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을 잃었을 때, 곁에 두고 싶은 - 그림 처방전

사랑에 갇힌 이들을 위한, 맞춤형 처방전
글 입력 2019.12.0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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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담아두고 추억하는 건 내 마음이 아닌 예술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시간에 머무르는 건 그림 속에 두고 당신의 마음은 앞으로 나아가세요. (224)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다. 생소한 작가의 작품이거나, 전혀 처음 보는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눈이 가는 그림은 어떤 미술관에 가건 존재했다. 단순히 ‘예쁘다’를 넘어서 무언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그 그림들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 책은 손에 든 건 그 그림들이 건네는 말들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책을 손에 쥐었을 때 눈으로 그림들을 쭉 훑었다.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들도 많았고 유명한 작가의 색다른 그림들도 있었다. 그림 심리 서적인 만큼 그림을 다루는 서적에서 흔히 보이는 단점도 보이지 않았다. 미술을 다루는 책 중 일부는 제본을 고려하지 않고 그림을 삽입해 그림 일부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미술 작품을 다루는 책에서 그림의 전부를 보지 못한다는 건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문제이기에 그림을 우선적으로 배치한 첫인상이 좋았다.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미술사적 지식을 주입하기보다는 자기 전에 편안히 읽기에 좋은 무게였다. 다만 나는 이 책의 처방전에 맞는 독자는 아니었다. 이 책의 독자는 한정적이다. 마치 맞춤형 처방전처럼 이 책은 상실의 슬픔을 가진 이들에게, 특히 사랑의 상실감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들이 가득 찬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이 시대의 여성들,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여성 독자들을 위한 글들이 집중적으로 포진되어 있다.

 

사람의 존재 이유를 사랑만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여기는 사람이기에, 특히 여성이 사랑에만 매몰되는 존재로 묘사되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첫인상과 달리 잔뜩 경계하며 이 책을 읽어나갔던 것 같다. 그림을 우선적으로 느끼고, 저자의 글을 읽고, 나와 다른 부분에는 나름대로 반박을 하고, 그러면서도 정말 그런가 갸웃거리며 다시 그림을 본다. 끊임없이 의심하며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어나간다. 마지막 그림 프리다 칼로의 초상을 본다. 함께 쓰인 그녀의 말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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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Self-Portrait in a Velvet Dress)>, 1926

 

 

“나는 늘 혼자였기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로 나를 그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한 오만한 평가질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사랑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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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로젠, <울고 있는 젊은이(Youth Mourning)>, 1916

 

 

이 책이 내가 평소에 읽어오던 미술 서적과 결이 다른 것은 분명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미술 관련 서적들은 미학이나, 미술사적 관점으로 작품을 해석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기에, 미술 치료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많이 낯설었다. 특히나 독자층이 한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로 이 책을 받아들었으니 (심지어 그 대상 독자층이 현재의 나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으니), 더욱 이 책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현재의 나와 이 책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펼쳐지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 그림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문장들이 걸어와 말을 걸었다. 이 그림은 ‘사랑의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헤어짐은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이고 사람은 결국 홀로 설 수 있다고, 그러니 지금 당신은 마음껏 슬퍼하라고, 언젠가는 당신도 혼자서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다고. 대략 이런 말을 건네는 책 속의 문장들을 보며 한 문장이 생각났다.

 

사랑에 갇히다.

 

이 책의 모든 문장은 사랑에 갇혀있었다. 모든 그림과 글들이 사랑에 초점이 맞혀져 있기에, 이 책은 사랑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신기하게도 이 책에 대한 경계심은 다소 누그러졌다. 이 책이 오로지 ‘사랑’이란 감정에 초점을 맞췄기에 오히려 ‘처방전’이란 제목이 달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에 갇혀서 아픈 이들을 위한 맞춤형 처방전처럼.

 

단지 현재의 나와 다르다고 이 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자격이 내게는 없었다. 사랑에 목을 매는 사람들도,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도 평가할 권리가 내게는 없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찾아온 상실의 시간이 내게도 오지 말란 법이 없는 것처럼.

 

 

 

그림이 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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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 <스튜디오를 떠나며(Leaving the Studio)>, 1921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슬픔이 우리를 찾아올 때, 우리는 슬픔의 그물에 갇힌다.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주변에서 옳은 소리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이, 감정이 진정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할 수 없다. 가끔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나는 항상 저 질문을 되뇌었다. 나를 지탱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나를 지탱하는 것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저 내 곁에 묵묵히 함께하는 존재들로부터 나는 힘을 얻곤 했다.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계절이 불러오는 풍경, 가사를 다 외울 정도로 듣고 또 듣는 노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몇 개의 문장들, 좋아하는 그림, 영화 뭐 그런 것들. 변하지 않고 묵묵히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다시 삶을 세우곤 했다.

 

그림은 묵묵히 우리들 곁에 있다.

조용히 툭- 어깨에 팔을 올리며 이야기한다.

‘당신, 지금 어떠냐고.’

 

가만히 쳐다보다 울고 싶어지는 그림, 조용히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그림, 너무 따스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는 그림, 불안하고 혼란한 눈동자로 가득 찬 그림, 미묘한 감정의 엇갈림이 드러나는 그림, 내 마음도 몽글몽글해지는 그림, 조용히 눈빛으로 응원하는 그림... 많은 그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 책은 많은 메시지를 품은 그림들을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굳이 갇히지 않고서도 책 속의 그림들은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그림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들의 말을 듣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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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드 블라스, <소식을 나누다(Sharing the News)>,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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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베르그, <북유럽의 여름 저녁(Nordic Summer Evening)>,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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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해커, <갇혀 버린 봄(Imprisoned Spring)>,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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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 <사춘기(Puberty)>, 1984

 


“내가 그리는 것음 숨을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며 살아있는 인간이어야한다.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이런 그림이 갖는

성스러움을 알게 될 것이고,

그 앞에 서면 예배를 드릴 때처럼 모자를 벗게 될 것이다.” 

 

_ 뭉크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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