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성과 영화의 현대사: 도서 "야한 영화의 정치학"

글 입력 2020.01.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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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문화생활을 한다는 표현을 쓸 때, 가장 많이 즐기는 것이 있다. 바로 영화다. 활동적인 무언가를 할만한 게 많이 없어서인지 우리나라는 여가시간에 영화를 보는 게 아주 일상화되어 있는 것 같다. 인구수로는 그리 큰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블 영화 시리즈 같은 대형작들이 개봉할 때마다 주연 배우진들이 내한해서 한국 관객들을 챙길 정도면, 충분한 유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한국인에게 영화는 아주 익숙한 여가활용 수단이다.

 

영화를 즐긴다고 말하기에는 영화를 챙겨보는 일이 드문 편이지만, 나 역시도 개봉한 영화들 중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보이면 꼭 영화관을 찾는 편이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음에도 보게 된 영화들은 다른 사람이 같이 보러 가자고 권할 때 뿐이었다.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영화를 봐왔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대해 꾸준히 들었던 의문이 있었다. 왜 영화에서는 성적인 소재와 직결되지 않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꼭 성적인 소재를 끌어들여 내용을 전개할까?

 

물론 모든 영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영화들이,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성적인 소재는 최소 로맨스적인 요소에서 최대로는 아예 성적 접촉과 나체 노출까지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여기서 만일 최소 범주인 로맨스 요소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를 담고 있지 않는 영화는 정말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굳이 끼워팔기 하는 로맨스 요소를 논외로 두고 생각하더라도, 성교와 노출 같은 성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영화들은 이미 충분히 많다. 가벼운 소재의 모험물이건, 무거운 소재의 역사물이건 꼭 성적인 요소를 끼워넣어 영화를 제작하는 이유가, 항상 궁금했다.

 

그래서 "야한 영화의 정치학"이 유독 눈에 들어왔나보다. 아주 오랫동안 영화에 대해 품고 있었던 이 의문을, 이 책이라면 해소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국내외 주요 ‘야한영화’의 정치학적 분석

 

이 책은 여성의 몸과 성의 역사이자, 인간의, 혹은 가부장 중심의 문명(patriarchal civilization)이  영화에서 어떻게 이용됐는지 그 기록이 담겨 있다.


제1장에서는 1910년대의 초기 무성영화부터 1950년대 이전의 고전영화들, 특히 무성영화들이 성적 금기를 시각적, 내러티브적으로 암시하고 재현한 사례를 분석한다.

제2장에서는 1960년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기수인 마이크 니콜스와 존 슐레진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빛낸 리얼리스트 김수용,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등 영화사의 중추를 차지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사회문화적 언어로서 성을 위치시키고 영화적으로 전달하는지 살펴본다.

제3장은 격변의 혁명기를 거치고 난 이후 제작된 영화들을 통해 각기 다른 문화권 안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던 억압, 혹은 해방이 성을 통해 대조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제4장은 1980년대에 성행했던 미국 슬래셔 영화에서 성, 특히 여성의 성이 그려지는 경향과 한국 에로영화 전성기의 작품들 속 성 재현을 분석함으로써 여성의 성이 대중문화 안에서 본격적으로 소비화 되는 경향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제5장에서 다루는 1990년대에서는 좀 더 다각적인 시각에서 조명된 에로티시즘의 영화적 사례들을 든다. 여성감독의 시각에서 여성의 욕망을 다루는 <피아노>를 포함하여 <북회귀선>, <발몽>과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같은 영화들은 금기를 다루었던 고전문학이 현대의 영상작가들을 통해 어떻게 재탄생했는지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를 다루는 제6장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에서부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까지 영화로 혁명을 일궈냈던 감독들의 작품들을 모았다.

 

변영주 영화감독은 《야한 영화의 정치학》에 대하여, “무성영화에서 21세기 새로운 독립영화까지. 각각의 시기를 관통하고, 헐리웃과 한국이라는 지형의 정치학을 읽으며 영화가 본디 누리고자 하는 욕망의 자유로움과 체제의 통제욕구를 통해 결국 영화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새로운 물결의 세계영화사.”라고 밝혔다.

