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투 그 이후, 여전히 밝지 않은 새해를 맞으며 [도서]

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한채윤 저 『미투의 정치학』
글 입력 2020.01.22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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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기점으로 한국에 등장한 미투 운동은 끝나지 않을 폭로의 시작이었다. 법조계를 비롯하여 정계, 문화예술계, 스포츠계 등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불거진 미투 운동은 권력형 성폭력이 그만큼 만연하며 당연시되는 현실을 여실히 체감하게 했다. 윤리적 반성도 제도적 해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다음 해가 밝았고 ‘버닝썬 게이트’가 열렸다. 이미 미투 운동을 통해 알려진 문화예술계의 방대한 폐단에도 의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아이돌마저 성폭력의 가해자였고 유착에 대한 의혹을 해결하지 못한 공권력은 이번에도 무능했다. 충격도 잠시 사건은 명쾌한 해결 없이 어느새 옛이야기가 되었고 해가 바뀐 지금, 메신저를 이용한 성폭력 사건이 또다시 도처에서 폭로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폭로들에 무뎌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언론과 정계는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


공권력의 힘을 배당받고 있거나 혹은 공권력의 잣대를 피해가는 자들의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한 미투 운동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지목하고자 하는 가해자가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인 경우에 한해서만 세간의 주목을 집중 시켜 효과적인 폭로를 실행할 수 있다는 미투 운동의 한계 역시 다수의 일반인에게는 큰 벽이 되었다. 그렇다고 유명인을 지목한 피해자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이미 그들에게 신뢰를 잃은 제도는 여전히 그들을 보호하지 않았고 재판은 피해자다움의 환영에 허우적대며 피해자를 탓하기 급급했다.

 

해결되지 않음에 의욕을 잃다가도 성폭력 사건이 불거지면 또다시 분노하고 해결이 요원해질 때 다시 무기력해지는 끊임없는 악순환은 미투 운동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투 운동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해가 바뀌어도 전과 같은 폭력이 제동 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미투 그 이후의 방향을 어떻게 모색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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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정치학》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 문제를 다뤄 온 연구 모임 ‘도란스(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한채윤)’가 미투 운동을 둘러싼 쟁점과 미투 그 이후를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법으로 연구한 논의를 엮어낸 책이다. 책은 미투의 성과와 더불어 미투가 해결하지 못한 부분에도 주목하며 그러한 부분이 오히려 드러난 유의미한 계기로서의 미투 운동을 점검하고 그 이후를 모색하는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네 명의 저자는 각자 다른 접근법으로 미투 운동을 복기하고 누락된 기록을 탐색하여 미투 운동 이후를 그려나간다. 권김현영은 진보 정치 인사들이 젠더 문제에서는 진보적 관점을 취하지 못하고 가부장적 가치관에 고여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는 성폭력을 ‘여자 문제’로 환원하는 착오에서 비롯됨을 비판한다. 정희진은 미투 운동마저 남성사회의 언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상기시키며 여성의 언어 확장이 더 많은 여성을 포괄하고 보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채윤은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오독이 젠더 폭력을 공고히 하는 메커니즘을 ‘춘향전’의 재해석을 통해 분석한다. 루인은 여성 폭력을 말할 때 포함되지 않는 트랜스젠더퀴어의 존재를 인식하고 다시 포함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논한다.


가부장적으로 편제된 사법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인 만큼 연대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집단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집단화의 편리함을 위해 이뤄졌던 어떤 범주화는 적지 않은 피해자의 배제를 불러왔다. ‘여러 권력이나 집단 사이에 생기는 이해관계의 대립 등을 조정·통합하는 일’인 정치는 미투 운동에서 하나의 기제로 작동했고, ‘권력’과 ‘집단’의 전형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막론하고 기록에서 누락되었다.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 기대어 사건을 재구성하는 불성실함은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작동했던 위력에 관한 논의의 범위를 일순간에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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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도지사 성폭력 사건이 고발되기 전, 미투 운동을 정치적 ‘공작’의 일환으로 이용하여 진보 진영의 지지층을 분열시키는 이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김어준의 예언을 인용한 권김현영의 글로 책은 서두의 운을 뗀다. 그의 걱정에는 피해자에 대한 그것이 배제되어 있다. ‘공작’으로서의 미투와 구분되는 ‘진짜’ 미투의 변질을 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뢰할 수 없는 사법 체계의 그물에서 벗어나 피해자 중심의 언어로 새로운 연대를 이루어 싸워보겠다는 선언이 바로 ‘미투’이며, 그렇게 재편된 언어로 구성되는 여론이 피해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시 ‘진보 남성 정치 인사’의 언어로 묶어 프레임화한 셈이다. 의도였든 아니든 미투와 함께 나아가는 피해자들의 절실한 발걸음에 정면으로 훼방을 놓은 것과 다름없다.


피해자를 배제하고 진보 진영의 지위와 안전을 최우선에 놓은 그의 프레임은, 곧이어 고발된 안희정 전 도지사의 미투와 이틀 뒤 고발된 정봉주의 미투에서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찌르기 좋은 도구로 이용되었다. 결국 끌어안아지는 이들은 피해자가 아닌 ‘진정한’ 진보 남성 정치인이었다.


