여 인물에 더 깊이 파고든다. 특히 독자 개인의 경험을 연상 시켜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로맨스 드라마의 감상과 유사하다. 나에게 익숙한 어떤 사건이 극적으로 연출되어 제3자의 시선으로 관람하면서도, 1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에게 적극적으로 이입하게 되는 것. 이는 독자를 서사에 끌어들이는 좋은 방법이면서, 비일상적 세계관과 사건으로 가득 찬 다른 웹툰들 사이에서 특별함을 획득한다.

 

물론 <아홉수 우리들>의 모든 에피소드가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봉우리’라는 인물이 겪었던 현실적인 에피소드 역시, 여느 로맨스처럼 비일상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초능력이나 마법을 부리지 않고, 엄청난 갑부가 아니면서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여자 주인공이 살해위협을 받지도 않으며, 잘생긴 남주와 서브남이 동시에 주인공을 좋아하는 일이 없는, 21세기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만으로 반갑다.

 

스토리의 스케일과 특색이 더해지고 현실을 넘어선 비일상과 대면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요즘, 수많은 특별함에 지치진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것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안루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