 

안진수 UC Berkeley 동아시아학부 교수는, “저자 김효정은 오랫동안 한국 성애영화의 두터운 의미와 역동성을 추적해 왔다. 그녀는 유럽, 할리우드, 일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까지 비평의 대상을 넓혀 성애 재현의 함의와 역사적 맥락을 짚고 있다. 1970년대 한국 호스티스 영화의 독해는 신선하고 야심차다. 호스티스 영화의 근대화의 도상과 권력의 삼투, 영화 제도의 현실과 미학적 관습이 복잡하게 맞물려 작동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영화 속 성애 이미지의 즉물성을 넘어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힘들에 대한 성찰로 우리를 안내한다.”며 책의 의미를 덧붙인다.

 


 

 

책은 무성영화가 나오던 191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의 영화까지, 20세기 이후의 영화사를 사실상 성 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짚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이 1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여성과 그리고 여성의 몸은 확실히 욕망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절대 다수의 영화감독들이 남자였다는 점도 이 명제가 성립되는 데 분명 한몫 했겠지만, 이는 비단 감독들이 대부분 남자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류가 보편적으로 여성을, 그리고 여성의 몸을 파편화해왔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만일 상기한 명제가 남성 영화감독들에게만 통용되고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타당하지 않은 명제였다면, 어떻게 수많은 작품들이 이렇게 유사하게 성애적인 요소를 착취적으로 재생산해왔을까.

 

책 초반부에 나오는 영화 "엑스터시(1933)"에 대한 꼭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정말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극 영화 최초로 성애적 오르가즘을 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성애적 요소를 아주 노골적으로, '오르가즘'의 형태로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곳곳에 배치된 뛰어난 미장센으로 인해 예술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열 일곱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 영화의 주연으로 나섰던 배우 헤디 라마는 그 숨이 다할 때까지 '오르가즘 배우'라는 멍에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엑스터시" 이후로 맡은 대다수의 배역들이 성적인 요소가 극히 강조된 역할에 국한되었다. 미디어나 사교계에서도 그의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노출에 집중하기만 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성은 성적으로 소비되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꼭지가 유독 이목을 끌었던 것은, 영화 "레옹(1994)"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 때문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에 "레옹"에서 마틸다 역으로 열연했던 나탈리 포트만은 훗날, 자신이 "레옹"을 찍고 난 이후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성희롱에 노출되어 왔다고 밝혔다. 나이 든 레옹과 나이 어린 마틸다 사이의 그 미묘한 감정선을 보고, 그를 성애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배역이 이미 끝난 나탈리 포트만에게 성적 함의를 내포한 집착적인 연락을 꾸준히 보내왔던 것이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심지어 "레옹"의 삭제컷 중에는 레옹과 마틸다의 성관계 장면도 있었다고 한다. 만일 그 장면이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상영되었더라면 얼마나 더 끔찍했을 것인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똑같은 배우여도 남성배우는 배역이 끝나면 남성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여성배우는 배역이 끝났더라도 감독과 관객 모두의 욕망의 대상이었던 배역이 여전히 덧씌워진 채로 남는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남성이 욕망의 대상으로 나오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성별을 떠나 욕망을 투영시켰더라도, 사람들이 여성을 더욱 더 그 욕망의 잔상에 얽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만큼 인류가 유구한 세월동안 남성보다는 여성을 대상화하며 소비해왔다는 반증이다.

 

*

 

아주 오래된 과거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한국이 해방을 맞은 이후 그리고 군사정권 시기 동안에는 사회적으로 아주 강력한 통제 기제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억압되던 시기의 영화들도 착취적인 성애 요소를 답습한다. 해방 직후 625 사변을 소재로 다룬 영화 "산불(1976)"에서는 전쟁의 폐해를 여성의 집착적인 성적 욕망으로 그려냈다고 저자 김효정은 서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왜 전쟁의 폐해를, 두 여성이 한 남성에 대해 느끼는 성적인 집착과 욕망으로 그려내야 한단 말인가? 전쟁의 폐해를 그려낼 수 있는 소재가 이뿐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여성을 그렇게 소비하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다시금 귀결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군사정권 시기의 영화들도 만만치 않다. 저자 김효정이 다뤘던 국내외 여러 영화들 중, 1960~70년대에 접어들어 경재개발 5개년 계획이 보다 활성화되어 산업화가 한창 일어나던 시기에 나왔던 한국의 성애영화들 중에서 '호스티스 영화'라는 하위 장르는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이주하여 노동자로서 생활하게 되면서 다수의 여성들이 노동현장에서의 폭력, 성폭력 그리고 각종 사기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영화 감독들은 불행한 여자로 담아냈다. 성애적 요소와 함께. 이를 두고, 저자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아내기 위해 성애적 요소가 활용되었다고 말한다. 사회적인 이슈를 정부에서 통제했기 때문에 '성인물'의형태로나마 사회적으로 암담한 면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 역시 바로 뒤이어 후술하는 것처럼, 그런 '호스티스 영화' 계열의 작품들은 당시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담아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성을 남성 중심적으로 소비하는 풍조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호스티스 영화'에 나오는 성관계 장면들은 그나마 아름답게 그려지는 멜로영화에서의 성애와는 달리, 불행 포르노처럼 암담하고 강제적인 장면들이 나열될 뿐이다. 즉 성을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남성이 극대화되고, 객체화되고 수동적인 대상으로서 여성이 설정됨에 따라 이를 보는 관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망이 발현되는 대상'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일방적이고 때로는 가학적이기까지 한 장면들은 관객들의 무의식에서 이러한 담론을 더욱 공고히 했다.