이어지는 정희진의 논의는 진영 논리에서 배제된 여성 집단의 내부에서 또다시 남성 사회의 언어로 수많은 진영이 만들어져 소외와 배제가 작동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가정 폭력과 성 산업 종사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은 가장 늦게 미투의 대상이 되거나 아예 고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지지자들이 정치 인사를 향한 숱한 고발에도 그들을 견고하게 비호하다가, 더 이상 비호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이 진보 진영 내에서도 유리된 진영에 있기 때문이라며 가해의 원인을 특정한 것은 피해자가 아닌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미투 운동은 상당한 경우가 가해자가 속한 집단의 체면을 중시하는 이들의 ‘끊어 냄’에 의해 동력을 얻었고 가속화되었다.

 

그러나 사적인 일로 치부되는 가정 폭력과, 심지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성 산업 내 성폭력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내부에 속해있으며 피해 사실은 으레 가해자가 해결할 문제라는 후진적인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목소리가 가해자의 외부, 즉 가해자가 속한 집단에까지 가닿기 힘들다. 남성 중심적인 사고가 결과적으로 조성한 사각지대다. 저자는 여성 해방의 움직임인 미투 운동마저도 남성 사회의 언어로 정립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을 완벽히 타파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성 내에서도 남성 중심적 사고가 낳은 배제의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으며 다양한 개인의 교차를 인정하고 서로를 연속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의 꾸준한 기억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렇듯 위력은 ‘행사되지’ 않아도 권력 집단과 피권력 집단의 병존만으로도 충분히 작동된다. 춘향전의 재해석을 통해 위력의 정의를 검토하는 한채윤의 글은 형법 체계에서의 성적 자기 결정권 개념이 조선 시대의 정조 관념과 다를 바 없이 독해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정조 관념의 허구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시도를 한다. 저자는 춘향의 정조가 기생이라는 신분에 의해 유무가 판별되며 그 행방마저도 주변 남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춘향에게 요구되나 춘향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닌, 그야말로 허구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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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정조 이데올로기가 21세기 한국 형법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안 전 도지사 성폭력 사건 재판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왜 정조를 허용했냐고 물었다. 2019년의 일이다. 같은 해 10세 아동을 대상으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의 재판에서는 성인 남성이 폭행 전 여아의 신체를 누른 것이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감형을 결정한다. 정조라는 단어가 위력에 의한 폭력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버젓이 사용되는 한국의 사법 체계에서는 죽을 위기에 처할 정도로 매질을 당하고 고위급 관리에 의해 감금 정도는 되어야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의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저자는 이처럼 동의와 거부의 이분법으로만 이뤄져 있는 가해자 중심 형법 논리의 수정을 요청하며 애초부터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작동하는 위력을 법원이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그늘을 되짚는 시도는 젠더 개념과 젠더 폭력의 정의 및 범위를 탐구하는 루인의 글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젠더 폭력을 여성과 남성 간 권력 위계에 따른 폭력이라고 해석하기 이전에 여성과 남성이 구분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여성 폭력과 퀴어 폭력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두 가지의 폭력 모두 여성 혹은 퀴어라서가 아닌 사회가 요구하는 젠더를 수행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접근법은 앞의 저자들이 시종 강조했던 피해자다움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 주요한 근거가 된다.

  

 

젠더 폭력은 그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가해자의 판단에서 발생한다. ‘여성’이 겪는 폭력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여성이어야 해서, 여성으로 환원되면서 발생하는 폭력이 아닌지 재검토해야 한다. (194p)


 

생물학적 성과 대비되는 사회학적 성으로서의 젠더가 아닌, 신체와 이성의 이분법에서 탈피한 주체적 젠더 개념에 대해 고찰하고 더 넓은 젠더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사회가 피해자를 누락하는 방식과 더불어 누락된 피해자를 찾아 목소리를 기입하는 시도가 미투 운동의 연속선상에서 마땅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성을 하나의 집합으로 묶은 다음 말끔하게 지우는 ‘진보적’ 움직임을 비판한 권김현영의 논의로 시작된 책은, 여성이라는 집합에 어떤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 모순을 비판하는 루인의 논의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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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미투 운동의 밝은 부분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미투 운동의 성장에 주목한다. 부족한 점도, 한계점도 많았다. 그러나 미투는 흘러간 과거를 책망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데서 끝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끝없이 뻗어가는 담론과 다양한 고민으로 약동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목소리의 표상이자 유기체다. 책을 덮으면 그늘이 걷히지는 않아도 언젠가 도래할 맑은 날을 기꺼이 상상할 수 있는 현실을 작게나마 소망할 수 있는 이유다.


크기는 작을지라도 확신으로 차 있는 소망을 품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책이 안희정 전 도지사의 성폭력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에 있을 때 출간되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지난한 재판 과정에서 이 책을 비롯한 성실한 논의와 부지런한 연대가 정조 운운하던 어떤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어엿한 도전이 되었기에, 그리고 승리했기에 소망의 크기는 그것의 단단함만큼 커져가고 있다. 저자들의 소망대로 미투는 정말 성장했다. 새해가 밝았으나 아직 걷히지 않은 암흑 속에서, 그럼에도 빛나는 성취들을 손에 쥐고 승리를 꿈꾸며 한 발짝씩 전진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 해에는 정말 모든 사람이 밝은 새해를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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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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