 

*

 

그리고 과거의 이러한 경향성은 안타깝게도 2000년대를 넘어선 현재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한 때 너무 유명해서 누구나 타이틀만이라도 알고 있을 법한, 영화 "색, 계(2007)" 역시 그렇다. 혁명을 모의하던 젊은이들, 그리고 그 중에 처단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한 사람. 미인계라는 뻔한 수단을 쓰면서도, 영화는 영화답게 역시 미인계가 먹혀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결국 그 미인계를 가지고 아주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성관계 장면을 그대로 노출시키니 말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은, 이 영화의 작품성이나 줄거리 또는 배우 라인업이 아니라 바로 노골적인 성애장면 때문이었다. 폭력적이어서 보는 사람을 거북하게 만드는 장면은 한 번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 중에서 반복되었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 영화가 담아낸 것은 무엇인가. 혁명 대신 사랑을 선택한 여성이 치러야 했던 비극적인 대가라고 평한 저자의 논평은 정말 완벽하다. 굳이 사랑이 아니라 하더라도, 혁명 대신 인간적인 감정을 좇은 끝에 나온 비극적 결과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또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에, 그 장면은 필수였는가.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본능을 따르므로 성애적인 요소를 포함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식의 의견도 있을 것이다. 본능 그리고 원초적인 욕구라는 명분으로 성적 소재는 항상 정당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점은, 성욕은 생식 욕구를 가진 생물에게 분명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만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수면욕 그리고 배설욕이다. 성욕 역시 생물로서 사람에게 주어진 육체적 욕구 중 하나지만, 식욕이나 수면욕 그리고 배설욕만큼이나 필수적이지는 않다. 먹지 않거나, 잠들지 않거나 혹은 배설하지 않으면 사람은 죽지만 성욕을 해소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성욕을 분출하는 장면 없이 소재를 이끌어 갈 힘은 없었는가 하고 말이다. 혁명과 인간적인 감정 사이의 갈등을 그려내는 데에,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성애라 하더라도 꼭 거기에 성애 장면을 노골적으로 담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성애가 아니어도, 가족이나 친구와의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소재를 풀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노골적인 성애를 주 요소로 삼은 셈이다. 왜, 라고 질문해보면 또 다시 같은 지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감독과 작가, 관객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여성을 그렇게 소비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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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적인 요소를 은근하게든 노골적으로든 담아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게 결국 '잘 팔리는'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메가폰을 쥔 사람이건, 상영관에서 소비하는 사람이건 그 모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소재가 성적 소재이기 때문에 결국 영화는 유구한 역사를 지나오면서도 반복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파편화하여 소비해온 것이다. 이는 그만큼 시대와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이 여성을 물적 존재로 치부하는 게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에필로그에서 저자 김효정이 밝히고 있는 바처럼, 이 책은 조금 더 나은 역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가부장 중심적으로 여성의 몸을 이용해 왔는지를 담아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을 펴기 전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던 바로 그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다. 검열의 시기에 노골적인 성적 요소가 통제로부터 하나의 도피처가 되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반복되어 온 욕망의 투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서 "야한 영화의 정치학"은,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과오가 난무하는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


궁극적으로 영화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그리고 욕망이 투영된 대상으로서 착취되었던 여성은 이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 것인가.
파편화와 대상화 없이 여성을 온전히 담아낸 영화는 이전의 영화들과 어떻게 다른가.

 

*

 

이 책으로부터 시작될, 이전과는 다른 영화계의 미래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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